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쓰기 54일차
아이러니하게도.
선생님들은 자신의 수업이 아닌 다른 선생님의 수업을 볼 일이 잘 없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혹여 학교에 대한 기억이나 경험이 있는 분들은 “무슨 소리야? 공개수업도 있고, 연구수업도 있는데 그렇게 보면 되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교사가 평소에 아이들과 호흡하며 하는 순수한 수업이 아니라고 할 수 있지요. 발표를 위해서 준비된, 어느 정도 계획된 수업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정말 순수하게 학생들과 호흡을 맞춰가며 하는 수업을 다른 동료 교사에게 공개하거나 볼 기회는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어느 날 수업을 하는데, 예고하지 않고 교실에 찾아간다 하더라도 적어도 아이들은 뒤에 온 누군가를 의식하며 평소와는 다른 수업 태도를 보일 수 있으니까요.
그러다 보니 선생님 개인은 본인의 수업이 얼마나 전달력이 있고, 학생들에게 매혹적으로 다가가는 강의를 하는지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당연히 그럴 것이, 교사에 대한 학생의 선호도에는 단순한 수업 능력, 교과적 지식 전달 이외에도 여러 요소가 더해지기 때문에 그렇겠지요. 아마, 사교육에서 “선생님”에게 바라는 기대치와 공교육에서 “선생님”에게 바라는 기대치의 차이라고 이야기하면 더 쉽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초임 교사의 경우 자신의 수업에 대한 부족함을 느끼거나, 학력등에서 오는 이유로 강의에 대한 극도의 자신감을 보이는 등 극과 극의 반응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경험치가 누적되면서 조금씩 자신의 수업에 대한 자신감이 쌓이게 됩니다. 아무래도 일반적 수업에서 특별하게 부족하지 않은 이상 지적당할 일이 없으며, 교사 개인의 수업에 관여하는 사람도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이겠지요.
그러다 보니 본인의 수업 역량 발전을 위해서 그렇게 노력하는 교사는 잘 없습니다. 물론, 교과에 대한 전문지식에 대해서는 분명 경험치의 누적과 비례해서 우수성이 올라가겠지만, 강의 전달력에 있어서는 그렇지 않을 확률이 높지요.
내가 가진 교과에 대한 전문성은 날이 가면서 더욱 우수하게 되지만, 발성, 판서, 언어적, 신체적 표현 방법에 대한 부족에 대한 문제점은 크게 깨닫지 못하고 부족한 아이들만 탓하게 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경험치의 누적에 비례해서 전문성도 더해진다는 생각에 빠져있다 보니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서는 자존심이 상하는 경우가 많이 생기지요.
자존심을 버릴 수 있는 사람이 정말 강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때문에, 오랜 시간 한 교과에 대해서 강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유명 사설 강사의 강의를 찾아보고, 그들이 논리를 전개하는 방법을 분석하고, 언어적, 신체적 표현 방법을 익히려 노력하는 선생님들이 정말 역량 있는 선생님으로 보이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성적을 올리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무엇을 배우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구분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쉽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안다고 착각하는 것을 구분하는 힘”이 필요합니다.
때문에 학생들은 공부하면서 문제집을 풀이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안다고 착각하는 것을 발견하는 연습을 하지요. 그렇게 발견한 것을 이제 모르는 것에서 아는 것으로 바꾸는 과정이 오답노트 분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집을 풀이한다는 것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구분하고, 모르는 것을 줄여가고, 아는 것을 견고하게 만들어가는 단계라고 할 수 있지요.
재미있는 것은 많은 학생들이 문제를 풀어보고, 아는 것을 확인하고, 모르는 것은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조금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모르는 것을 줄여가는 학생들이 소수의 학업 성취도 우수자가 되는 것이고, 모르는 것을 그냥 넘어가는 학생들이 나머지 다수의 학생이 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공부하지 않는 사람의 입장에서 본다면 참 당연한 논리입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하지 못할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자신의 무지가 노출되는 것에 자존심이 상하기 때문입니다. 나의 무지가 노출되는 게 싫고, 나의 학습 능력에 대한 약점을 노출하는 것 같아서 자존심이 상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많은 학생들은 아는 것을 확인하는 공부를 반복하며 그렇게 효율적이지 않은 학습 방법으로 많은 시간을 소비하게 되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제조업을 하면서 기계 조작 과정에서 새로운 설정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기계 사용법에 대하여 정리된 책을 봤지만, 생략된 설명이 많다 보니, 새로운 방직 방법을 기기에 설정하기 위해서는 더욱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했지요.
여러 방법을 시도했지만, 만족스러운 방법을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기계 정비를 담당하는 기사님께서 어떻게 설정 방법을 알게 되어 알려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원하는 방직 기술을 적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그것이 성공한 이후에 어른들의 반응이었습니다.
“그렇지, 그럴 줄 알았지. “
“아! 맞다!! 그거였지!!”
마치 모두 알고 있었는데, 잠깐 잊었다는 것 같은 표현법이었지요.
불과 10분 전까지만 해도 불가능하다. 그런 기술 구현은 이 기계에서는 되지 않는다고 이야기했으면서 말이지요.
“내가 몰랐던 것을 알려줘서 고마워”
참 쉬운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말 하나 하는 게 그렇게 힘들까요?
결과적으로 조작 방법이 아무리 간단했다 하여도, 그것을 고민하고 방법을 찾는 사람의 노하우와 전문성에 대해서 감사를 표현하는 것은 결코 자존심을 숙이는 행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고맙다는 표현에는 인색한 모습이 단순히 제가 아는 어른들의 모습만이 아닌, 우리 대부분이 가진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봤습니다.
자존심을 지킬 필요는 있습니다.
그렇지만, 때로는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 너무 많은 것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마치, 옛날 어떤 이야기에서 나오는 선비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가족이 굶어 죽어도 글공부만 하는 어떤 선비의 모습과 같기도 합니다.
자존심을 지키는 것이 때로는 숭고하게 느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만큼 신념을 위해서 많은 것을 희생하기 때문에 그것이 더욱 높이 평가되기도 하지요. 그렇지만, 때로는 알량한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 의미 없는 것에 연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는 요즘 가끔, 절대적인 무게는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자존심이 중요하지만, 가끔은 그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을 수 있고, 때로는 자존심이 더 중요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 말이지요.
“미안해”라는 말로 가끔 자존심이 흔들리는 것 같지만, 때로는 자존심을 버리고 그 말을 함으로 가족이 회복되는 경우도 있지요.
“고마워”라는 말로 가끔 나의 무지가 노출되는 것 같고, 내가 가진 전문 영역에 대한 자존심이 흔들리는 것 같은 경우도 있지만, 그로 인해서 내가 가진 격이 올라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디서든 절대적인 무게는 없습니다.
때문에 자존심이 모든 것에서 항시 우선이 될 수도 없습니다.
가끔은, 자존심을 내려 둘 필요도 있습니다.
그건 결코 싸움에서 항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그것이 더 큰 승리가 될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