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쓰기 51일차
아이들에게 꿈에 대해서 물어봤었어요.
주식투자가 되는 것이 꿈이라는 아이가 있더라고요.
주식투자가가 되기 위해서 무엇을 하고 있냐고 물어봤어요. 평소 대학 진학에 관심도 없어 보이고, 공부에 열정도 없어 보이는 아이였거든요.
아이는 최근에 주식 투자를 하고 있다고 했어요.
부모님의 권유로 시작했다고 했지요.
투자 현황에 대해서 물어봤었지요.
아이는 최근 수익이 조금 있다고 이야기했어요.
아이는 어떤 기준으로 투자를 하고 있었을까요?
저도 궁금했거든요. 어떻게 수익을 내고 있는지 말이에요.
아이의 답변은 간단했어요.
"느낌"이지요. 최근에 자신이 자주 듣는 이름의 주식을 구입하고, 수익이 만들어지면 판매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수익을 계속해서 만들고 있다고 했어요.
1년이 지나고, 학년이 바뀐 아이를 우연하게 봤었어요.
최근에도 주식을 하고 있는지 물어봤지요.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처음에는 수익이 있었는데, 회차가 더해지면서 손해가 커지기 시작했고, 결국, 처음 투자했던 금액의 원금을 상당 부분 잃고 주식을 그만하겠다는 결정을 하게 되었다고 하더라고요.
처음 어떤 일에 참여해서 수익을 만드는 사람들이 있어요.
게임에서, 투자에서 말이지요.
처음 그 일에 참여하는 사람에게 많은 운이 더해지게 되고, 그렇게 수익으로 연결되지요.
처음 카지노에 갔는데 잭팟을 터트렸다는 유명인들의 이야기도 종종 뉴스에서 접하곤 하지요.
누군가는 그런 것을 "초심자의 행운"이라고 하더라고요.
초심자의 행운은 어떻게 얻게 될까요?
승률.
이길 확률을 이야기하지요.
수학에서는 경험적 확률과 수학적 확률이라는 것이 있어요.
쉽게 이야기하자면, 경험적 확률은 실제로 시행했을 때 결과에 대한 통계치를 수치적으로 표현한 것이고, 수학적 확률은 이론상의 확률이라고 할 수 있어요.
동전을 5번 던져서 앞면이 나온 횟수를 기록하여 확률로 표현하면 경험적 확률이고, 직접 시행하지 않고 이론상의 계산으로 확률을 표현한 결과가 수학적 확률이라고 할 수 있지요.
경험적 확률과 수학적 확률은 다를 수 있어요.
주사위를 던져서 1의 눈이 나올 확률이 1/6이라고 하지만, 주사위를 6번 던져서 그중에 1번만 1의 눈이 나온다고 장담할 수는 없으니까요.
동전을 던져서 앞면이 나올 확률이 1/2라고 하지만, 동전을 10번 던져서 그중에 5번만 앞면이 나오는 경우도 잘 없으니까요.
이런 이야기를 하면, 학생들은 역시나 수학은 실용적이지 않은 학문이라는 생각을 해요. 그러면서 수학은 현실을 외면한 이상적 학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지요.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그 뒤에 오는 "큰 수의 법칙"이라는 내용이에요.
쉽게 이야기하면, 경험적 확률에서 시행 횟수가 많아지면 조금씩 수학적 확률과 경험적 확률의 결과 값이 비슷하게 된다는 이야기지요.
동전을 던져서 앞면이 나올 수학적 확률이 1/2이라면, 동전을 던지는 시행 횟수가 많아질수록 경험적 확률은 1/2에 매우 가까워진다는 의미이지요.
그렇다면, 초심자의 행운은 시행 횟수가 현저하게 떨어지는 초심자에게 수학적 확률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는 법칙과 같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요?
그건 아닐 거예요. 처음 복권을 구입했다고 당첨 가능성이 높은 것도 아니고, 처음 행운권 추첨에 참여했다고 선정 확률이 높은 것도 아니니까 말이지요.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초심자의 행운이 오는 이유는 초심자는 판의 흐름을 읽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요.
때문에, 지금의 단면만을 보고 관찰하고 결론을 도출하기 때문이지요.
누군가는 그것을 단순히 직감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어떻게 보면 기존에 그 게임에 참여하던 사람이 다루는 방대한 데이터로 인한 오판의 확률보다 지금의 상황만을 해석하는 단편적 관점이 오히려 판을 흔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모두가 기존 게임에 참여하던 사람이고, 그 가운데 처음 게임에 참여한 사람이 완전하게 다른 관점으로 상황을 분석하지요. 당연히, 기존 참여자들에게는 이렇게 발생한 변수은 예측 불가능한 가능성을 만들게 되고 때문에 상황에 대한 분석 결과에 오차 폭이 넓어진다고 볼 수 있지요.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이거예요.
우리는 너무 기존에 게임에 참여한 사람의 눈으로 상황을 분석하려 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곳에 자리 잡은 암묵적인 규칙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초심자의 눈에는 보이는 빈틈을 간과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 말이지요.
어쩌면 그것은 관습이 될 수 있고, 고정관념이 될 수도 있어요.
그런 규칙을 습득하려 노력하다 보니, 수정되어야 할 관습이 고정관념이라는 이름으로 변화되지 못해 발생하는 빈틈을 억지스럽게 외면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어요.
가끔, 초심자의 눈으로 그런 관습을 무시하고, 고정관념의 빈 틈을 인식하여 변혁을 유도하는 이단아들이 있어요. 물론, 기존에 있었던 존재들은 그런 이단아를 반갑게 맞이하지는 않지요.
누구나 익숙함에서 벗어나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은 잘 없으니까요.
익숙하고, 편안하고, 자신이 만든 규칙에서 안락함을 영위하고 싶어 하니까요.
때문에 이단아는 그렇게 환영받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지요.
그렇지만, 시대는 변하고 있어요.
사람들의 가치도 변하고 있지요.
어쩌면 우리는 그 틈을 찾는 이단아가 될 수도 있어요. 그런 이단아가 변화하는 세상을 가장 먼저 받아들이는 사람이 될 수도 있어요.
초심자의 눈을 가지세요.
항상 기존의 흐름에서 본다는 인식보다 새로운 관점에서 상황을 해석하는 눈 말이에요.
어쩌면 그런 시도로 인해서 판이 흔들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숨겨진 틈이 나타나겠지요. 그리고 그 틈이 기회로 연결될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