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쓰기 52일차
교직을 그만두고 창업을 준비했었어요.
원하던 형태의 창업에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여러 시도는 해 봤었지요.
창업을 배우기 위해서 여러 컨설팅도 참여하고, 설명회도 참여해 봤어요. 개인적으로 기관에 찾아가서 상담도 받았고요.
그러던 중 제가 너무 작은 세상에 살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지요.
학교에서는 그래요.
특히, 인문계 고등학교에서는 말이지요.
입시가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대학에 진학해야 마치 사회에서 생활할 수 있는 자격을 취득한 것 같은 착각을 가지고 살아가지요. 아니, 저는 그렇게 봤던 것 같아요.
공부에 대한 당위성을 위해 국어가 갖는 의미, 수학, 영어, 과학을 비롯해서 학교 교육이 갖는 의미, 학교 생활이 아이들에게 주는 의미, 교육에 대한 태도가 인생에 어떤 의미를 주는지에 대해서 고민도 했었고, 나름의 답도 찾아서 아이들에게 이야기해 줬다고 생각은 했었지만, 그럼에도 제가 찾은 답은 너무 작은 세상의 일부라는 죄책감을 지우지 못했어요.
학교에서 나오고, 생각보다 많은 제자들에게서 연락을 받았어요. 많은 아이들과 모임 자리를 하면서 제 과거에 대한 부끄러움의 마음이 있었지만 그래도 아이들은 긍정적으로 봐줘서 너무도 고마웠던 기억이 있었어요.
공부가 중요한 것은 사실이에요. 공부를 통해서 우리는 성장하고, 발전하고 배우니까 말이지요. 그렇지만, 학교에서 배우는 공부, 진학을 위한 도구적 공부에도 그와 비슷한 비중을 뒀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건 어쩌면, 저를 비롯한 교사들의 경험의 한계가 아니었을까 생각했어요.
초, 중, 고를 나와서 대학에 진학하고, 교직을 이수하고, 임용시험을 통과한 사람들이 교사가 되니까 말이에요. 큰 틀에서 보면,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했고, 공부하는 환경에서 이탈한 경험이 없으니, 살아오며 봤던 환경의 대부분이 학교였고, 공부였기에 더욱 그랬던 것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학교에서 나와서 여러 사람들의 삶의 형태를 만나고, 제가 만나지 못했던 삶의 영역에 속한 사람들을 알게 되고, 졸업 이후에 사회생활을 하는 제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더욱 깊이 깨닫게 되었지요.
나는 작은 세상에 살았구나.
대학에 못 가도 인생은 망하지 않는구나.
어떤 실패를 경험한다고 인생은 망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해요. 실패 가운데 나의 의지가 어떤지가 중요하지요.
비록, 사업에서 실패했다고 하여도 내가 일어나겠다는 의지가 있고 다양한 방법을 끝없이 찾는다면, 길은 어딘가에 있다고 생각해요.
비록, 대입에서 실패했다고 하여도 삶의 주인인 내가 학위라는 기준으로 나의 가치를 낮게 평가하지 말고, 나만의 길을 찾으려 노력하는 순간부터 인생은 새로운 길이 열린다고 생각하지요.
어쩌면 우리 삶의 성공과 실패의 기준이 “나”에게 기준을 둔 것이 아니고 사회적 인식에 기준을 두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의 삶을 더욱 낮게 평가하고 힘들게 인식하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혼도 못하고 혼자 살면서 얼마나 딱하니? “
종종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을 보는 어른들의 시선을 빌리자면 이런 말씀을 많이 하더라고요.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왜, 자신의 삶도 아닌 타인의 삶을 측은하다고 정의하는 것일까요? 정작 그들은 자신의 삶을 잘 즐기고 있는데 고작 결혼하지 않았다고, 마치 그것이 자신의 선택이 아닌 불가항력의 선택인 듯 인식하고 그들의 삶이 그렇게 행복하지 못하다고 정의하는 판단은 어디서 온 것일까요?
정작 물어보고 싶었어요.
그런 판단을 하는 그들의 “혼자가 아닌 삶”은 과연 행복한 삶이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요?
행복의 기준은 사회적 공통된 가치에 의지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본인이 좋아하는 삶을 살아가면 되는 것이지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혼자 있는 삶을 불쌍하다고 정의할 필요는 없어요.
누군가에게는 혼자 있는 삶이 그저 즐거운 삶이 될 수 있거든요.
꽃이 피는 봄날의 황금연휴에 여행을 가지 않고 집에 있다고 측은하게 볼 필요도 없어요. 그런 기간에 집에서 온전히 쉼을 추구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거든요.
행복의 기준은 저마다가 달라요.
내가 추구하는 행복의 길이, 나와 매우 가까운 누군가가 추구해야 하는 행복은 아닐 수 있거든요.
때문에 나의 행복을 그 사람에게 강요할 필요는 없어요.
같은 맥락으로 사회적 기준과 내가 느끼는 행복이 다르다는 이유로 내 삶이 불행하고 측은하다 정의할 필요도 없어요.
스스로에게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나는 언제 행복한가?
나는 언제 평안을 얻는가?
나는 어떻게 에너지를 충족시키는가?
나는 어떤 환경을 선호하는가?
그에 대한 답을 찾는 게 먼저라는 생각을 해요.
그리고 그런 앎이 있다면, 내가 목표하는 것에 대한 실패를 마주하게 되더라도 그것은 그저 소소한 삶은 한 부분이지 내 인생을 흔들 무엇은 아닐 것이라고 확신해요.
계획처럼 실행되지 않았다고 실패라고 할 수 없어요. 오히려 더 좋은 성공을 위한 기회일 수도 있어요.
실패해도 망하지 않아요. 오히려, 목적에 너무 집착해서 좁아진 시야를 넓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어요.
그렇게 되지 않아도 망하는 건 아니에요.
그런 마음으로 살아가면 좋겠어요.
그래서, 내게 유연한 사람이 되면 좋겠어요.
그런 유연함이 관계에서 여유로운 사람으로 다가가면 좋겠고요.
그런 여유가 나와 관계하는 사람들에게도 스며들어가는 사람이 되면 좋겠어요.
마치, 언덕에 있는 나무 그늘에서 느껴지는 산들바람처럼 말이지요. 그런 여유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좋겠어요.
쉬어가요.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