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쓰기 50일차
처음 강의를 시작했던 건 대학교 1학년이었어요.
아니, 고등학교 때 또래 친구들을 모아두고 미적분학 문제 풀이를 가르쳐 줬던 시기라고 해야 할까요?
그때는 돈을 받고 했던 게 아니니, 그냥 경험이라고 하지요.
행위에 대한 보상을 받은 것으로 기준 한다면, 대학교 1학년이 맞는 것 같네요.
계획했던 수업이 아니었어요.
친척 집에 갔다가, 이모부께서 운영하시는 학원에서 수학 선생님이 출근길에 사고를 당했고, 엉겁결에 그 수업에 보강을 들어가게 되었어요. 그렇게, 정말 엉겁결에 중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의 수업을 하게 되었고, 수학 선생님의 건강이 회복되고 학원이 안정화되는 1년 동안 휴학을 하고 학원에서 일을 하게 되었지요.
졸업을 앞두고 대학 인근 학원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었어요.
이전에 잠깐 인연을 했었는데, 그때 그렇게 이미지가 나쁘지 않았나 봐요.
종합학원을 운영하던 원장님은 단과반으로 학원 확장을 계획 중이며 제게 단과반을 담당해 달라는 이야기를 했었지요.
그렇게 두렵지는 않았어요.
단과반 운영 시도는 학원에서 하는 것이었고, 홍보나 학생 모집도 학원에서 한다고 생각했었지요.
저는, 수업 준비를 잘하고, 한 번 제 수업을 들었던 학생이 혹여 다른 수업을 듣게 된다면 목마름을 느낄 만큼 수업을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거든요.
학원 오픈은 겨울방학을 기점으로 했었어요.
조금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인근 학교의 겨울방학과 동시에 무료 공개수업이 진행되었고, 신년을 기준으로 정식으로 단과반이 시작되는 거였어요. 당시는 방학을 조금 빨리 했던 시기라서, 약 2주의 공개수업 기간이 있었지요. 저는 그 기간 동안 제 수업에 들어온 아이들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수업을 알차게 진행하면 되었어요.
아무런 염려가 없었지요.
드디어 첫 공개수업이 시작되던 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강의실에 들어갔어요. 첫인상을 위해서 얼마나 수업에 많은 준비를 했었는지!
문을 열고 들어가며 정말 많이 놀랐어요.
교실에 불이 꺼져 있더라고요.
맞아요. 아무도 없었어요.
빈 교실에서 20분을 기다렸는데 아무도 오지 않았지요.
원장 선생님께 상황을 이야기드렸어요. 그러자 원장님은 홍보가 부족했던 것 같다며, 조금 더 광고를 하겠다고 했지요.
그렇게, 1 주일하고 반이 지났어요.
저는 1주일, 그리고 월, 화, 수 총 8일을 수업도 하지 않고 빈 교실에 불을 켰다가, 껐다가, 아무도 건들지 않는 책상과 의자를 줄을 맞췄다가, 칠판을 지웠다가, 바닥을 닦으며 시간을 보냈었지요.
얼마나 수업 준비를 했었는지, 답에서부터 시작해서 문제로 연결되도록 판서를 할 정도가 되었지요.
결국, 2주간의 공개수업 기간 동안 참여 학생은 없었고 저는 그 학원을 나오게 되었어요.
물론, 이 일을 계기로 이후에 몇 번의 특강 요청을 거절하지는 않았어요. 그분의 수고스러움도 알고 있었으니 말이에요.
가끔 그런 시기가 있어요.
아무리 몸부림쳐도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는 느낌이 나를 잠식하는 순간 말이에요.
저는 그 겨울에서의 기억이 가장 강한 것 같아요.
제가 아무리 수업을 잘 준비해도, 제가 아무리 멋진 퍼포먼스를 준비했어도, 결국 아무도 듣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것이지요.
많은 사람들이 그런 감정에 사로잡히는 경우가 있어요.
취업을 위해서 수백 곳에 원서를 냈지만 받아주지 않는 경우.
나의 전공을 살려서 취업을 하고 싶지만, 어떤 모집 공고도 올라오지 않는 경우.
아무리 매장을 청소하고, 관리해도 어떤 고객도 들어오지 않는 경우.
조직의 절차에 의거해서 일을 조금은 바꾸려 하지만, 그로 인해서 결코 바뀌지 않는 시스템.
처음 그런 경험을 하게 되면, 어쩌다 일어나는 시험이라고 생각하지만,
반복되는 상황에 노출되다 보면,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포기하고 주저앉게 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아요.
이번 한 번 정도 그럴 수 있어. 참고 이겨내자. 다음에는 다른 방법으로 시도해 보자.
