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뚤어진 시선, 본질의 상실

매일 쓰기 60일차

by Inclass

아침에 일어나는데 허리가 너무 아프더라고요.

씻는 것도 힘들고, 왼쪽 다리와 엉덩이가 저리면서 발가락 끝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느낌까지 들었지요.


아마, 전날 아이와 너무 즐겁게 레고를 하며 바닥에 오랜 시간 앉아있다가 허리에 무리가 갔던 것 같아요.


아니나 다를까 병원에 가서 촬영을 하고 의사 선생님께 상담을 받으니 디스크라고 하더라고요.


주사를 맞고, 물리치료를 받았어요.

약 2주일 정도 계속해서 주사와 물리치료를 병행했지요. 사실, 물리치료라고 해도 온열찜질과 저주파 자극, 견인치료가 전부였지만 말이에요.


1주일이 지나는 시점에서 조금씩 상태가 좋아지는 것 같아서 걷기 운동을 병행했어요. 목욕탐에 가서 따뜻하게 찜질도 자주 했지요. 그래서 그런지 아무래도 상태가 많이 호전되더라고요.


2주일의 치료가 끝나고 이제 주사는 맞지 않아도 된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에 언제까지 물리치료를 해야 하는지 물어봤어요.

의사는 당연하다는 듯이 앞으로 1년은 빠지지 않고 와서 물리치료를 받으라고 하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어처구니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니, 그 정도의 물리치료가 병행되어야 한다면 엄청난 질환이고 정말 그렇게 심한 질환이면 입원치료를 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1년이라는 말에 저는 환자가 아니라 호구가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지요.


그날부터 병원을 가지 않았어요. 운동과 스트레칭, 바른 자세를 유지하면서 디스크와 관련한 책을 찾아 읽으며 좋은 부분을 배우려 했지요.




아이의 비염약을 구입하려 약국에 갔어요.

제가 원하는 약을 주던 약사는 제가 말 한 약을 주면서 다른 약도 좋다고 추천을 하더라고요. 가격은 저렴하고 약의 주 성분에 대한 함량이 높고 한방성분이 많아서 아이에게 더 좋다는 말이었어요.


귀가 얇아서 그 약을 구입했지요.

그런데 이전에 먹던 약보다 증상이 더 심해지더라고요. 보통은 조금만 먹으면 많이 완화되었는데, 새롭게 받은 약은 그렇게 효과가 있다는 느낌이 아니었어요.


나중에 알게 되었어요.

제약회사에서 일하는 옛 친구에게 말이지요.

가끔 의사, 약사에게 자신들의 회사에서 납품하는 약을 많이 판매해 달라고 추천을 받는다는 이야기를 말이지요.




의사는 생명을 소중하게 여겨야 해요.

약사도 그렇지요.

교사는 학생의 성장과 발전에 노력해야 하고요.

신앙인은 한 영혼에 집중해야 하지요.


그런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아요.

물론 각각의 영역에서 본질적인 가치에 집중하여 소명의식을 가지고 그 일에 임하는 숨겨진 보석이 많지만, 상당수의 사람들은 본질에서 멀어져서 경제적 이득을 위해서 일하는 경우가 많지요.


정치적 성향을 노골적으로 나타내는 종교인, 개인의 안위를 위해서 학생을 가볍게 여기는 교사, 경제적 이득을 위해서 환자를 관리하는 의사와 약사. 뭐, 정치인의 경우는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으니 생략하지요.


본질을 찾아야 해요. 말은 쉽지요.

문제는 어떻게 본질을 찾을까에 대한 방법론이겠지만요.


최근 들어서 가치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서 자주 생각해요. 제가 많이 생각하는 가치 교육 중 하나는 얼마의 수익을 얻어야 우리는 행복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이지요.


직장을 구하는 취업 준비생은 어떻게든 내가 일 할 곳이 있다면 행복하다 생각하겠지만, 정작 일을 시작하면 부족한 복지환경과 그에 맞지 않는 급여에 불만을 갖게 되지요. 급여가 높아진다 하여도 언제부터인가 자신의 위에서 군림하는 상급자 때문에 역시나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요. 직급이 올라가도 그 위에 있는 누군가로 인해서 역시나 힘들게 되어 있어요.

