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커리큘럼으로 자란 세대인걸요.
양말에 구멍이 났다.
단색으로 깔끔하게 표현되어야 하는 양말의 속실과 겉실이 고르게 나오지 않고 불규칙한 지점에서 일부 속실과 겉실의 위치가 바뀌면서 얼룩덜룩하게 보인다.
이런 경우는 기계를 점검해야 한다.
편직기에 붙어있는 솔의 높이와 닳은 정도를 알아봐야 하고, 솔이 쓸어주는 바늘의 위치와 바늘에 실을 주입하는 사도라는 명칭의 부품이 고정된 높이, 위치를 비롯해서 다양한 요소를 문제의 원인으로 고려하고 점검해야 한다. 결과물에 발생하는 문제의 원인은 하나의 문제로 귀결되지 않는다. 여러 원인과 문제 발생 가능성을 고려하고 최적의 조합을 위해서 고민해야 한다.
롹음악을 들으면서 공부했어요.
교과서만 보면서 공부했어요.
홍삼을 먹으면서 공부했어요.
처럼, 하나의 이유로 수능 만점자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닌 것과 같이 기계가 만든 결과물에 발생하는 문제 또한 하나의 이유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그러다 보니 우리 공장의 수석 엔지니어이자 대표인 아버지께서는 문제의 원인이 무엇이라고 정확하게 이야기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낀다.
드라이버로 부품을 풀어보고, 부속을 정비하고, 다시 나사로 조여주고 기계를 작동한다. 그리고 하나의 출력물을 확인하고, 변화가 없으면 다시 다른 부속을 정비하고 기계를 작동한다. 다시 출력물이 나오는 시간을 기다린다. 꼼꼼한 대표님의 눈과 손의 감각에 흠이 없는 결과물이 출력되는 순간까지 지루하고 마치 답이 없을 것 같은 작업은 반복된다. 빠르면 몇 분, 늦으면 며칠이 걸리기도 한다.
가끔은 기계의 문제가 아닌 경우도 있다.
실의 색상 농도에 따른 탄성의 차이가 있으며, 속실이 갖는 탄성의 차이도 있고, 때로는 겉실이나 속실이 불량이어서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기계의 문제라도, 속실이든, 겉실이든 무엇이 문제이든 고쳐야 한다. 그래야 기계는 자신의 가치를 우리에게 증명하는 것이 되고, 원재료인 실과 우리의 시간 또한 가치 있게 사용되는 것이다.
기계를 고치는 아버지의 보조를 하면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보고 있었다. 아버지 나름은 친절하게 설명해 주시지만, 이 정도의 힘으로, 이 정도로 조여주고, 너무 힘을 주지는 말고…라는 말은 아직 어렵게만 느껴진다.
예전에는 몇 년 동안 보조만 했었다고 한다.
기본적인 공구도 하나 만지지 못했다고 한다.
그렇게 보조를 하면서 급여도 적었지만, 밥을 굶지 않는 것에 만족하며 일을 했었다고 한다.
그렇게 배웠으니, 지금 시대에 기계를 만지는 기술을 구사하는 어른들 대부분이 그렇게 배웠으니, 그들이 가지고 있는 기술과 노하우를 다음 세대에게 전달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교육과정 없이 스스로 관찰하고, 경험으로 배운 세대와 정해진 교육과정으로만 성장한 세대의 차이가 아닐까?
대학을 나오고, 대학원을 나왔으며, 남들이 어렵다고 이야기하는 수학을 전공했다. 학교에서 오랜 시간 아이들을 지도하면서 단순히 내 전공과목이 아닌 분야에서도 아이들을 지도하고 새로운 분야를 열어갔던 경험은 앎에 있어서 어느 정도 수준에는 있다고 나름 자부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아이가 태어났다. 어느 12월의 겨울.
예정일에 맞춰서 태어나야 했으나, 예정일 하루 전에도 아무런 소식이 없었기에 병원에서는 유도분만을 권유했고, 예정일 바로 전 날 저녁을 먹고 입원 수속을 밟았다.
다행스럽게 밤 12시가 되면서 산통이 시작되었고, 새벽 무렵 아이가 나올 기미가 보였다.
의사와 간호사가 모였고, 잠시 나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잠시 후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병실에 들어가서 탯줄을 자르는데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았다. 출산 과정이 원만하지 않았고, 아이는 바로 인큐베이터로 갔으며, 산모는 응급처치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데 의사와 간호사가 분주하게 들어오고 나가고를 반복한다. 급한 마음에 간호사를 잡아서 물어봤다. 상황이 어떻게 되는지 보호자에게 적어도 설명은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그러자 의사가 나와서 상황의 위급함을 이야기했다.
출혈이 심했으며, 3번의 응급 처치가 있었고 이번에도 출혈이 멈추지 않으면 대학병원으로 옮겨야 한다는 것이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는지 몰랐다.
그냥 기다리고 기도하는 방법밖에는.
다행스럽게 더 이상의 출혈은 일어나지 않았고, 우리는 병실로 이동하여 3일을 지낸 후 병원에서 운영하는 조리원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아내와 아이가 안정을 찾고 먹고, 자고의 평범함이 우리의 삶으로 찾아왔다.
면회를 오신 부모님을 모시고 식사를 하면서 문득, 그분들의 젊은 시절을 상상했다.
배움이 없었던 시절, 지금처럼 인터넷을 통해서 언제든 전문적인 지식을 찾기 힘들었던 시절, 자신의 경험과 배움, 습득된 최소한의 정보로 모든 것을 결정하고 판단했어야 하는 부모님의 삶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정해진 교육과정과 구조적 틀에서 성장한 우리의 세대와 그분들의 세대가 다름에 대해서 새삼 느끼게 되었다.
갈등의 시작은 오해에서도 있으나, 앎의 차이와 배움의 차이에 기초한 안목의 차이에서도 있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무런 정보 없이 자신의 사업을 만들고, 자신의 앎을 형성했던 부모의 세대와, 정해진 교육과정으로 공부하고, 정해진 길을 따라서 걸어가며, 앞선 지식을 찾는 방법을 습득한 세대의 차이처럼 말이다.
주어진 것을 습득하며 문제를 해결하고 한 걸음 앞으로 나가기 바쁜 삶을 살았던 세대에게 그것을 전수하는 기술의 부족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수용해야 할 부분이 아닐까 배우는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 때문에 나 또한 그들이 배운 방식과 같이 잘 관찰하고, 잘 듣고, 기억하며 몸으로 익히고 경험하고 배워야 한다. 아니, 교육과정에서 성장한 사람의 강점을 살려서 그분들이 표현하지 못하는 부분까지도 학습할 수 있어야 한다.
기술을 배우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니다.
정해진 교육과정에서 성장한 세대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그렇지만, 세상에는 정해지지 않은 규칙이 더욱 많이 있다.
모두가 걸어가는 정해진 틀의 길을 따라서 걸으며 그 가운데 성공의 길을 찾는 것이 쉬운 것인지, 소수의 사람이 걸어가서 아직 정해진 규칙이 존재하지 않은 영역을 걸어가며 자신의 길을 만들고 그것을 성공의 방향으로 연결하는 것이 쉬운 것인지는 누구도 확언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지만, 이런 길도 있고, 저런 길도 있음을 인지하는 것에서 세상의 넓음에 대한 인식이 시작되고 그것을 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이미 선택의 폭이 넓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