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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class Jul 25. 2024

책임의 끝은 어디인가?

매일 쓰기 131일차

가르치다는 말은,

좋은 행동과 나쁜 행동을 가르고,

나쁜 것은 가지치기하듯이 잘라내고,

좋은 것은 남겨둬서,

아이가 바른 방향으로 성장하게 하는 것 입니다.


가지를 친다는 것,

좋지 않은 가지를 자른다는 것에는 분명 고통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고통이 있어야,

좋은 가지가 잘 자라게 되겠지요.


학교에서 아이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소파를 두고,

오고 가며 아이들이 그곳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공간을 만들었지요.


언제나 그렇듯,

목적에 맞지 않게 공간을 활용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누군가 앉아서 쉬는 자리에,

신발을 신고 뛰어 올라가는 아이들 말이지요.


무지에 의한 잘못은 배우면 됩니다.

그리고 수정하면 됩니다.

학교라는 공간에서 교사라는 존재는

아이들에게 그런 무지를 깨우치게 합니다.


그 아이도 그렇게 뛰었습니다.

이미 벌점이 너무 많아서 징계의 수위에 이른 아이.

수업시간 태도가 좋지 않아서 항상 지적받는 아이.

그날도 그 아이는

쉼을 위한 공간에서

신발을 신고 뛰어놀고 있었습니다.


교사는 그 아이를 지도하려 했습니다.

신발을 신고 올라가지 말라고,

내려오라고.

벌점 때문에 아이가 징계를 받을 수 있으니,

말로 하려 했지요.

그렇지만 아이는 듣지 않았습니다.

교사가 아이의 행동을 제지하려 다가가던 그때

아이는 눈 깜짝할 사이에 교사의 허리춤을 잡고

소파로 내동댕이 쳤습니다.


많은 아이들이 그 사건을 목격했습니다.

그리고 이야기는 바로 전달되었지요.

교육청에서는 교사와 학생을 분리조치 했어요.

잠시동안 교사는 타박상을 치료받고 심리치료를 병행했지요.


학생은 일시적 등교 중지가 되었어요.

교사에게 행한 물리력에 대한 반성의 시간을 줬지만, 아이와 아이의 부모는 오히려 진단서를 받을 수 있는 병원을 찾아다녔고, 학교에 항의했고, 학대를 빌미로 교사를 신고했어요.


상황은 교육청의 주도로 움직이지만,

한 조직의 움직임 보다,

개인에 의해 주도되는 다양한 조직의 움직임이 더 빨랐지요.

학생이 학대당했다는 부모의 일방적 주장을 확인하기 위해 중립적으로 보이는 여러 기관이 다녀갔고, 교사는 그때마다 아이에 대한 기억을 다시 해야 했지요.


이제 교직을 시작한 젊은 교사는,

부모의 관여를 바라지 않았어요.

그냥,

아이가 죄송하다고 사죄하면 좋겠다 했어요.

모르고 그럴 수 있으니

아이니까 그럴 수 있다고.


학생, 학부모의 뜻은 다른 것 같아요.

네가 잘 못 했으니까.

교사가 와서 미안하다 해야지.

교사가 내 아이 뭐라 했으니.

우리 아이가 그렇게 행동한 거 아니겠어?


책임의 끝은 어디일까 생각해 봤어요.

과연,

등가교환이란 존재할까요?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

우린 얼마나 책임지고,

얼마나 보상받아야 하고,

얼마나 위로받아야 할까요?


그런

상황에도 의연하게,

남겨진 아이들을 지도하며

묵묵하게 자신의 일을 하는 젊은 선생님을

응원하게 됩니다.

부디 이 일이,

열정 있는 교사의 가지를 꺾지 않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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