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쓰기 132일차
시간이 갈수록 더 힘들고 더 바쁜 것 같아.
삶이란 무엇일까?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까?
방학을 하고, 오랜만에 친한 선생님들과 자리가 있었습니다.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면서 근황을 이야기 나누었지요.
제가 나온 후에도 학교는 여전히 바쁘고,
갈등은 더욱 심해지고,
누군가의 희생은 더욱 당연하게 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아이들을 위해서”
라는 명목으로
수업을 준비하고, 진학 상담을 하고, 생활지도를 하고,
업무를 처리하고, 운영 계획을 준비하고.
정말 많은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위한다는 이유로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소수의 듣는 아이들을 위해서 수업을 준비하고,
성장하려는 소수의 아이들을 위해서 여전히 새로움을 추구하고,
그럼에도 변하리라는 기대로 상담하고, 다독이고, 혼내고, 품어주고.
그렇게 하루하루의 문제를 풀어가며 보냈던 시간이
어느덧 10년이 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제가 그들을 알게 된 것이 10년의 시간이 넘었지요.
여전히 10년 전의 갈등이 지금도 이어지고,
그때의 문제가 풀어지기보다는
가치의 변화로 더욱 많은 문제가 누적되고
그에 따라서 풀어야 할 문제는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좋은 삶을 꿈꾸는데,
행복한 내일을 꿈꾸는데,
교직이라는 시간은 어떻게 보면
너무 힘겨운 일이 많아서
일상의 소소함이 아름답게 기억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교직을 그만하게 되고,
처음 집에서 보냈던 3월의 첫 주를 기억합니다.
유치원에 아이를 등원시키면서, 하원시키면서,
잠들기 전 책을 읽어주고
잠든 모습을 보면서,
만약 그 일을 계속했다면
이런 소소함을 못 봤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이 힘들어도 충분히 가치 있다며 생각했지요.
함께 자리를 나눈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비슷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을 위해서.”
라는 말 때문에 업무에 집중하고,
학교 일에 집중하고, 그렇게 정신없이 보내다 보니
정작 내 아이의 성장하는 모습을 못 봤다고 합니다.
어느 날 스마트폰 사진첩을 보니,
학생들 사진,
학교 행사 사진,
업무와 관련한 메모를 찍어둔 사진이
가족의 사진보다 많은 자리를 차지하더라고 하더군요.
상담원 또한 누군가의 가족입니다.
전화 상담을 하면 자주 듣는 문구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교사도 누군가의 가족이고, 누군가의 부모입니다.
학생도 누군가의 가족이고, 누군가의 사랑받는 자녀이고요.
세상 모두가 그렇겠지요.
누군가의 부모이자, 자녀이고, 연인이지요.
결코 단면만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일로 만난 사람으로 정의하지 말고,
조금은 더 마음으로 대하는 우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그런 마음이 우리를 조금은 더 관대한 사람으로 만들고, 그런 관대함이 삶의 여유를 주는 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