그런 다짐으로 하지만 하루, 이틀, 일 년, 그렇게 짧지 않은 시간에 감정과 에너지가 소비되면 어느 순간부터는 문제는 당연한 것이고, 그 문제 앞에 무기력하게 대응하는 나를 보게 되지요.
침몰하고 있는가?
계속 침몰해라.
그리고 바닥을 치고,
다시 올라와라.
언젠가 드라마에서 봤던 대사예요.
가끔은 우리가 침식되는 순간에 몸을 맡겨둘 필요도 있다는 생각을 종종 해요.
물론, 무기한 그것에 몸을 맡긴다는 의미는 아니에요.
침식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그것을 이겨내려 너무 아등바등하다가 오히려 중요한 것을 잃게 된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함께 마주해야 하는 사람과의 갈등으로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을 찾는다는 명목으로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술을 마시며 나의 에너지를 고갈하고 결국 극복하려 하는 순간 내게 아무런 에너지가 존재하지 않게 되는 상황을 마주하게 되지요.
지금 내가 빠진 구렁텅이를 벗어난다는 이유로 나를 더욱 혹사시키다가 구원의 줄이 내려온 순간 그 줄을 잡을 힘도 없는 상황으로 자신을 몰아가게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에요.
가끔 맡겨둘 필요도 있다는 의미는, 상황을 바꾸려 아등바등하기보다는, 나의 힘을 채우기 위해서 자신에게 집중할 필요가 있음에 대한 뜻이에요.
도구에게는 선과 악의 가치가 없어요.
칼이든, 도끼든, 연장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의 손에 들어가면 그것은 새로움을 창조하는 도구로 활용되지만, 살인자의 손에 들어가면 생명을 소멸하는 도구로 활용되지요.
갈등 상황도 그렇다고 생각해요. 그것에는 절대적인 참이 없는 경우가 많아요. 대부분은 그 상황과 연결된 사람들의 가치가 적용되고, 수용 가능한 감정의 정도에 따라서 문제는 크게 다가올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나의 표정을 어둡게 하는 그 사람의 말과 행동, 태도는 어쩌면 그 상황을 수용하기에는 너무 힘이 없는 내 에너지 때문이라 할 수도 있어요. 그는 왜 그렇게 말을 할까? 그는 왜 그런 표현을 쓰는 걸까? 그는 왜 그런 표정으로 나를 보는 걸까? 등등을 바탕으로 그를 비방하거나 이해하려는 시도로 에너지를 사용하기보다는 내가 그 문제와 거리를 둘 수 있도록 나 스스로에게 집중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스스로에게 집중하고 나면, 내가 가진 문제를 조금은 더 냉철하게 판단할 수 있게 되지요.
얼마나 소소한 것에 내가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는지,
그로 인해서 내 환경에 내가 인지하지 못한 어떤 좋지 않은 영향을 주고 있었는지,
내가 얼마나 감정적으로 일을 대하고 있었는지 말이에요.
그리고 그런 선택 속에서 중요한 것을 외면하고 있었다는 것도 말이지요.
관계로 참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어요.
모든 관계가 목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생각을 했었지요.
세상에 마치 혼자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술을 마셔도 마음은 풀어지지 않았어요.
우연하게 본 어떤 장면에서 갑작스럽게 감정이 격앙되기도 했어요.
세상에 살고 있지만,
마치 무인도에 표류해서 넘어가지 못할 강을 두고 즐거운 광경을 구경만 하는 사람처럼 느껴졌어요.
암울하고, 답답한 그 마음을 이겨내기가 얼마나 힘들던지요.
미래가 없는 것 같았고, 앞으로 더 힘든 상황을 마주했지 무엇이 더 좋아진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너무 한 곳만 보고 있는 게 아닌가 하고 말이지요.
그리고 고개를 돌렸더니 저를 보고 있는 사람이 있더라고요.
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내 문제가 아닌, 그냥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그리고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내 시선이 고민을 핑계로 너무 문제에 집중하고 있었음을 말이지요.
집중이 너무 강하다 보니 시야가 좁아지고, 내 눈에는 문제만 가득했음을 알게 되었지요.
고개만 살짝 돌리면 나와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말이에요.
집중과 몰임은 사람의 본성적 영역에 있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저는 여전히 종종 집중과 몰입으로 힘들어하고 있어요.
그렇지만, 이렇게 의식하면서 요즘은 조금씩 시선도 돌리고 문제와 거리도 만들고 있어요.
그게 어쩌면 조금은 성장했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기도 해요.
몸부림쳐도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될 때가 있지요?
그럴 때는 가끔.
스스로에게 집중해 보세요. 문제에 집중하지 말고요.
그리고 시선을 돌리고, 주변을 보세요.
어쩌면 너무 좁은 틀에 집중해서 들어가서 울고 있던 자신을 보게 될는지도 몰라요. 어쩌면, 그런 내게 손 잡으로 말하고 있던 누군가를 보게 될지도 모르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