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쓰기 66일차
블로그, 브런치를 통해서 온라인에 기록을 남기기 시작한 것은 퇴직 이후부터였어요.
학교에 있던 시기, 조직에 속해있던 시기에는 저에 대한 증명이 어디에 소속된 어떤 직급의 누구라는 말로 증명이 가능했었지요.
그런 소개가 저에 대한 전부라고 생각했었어요. 그리고 그런 소개는 계속 저를 따라다닌다고 생각했었지요.
퇴직 이후에 창업 컨설팅을 다녔어요.
저에 대한 호칭을 어떻게 해야 할는지 모르겠더라고요. 보통 컨설팅을 간다면, 그곳에서는 쉽게 “대표님”이라는 호칭으로 저를 불러주곤 하지요. 그런데, 그 호칭은 그냥 부르기 편한 호칭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명확하게 이야기하면 저를 대표하는 어떤 명칭은 아니었지요.
저에 대한 소개는 간단해요.
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쳤고, 퇴직을 했고, 지금은 제조업을 하고 있지요.
그런데 말이지요.
그걸 어떻게 증명할까요?
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쳤다는 것 말이에요.
지금 제조업을 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는 많이 있어요. 물론, 개인의 정보이기 때문에 온라인에 쉽게 공개하기는 힘들지만 말이에요. 하다못해 제 사업장을 보여주고, 제 사업장에서 생산하는 결과물을 공유하는 것도 지금 제조업을 하고 있다는 증거가 될 수 있겠지요.
그런데, 과거 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쳤다는 것은 어떻게 증명할까요?
급여 명세를 뽑는 방법도 있고, 경력 증명을 뽑는 방법도 있을 거예요. 그런 행정적 방법이 있겠지만 그것만으로 저에 대한 증명이 가능할까요?
제가 가지고 있는 교육관, 가치관, 교육 경험에서 나오는 노하우와 같은 부분은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요?
학교를 나오고, 잠시 쉬는 기간 동안 과외를 해 보려 했었어요. 과외 소개 사이트에 강사에 대한 소개를 넣어 봤지요. 출신 학교, 교육 경험, 희망 급여, 가능한 학년 등등.
필요한 내용을 채워 넣으면서 알게 된 것은 그런 내용을 넣는 것으로 저에 대한 증명은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제가 가진 아이덴티티에 대한 증명이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과외는 하지 않았어요.
더 좋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학교에서 나와서는 사교육에 뛰어들고 싶지는 않았던 이유도 있고, 그렇다고 저렴한 금액으로 과외를 하기에는 혹여 제가 너무 무책임하게 될까 봐 걱정이 되었어요. 차라리 배우지 못했던 더 많은 것을 공부하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이거 관두고 학원을 해야 하는데.
학교에 있으면서 많이 들었던 말이고, 했던 말이에요.
사실, 많은 선생님들이 자신의 교과를 더욱 재미있게 지도하고 싶다는 생각에 교사가 되지만, 정작 학교 현장에서 교사가 마주해야 하는 것은 엄청나게 많은 공문 처리와 학교 행사 준비, 업무 처리, 학생 상담 및 기타 잡무 등등이 주류를 이루거든요.
가끔 업무에 시달려 만족스럽지 못한 수업 준비 후 교실에 들어가야 할 때면 그런 푸념을 하게 되더라고요. 이럴 거면 학원을 할 걸. 학원은 적어도 수업에 집중할 수 있는데.
그때는 당연하다고, 자연스럽게 생각했었는데, 학교를 나오고 알았어요.
모르는 사람들의 눈에는 모두 같은 학원이고, 선생님인데, 무엇으로 그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겠냐는 생각 말이지요.
“나는 고등학교에서 10년간 교사를 했어.”
마치 그것이 뒤돌아서던 학부모를 사로잡는 마법의 주문이라 생각하지만, 그것을 명확하게 증명할 수 있는 근거가 존재하지 않는 이상, 학부모의 관점에서 그는 그저 “학교와 계약을 했던 경험이 있는 학원 강사”가 될 수 있는 것이지요.
언젠가 아이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백종원 대표의 전공을 아는 사람?
백종원 대표가 가진 자격증을 아는 사람?
아무도 없었어요.
그렇지만, 아이들은 백종원 대표가 요리에 대해서는 매우 지식과 노하우를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요.
무엇 때문에 가능했을까요?
그 사람이 여러 방송에서 보여준 말과, 문제 해결 능력, 표현을 바탕으로 사람들에게 신뢰를 얻었다고 생각해요.
자격증과 졸업증을 바탕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걸어온 길에 대한 흔적이 사람들에게 그의 전문성을 증명하는 근거가 되었다고 볼 수 있지요.
과거, 온라인이 활발하지 않던 시기에는 그 사람의 우수성을 증명하기에 자격증을 비롯한 서류가 주류를 이루었던 시기가 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세상은 바뀌고 있지요.
언젠가는 그 사람이 가진 자격증이 사람의 능력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그동안 걸어온 길의 흔적이 그가 가진 능력을 대표하고 사상과 가치를 보여주는 근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하루를 기록하세요.
당신의 삶의 흔적을 기록하세요.
그 기록이 당신의 것이라고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도, 말하지 않는 것도 당신의 선택이지만, 적어도 기록이 있어야 그런 선택의 주도권도 당신에게 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한 장의 서류로 자신을 증명하기보다는, 걸어온 길이 사람에 대한 증명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 문화가 자연스럽게 되어서 단지 능력만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 간절한 사람, 성실하게 준비한 사람, 사명감이 있는 사람, 그에 맞는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기회가 주어지는 세상이 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