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하지 않아도 깨닫게 되는 빈칸

매일 쓰기 111일차

by Inclass

많이 바쁘지?

힘들지?

괜찮아?


종종 그런 안부를 듣게 되면,

그냥, 뭐.

아니 괜찮아요.

그런 대답을 하게 됩니다.


누구나 그렇지요.

어떤 미덕인지 모르지만,

자신의 어려움과 바쁨을 표현하는 게

마치 자신의 약점을 표출한다고 생각하는 건지

그냥 그렇게 괜찮다고 이야기합니다.


사실 정말 괜찮은 건 아닌데 말이지요.

이런저런 다른 이야기를 나누며,

분위기를 풀어주는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조금씩 마음속 무거움이 나타나게 됩니다.


모든 문제를 알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각자의 속도가 있고,

각자의 깊이가 있으니까요.


문제를 바로 표현하는 사람이 있고,

문제를 덮어두고 고민하는 사람이 있으며

문제가 해결되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크기와 깊이는 다르지만,

저마다의 빈칸이 있습니다.


마음속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는

빈칸을 인식하기까지

상대의 빈칸을 기다려주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교실 점검을 위해서 복도를 돌아보다가,

어둑해지는 교실에서 혼자 나오는 아이를 봤습니다.

평소 수업시간에 자주 봤던 아이였는데, 이상하게 아이의 표정이 어두웠습니다.


후다닥 교실에서 나오는 아이에게,

가볍게 인사를 하고, 아이도 꾸벅 인사를 하더군요.

그렇게 돌아가는 아이를 불렀습니다.


저녁은 먹었는지, 함께 어울리던 친구는 어디 있는지 등등의 이야기로 싱거운 소리를 하다가 혹시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냐고 물어봤습니다.

아이는 별 일이 아니라고 말하고 다시금 꾸벅 인사를 하고 가려하더군요. 돌아서는 모습에 언뜻 어두움이 느껴진 것 같았어요.


산책을 핑계로 아이와 교문까지 걸었어요. 그리곤 수업시간 있었던 농담과 특징 있는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를 했지요. 그렇게 싱거운 소리를 하다가 아이의 피식 거리는 얼굴을 보고는 인사를 했어요.

내일 보자고.


혹시, 이야기할 사람이 필요하면 언제든 오렴.


며칠이 지나고, 교무실 앞에서 아이는 제게 작은 쪽지를 내밀더라고요.

친구 관계로 어려움이 있었고, 그 어려움을 피해서 혼자 교실에 있었는데 그렇게 혼자 있는 자신의 모습이 너무 싫었다고 하더라고요. 마침 제가 교실을 돌아보던 시간이었고, 아이는 빈 교실에 혼자 있다가 혼날까 걱정되어 도망치듯 나오다가 저를 만났다고 하더라고요. 잠시 나눈 이야기 덕분에 조금은 기분 전환이 되었다고, 그날 아무런 말 못 해서 죄송하다며 자신의 이야기를 제게 이야기해 주더라고요.




가끔 우리는 염려와 걱정으로 포장된 호기심과

관심을 혼동하는 것 같아요.


누군가에게는 그런 관심이 귀하겠지만,

누군가에게는 그저 혼자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기도 하지요.


사랑한다는 이유로,

아낀다는 이유로,

스스로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지 마세요.


염려와 걱정이라는 알량한 핑계로,

자신의 호기심을 충족시키려 하지도 말고요.


저마다의 빈칸이 필요해요.

각자가 가진 빈칸의 크기는 모두 다르겠지만,

사랑한다면,

아낀다면,

소중하게 생각한다면,

그가 스스로의 빈칸을 채울 수 있도록,

믿음을 가지고 기다려 주는 지혜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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