삶을 살아가는 태도는

매일 쓰기 46일차

by Inclass

크로노스 - 인간의 역사 속에서 흐르는 시간

카이로스 - 기회의 때


어떤 프로그램에서 물리학자 김상욱 교수님께서 그런 이야기를 하셨어요.

모든 사람에게 가장 공평하게 주어지는 것이 시간이다. 사람들은 돈을 이용해서 시간을 사려하고, 가난한 자는 시간을 사용해서 돈을 만든다는 말로 기억하고 있어요.


우리 모두 같은 시간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요.

그렇지만, 누군가는 그 시간 속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것에 변화를 주려 노력하고, 누군가는 그 시간을 그저 버티면서 보내고 있지요.


어떤 삶이 맞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그저, 생명을 이어가기도 힘든 환경에서 시간을 흘려보내는 삶은 어떤 부분에서 가치 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렇게 위험과 고통이 없는 삶에도 불구하고 어제와 같은 오늘을 보내며 무의미하게 시간을 흘려보내는 삶은 그렇게 좋은 모습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비슷하게, 변화를 주려는 노력이 있는 삶은 가치 있다고 볼 수 있으나, 지금을 회피하기 위한 목적으로 변화를 추구하는 삶을 가치 있다고 하기는 힘들 것도 같아요.

아무튼, 절대적인 답이 존재하지는 않겠지요.


하나 확실한 것은, 어떤 하나의 시점이 아니라 구간의 관점에서 삶을 더욱 가치 있게 살아가기 위해서 때로는 시간을 흘려보내야 하는 시점도 있고, 때로는 시간에 의미를 둬야 하는 시점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조금 더 좋아지는 삶을 위해서 노력해야 할 절대적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글을 쓸 마음을 먹었던 시점에는 카이로스의 때에 대해서 이야기하려 했어요.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순간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야 하고, 시간의 소중함을 항상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글을 쓰면서 문득 그런 생각도 들었어요. 시간을 흘러가게 두는 것도 어쩌면 의미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말이지요.


물론, 노력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게 나쁜 건 아니에요. 아니, 좋은 거지요. 누구에게나 추천하고, 어떤 이에게는 도전을 주고, 열정을 주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이 나태함을 의미하며 무기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문득 했어요.


만약 말이지요.

삶을 살아가는데, 자신의 의지로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 환경에 살아가는 누군가가 있다고 생각해 봐요. 마치 최진영 작가님의 <구의 증명>에 나온 주인공처럼 삶에 대한 무지함과, 개선하기 힘든 환경적 불행함이 있는 삶에 던져졌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런 구덩이 같은 삶에서 살아가는 누군가에게 어쩌면 삶을 살아간다. 시간을 흘려보낸다.라는 것은 생명을 포기하지 않고 이어간다는 의미에서 분명 가치 있는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즉, 삶을 살아가기 위한 근본적 요소들이 충족되지 않은 사람에게 있어서 생명을 포기하지 않고 이어간다는 것, 크로노스의 삶은 의미가 있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내가 태어나고 싶어서 나온 것도 아닌데 왜들 그래요?"


전학생이 왔었어요.

경기도 어디에서 지내다가 고모의 손에 끌려서 학교로 오게 되었지요.

나중에 들어보니 부모님께서 이혼을 하셨고 이혼 이후 어머니와 함께 지내며 정기적으로 아버지를 만났었는데, 아버지께서 사업차 중국 지사에 간 사이에 코로나가 발생했고 그 때문에 아버지와 연락이 힘들게 되었다고 하더라고요.

그 무렵 아이의 어머니께서는 아이에게 무관심하셨다고 들었어요.

아이의 말은 그랬지요.

어떤 날은 냉장고에 크림빵과 우유만 있고, 며칠 동안 어머니가 들어오지 않은 적도 많았다고요. 무관심에 힘들어하다가 가끔은 가출을 했는데도 연락이 없었다고 해요. 아무도 아이를 찾지 않았지요.

아이는 가끔 ATM기에서 몸을 녹이기도 하고, 무인 편의점에서 몸을 녹이기도 했다고 해요. 그때 이후로 조금만 추워도 남들보다 옷을 두껍게 입고 다녔지요.


펜더믹이 조금 완화되고 아버지께서 한국에 오셨다고 해요. 그리고 방치된 아이의 상황을 알게 되었지요.

어머니와 다툼이 있었고, 결국 아이의 할머니께서 아이를 돌보고 아이의 고모가 학교 생활을 살피겠다 하고 전학을 오게 되었어요.


할머니와 함께 살면서 아이의 삶은 크게 바뀌지 않았어요.

생업에 바쁜 할머니와 고모, 다시 중국에 가서 어쩌다 한 번 한국에 들어오는 아버지.

아이는 전학을 와서도 마음을 붙이지 못했지요.


다행스럽게 결석은 없었어요. 지각이 자주 있었고, 저는 자연스럽게 아이와 많은 이야기를 해야 했지요.

그때 아이의 사정에 대해서 듣게 되었어요.


아이는 많이 힘들어했어요.

경제적인 배경도 없었고, 의미 없어 보이는 학교 생활을 강요하는 몇몇 어른들만 주변에 있었지요.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하며 아이가 울분을 토하며 했던 말이에요.