물론, 경제적 이득을 어느 정도 만족시키면 권력에 대한 욕심이 생기기도 한다고 하지요.


가장 중요한 것은 나는 어느 정도의 최소 목표를 가지고 있으며, 그 목표를 이룬 시점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확신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 봤어요.


그렇지 않으면, 사람은 더, 더, 더 벌어야 하고, 더 많은 권력을 요구하게 되고, 어느덧 본질은 사라지고 내가 원하던 것의 노예처럼 삶이 끌려가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지요.


가치의 교육은 부모에게 우선적으로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요.

정말 삶을 살아가면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아이에게 알려주고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아이가 원하는 것을 모두 해 주는 부모가 결코 좋은 부모라고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끝없이 바라는 아이의 마음을 알고 그것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도록 하는 힘을 주는 게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하지요.


때문에 부모 역시나 원하는 것을 참는 인내를 보여줘야 하고, 어느 정도의 목표를 충족하면 본질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아이도 그런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지요.


우리 모두는 행복한 삶을 꿈꾸며 살아가니까요.


그런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 힘이 있는 아이로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어른이 먼저 행복한 삶이 무엇이고 어떤 형태이며 그에 대한 바른 이상향이 갖춰져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요.


그러기 위해서 어른은, 성인은 행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떤 게 행복이며, 우리는 어떤 삶을 위해서 살아야 하고, 어떤 방향으로 움직여야 하는지 말이지요.


교직에 있으면서 가장 아이러니하게 느낀 부분이었어요.

과거 학교 선생님들은 지금보다 훨씬 많은 학생들을 지도하며 훨씬 많은 일을 컴퓨터를 이용해서 하는 게 아니라 직접 손으로 쓰면서 문서를 작성하고 직접 목적지로 이동해서 공문서를 발송하곤 했지요.

그럼에도 그때 당시 과로사로 죽는다거나, 매일 시간 외를 달아서 밤늦은 시간까지 학교를 지키는 선생님보다는 저녁시간을 가족과 함께, 동료들과 함께 보내는 경우가 더 많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제가 교직에 있던 시기에도 과로로 목숨을 잃은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를 종종 들었지요. 물론, 그런 모든 이야기들이 언론에 공개되지는 않았어요. 사람들은 뉴스에 나오지 않으니 그런 일이 없었다고 알고 있지만, 그런 경험의 누적이 저로 하여금 언론의 보도가 진실의 전부는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기도 했지요.


아무튼, 다시 이야기로 돌아갈게요.

기술이 발달하며 학교 업무는 과거보다는 생각보다 편하게 바뀌었어요.

학생의 수가 줄어들었고, 상당 부분의 업무가 컴퓨터를 활용하여 보다 빠르게 진행되었고,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상당 부분의 업무 처리도 가능하게 되었지요. 그렇지만, 선생님들의 업무 시간은 더 많아졌어요.


아이러니하지요.

일을 처리하는 속도가 빨라지면서 일은 더 많아지니까 말이에요.


저는 개인적으로 가치의 부재라는 생각을 했어요.

정확한 목표치가 존재하지 않지요. 아니, 존재하지만 그것은 추상적이지요. 그러다 보니 어떤 기준점에 대하여 완성도를 높이는 일의 처리보다는 기준점에 다다르는 즉시 새로운 기준점이 나타나고 그만큼 일이 더해지는 구조가 되는 것 같아요.


리더가 가진 가치의 부재가 아닐까요?

올해의 목표치가 완료되면 그것에 대한 밀도를 높이는 작업이 이어져야 하는데, 목표치 성취 이후 새로운 목표치를 부여하게 되지요. 당연히 밀도는 떨어지게 되고요. 구성원은 쉽게 지치게 됩니다.


가치의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가치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고요.

가치는 모두 다를 수 있으니까요.

자신이 목표하는 가치를 분명하게 하고, 그에 대하여 사람들과 소통하는 가운데 어쩌면 본질에 집중할 수 있는 힘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해 봤어요.

가치를 찾게 되면서 일과 직업이 가지고 있는 순수한 의도가 회복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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