"내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왜 나를 짐짝 취급하며 여기 보냈다가 저기 보냈다가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그 말을 들으며 마음이 얼마나 아프던지요.

그때, 저도 모르게 아이에게 그런 말을 했어요.

"그런 힘든 상황을 네가 지금까지 이겨내서 참 고맙다."


무슨 위로의 말이 나오지 않았어요. 제겐 그 순간 이 아이가 힘든 상황을 이기고 내게 이런 이야기를 해 줬다는 게 그저 고맙게 느껴졌거든요.


1학기 동안 열심히 학교에 나오던 아이는 2학기 시작과 함께 무단결석을 했고, 결국 아이는 자퇴를 결정하게 되었어요. 모든 행정 절차가 끝나고 아이에게 전화가 왔더라고요.

아버지께서 돈을 보내줘서 작은 방을 구했고, 인근에서 일자리를 구해서 돈을 벌고 자립해서 생활하게 되었다고 말이지요. 나중에 학교 근처를 지나면 꼭 들르겠다고 그렇게 인사를 했었지요.


학교를 그만두던 날 아이에게 전화를 했어요.

다른 사람이 전화를 받더라고요. 번호가 바뀐 것 같았어요.


아마, 어디선가 더욱 강하게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 가겠지..라고 생각했어요.




아이에게 부모는 세상과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해요.

세상과 같은 존재로부터 균열이 생긴 아이는 얼마나 힘든 세상을 살아가게 될까요?

무너진 세상 속에서도 굳건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이겨내는 것과 같은 힘이 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때문에, 누군가에게는 크로노스, 삶을 흘려보내는 것이 가치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그렇지만 대부분의 경우 카이로스, 즉 의미 있는 시간을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어제보다 좋은 오늘을 위해서, 오늘보다 좋은 내일을 위해서 말이지요.




성적이 잘 나오는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보통은 두뇌의 차이, 사고력의 차이, 암기력의 차이 등등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지요.

물론, 그런 이유도 있지만, 사실 정말 우수한 두뇌를 소유한 학생들은 그렇게 많지 않아요. 대부분의 경우 효율적으로 학습하고, 시간관리를 하는 것에서 누적된다고 할 수 있지요.


성적이 잘 나오는 아이, 그렇지 않은 아이도 학습 계획을 수립할 수 있어요.

그렇지만, 성적이 잘 나오는 아이는 학습 계획 수립을 위해서 시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하려 노력하고, 그렇지 않은 아이는 미래의 시간에게 지금 해야 할 것을 미룬다는 차이가 있지요.


어제 계획한 학습 목표를 수립하지 못했다고 한다면, 성적이 어느 정도 나오는 아이의 경우는 오늘 쉬는 시간을 이용해서 전날 충족하지 못했던 계획을 수립하고, 오늘의 계획을 시행하게 되지요. 그렇지만, 반대의 학생들은 오늘 쉬는 시간은 본인이 즐기고, 오늘 학습 시간에 어제의 부족했던 부분을 충족하려 노력하게 되는 경향이 강해요.


수시 원서 접수기간에 이런 차이를 발견하게 되었어요.

지금은 없어진 서류지만, 과거에는 자기소개서가 있었지요.

학업 성취도가 우수한 아이들은 학교에 오면서, 집에 가면서, 쉬는 시간에, 식사시간에 어떻게 자소서의 이야기를 풀어갈까 고민하고 자리에 앉으면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그렇지만, 반대의 경우인 아이들은 학교에 오면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집에 가면서, 쉬는 시간, 식사 시간에 친구들과 수다로 스트레스를 풀면서 자소서를 쓴다고 앉아서야 어떻게 글을 써야 할는지 고민하는 모습을 봤지요.


당연한 이야기지만, 책상에 앉아서 자소서 쓰는 시간이 길어지는 만큼 입시를 준비하는 학습 시간이 부족한 것은 당연한 이야기가 되겠지요?




시간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주어진답니다.

단, 그 시간을 활용하는 사람이 가진 힘에 따라서, 체력이 약한지 강한지 정도에 따라서 활용 가능한 시간의 차이는 발생하겠지요.


그렇지만 그것이 가진 의미에 가중치를 더하는 것은 체력이 강하고 약하고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얼마나 효율적으로 활용하려 노력하고, 고민하며, 주어진 것의 귀함을 인식하는가에 대한 차이가 아닐까 생각했어요.


학업 역량이 우수한 아이들이 모두 체력이 좋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단지, 그 아이들은 조금 더 효율적으로 시간을 활용하기 위해서 고민했던 것이 아닐까요?


우리 모두가 지구라는 행성 위에서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모두 같은 시간 속에서 살아간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우리가 누리는 시간에 가중치를 더하는 것은 그것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되겠지요. 우리가 시간의 가치를 알고 그것을 존중할 때, 얼마 전 글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시간도 우리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감동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봤어요.


기간이 우리에게 감동을 느끼면 어떤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까요?


오늘보다 좋은 내일이 되기를 응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오늘 내게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그것을 귀하게 여기는 태도에 대해서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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