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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무실을 안내받았어요.
세 명의 영어과 교과교실제 선생님, 세 명의 수학과 교과교실제 선생님, 두 명의 인턴 선생님.
총 여덟 명의 선생님들이 큰 교무실 한쪽에 작은 책꽂이를 가벽으로 해서 만든 공간에 자리 잡았어요.
학교에서는 이상한 규칙이 있었어요.
속칭 강사실을 사용하는 여덟 명의 선생님들에게 일과 후에는 모임을 금지한다는 규정이 있었지요.
그렇지만 인간관계가 칼로 두부 자르듯 그렇게 하는 게 가능할까요?
집이 같은 방향이면 함께 가게 되고, 종종 학교 밖에서 모두 모여서 식사도 하고 차도 마시며 좋은 추억을 만들기도 했거든요. 나이가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으로 모여 있다는 부분도 있었지만, 모두들 학교생활을 처음 하면서 힘들고 어려운 일에 대한 연대의식이 생겼던 것 같아요.
영어과, 수학과 각각 세 명의 선생님들은 3개 학년으로 나눠서 수업에 들어갔어요.
2+1의 개념이라고 보면 되는데, 예를 들어서 1, 2반 학생들을 그룹으로 해서 교과 수준에 따라서 A, B, C반으로 나누고 A반과 B반은 정규수업에 들어가시는 선생님들이, C반은 교과교실 선생님이 수업하는 방식이었지요.
각각이 담당 학년을 나누는데, 그 해에 3학년 학생들이 대단한 아이들이라는 소문이 가득했거든요. 전년도에 그 아이들을 담당했던 교과교실 선생님이 3명이나 바뀌었다는 이야기부터, 감당하기 정말 힘든 아이들이라는 이야기가 많았고 자연스럽게 수학과 교과교실 강사 중에서 유일한 남교사인 제가 3학년을 담당하게 되었어요.
제가 사용할 교실을 안내받았어요.
교무실은 2층.
C반 수업이 이루어지는 교실은 같은 건물 4층, 복도 끝에 있는 반쪽 크기의 교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교실 안내를 받았고, 문을 열고 저는 엄청 놀랐어요.
그건.
교실이 아니라 창고였거든요.
교실 뒤편에 나란하게 있는 철로 된 캐비닛. 심지어 그중에 몇몇은 잠금장치가 작동되지 않는 물건이었어요.
교실에는 책상과 의자가 어지럽게 놓여 있었어요.
교실 앞에는 언제 붙여 뒀는지 모를 안내문이 있는 게시판과, 아이들의 낙서가 가득한, 사용 가능성이 의심되는 흑판이 있었지요.
다행스럽게 첫 주간은 수업이 없었어요. 아이들에게도 적응기간이 있어야 했으니까요.
그 기간을 이용해서 저는 교실 청소를 했지요. 수업이 없는 시간마다 올라가서, 바닥을 닦고, 쓰레기를 치우고, 칠판을 닦고, 책상과 의자를 이렇게 저렇게 배치해 보고, 캐비닛의 문을 통일감 있게 배치하는 방법을 고민했어요.
창고를 교실로.
생각해 보면 저는 그런 공간을 좋아했던 것 같아요.
누군가 어떤 틀로 만들어두고 그 틀에 맞춰서 살아라는 것보다는, 기본적인 최소한의 틀을 바탕으로 그 공간에 저만의 창의성을 채우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았어요.
창고를 교실로.
다른 선생님들도 안내받은 교실을 보면서 불평을 하곤 했는데, 저는 그렇게 나쁘지 않았거든요.
많은 창의적 발명가들이 자신들의 차고, 창고에서 꿈을 만들었으니까요.
저 또한 창고 같은 교실에서 더 많은 가능성이 열릴 것이라 생각했거든요.
창고를 교실로.
다른 교실은 고정된 칠판이 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담당한 교실은 움직이는 칠판이 있었지요. 그것을 활용했어요. 정형화되지 않은 교실을 만들자고. 움직이는 교실을 만들고, 아이들이 오고 싶은 교실을 만들자고. 쉼터가 되는 교실을 만들자고 생각했어요.
게시판을 꾸몄어요. 수학과 관련한 다양한 읽을 이야기를 준비했고, 퀴즈도 붙여두고.
책상 위에 낙서를 지우고, 서랍을 비우고, 얼룩도 지웠어요.
커튼을 가지런하게 정리하고, 지워지지 않는 얼룩은 게시물을 이용해서 가렸지요.
그렇게 제 교실이 만들어졌어요.
창고였던 그곳이
저만의 공간이 되었지요.
학교 공간 활용에 따라서 그 교실에서 1년을 모두 채우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좋은 추억이 가득한 교실이 그렇게 완성되었어요.
좋았냐고요?
저는 좋았어요.
따뜻한 햇살이 내려오던 그 교실에서 아이들과 이야기도 나누고, 가끔 의도와 맞지는 않았지만 아무튼 레크리에이션도 했어요.
시간이 많이 지나서 그 학교를 갈 일이 있었어요.
그리고 그 교실을 봤지요. 이제는 다른 학년이 사용하는 교실이 되었고, 시간이 많이 지나서 그런지 교실 구조도 조금은 바뀌어 있더라고요.
그래도, 그 공간에 대한 향수는 아직 남아 있는 것 같았어요.
학교라는 공간은 참 신기해요.
건물은 오랜 시간 그 자리에 그렇게 있는데, 그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은 계속 바뀌지요.
새로운 선생님이 오고, 있었던 선생님이 가고, 새로운 학생이 오고, 있었던 학생이 가고.
때로는 교실의 모습은 수년간 그대로지만, 때로는 그 벽에 다른 것을 붙여서 새로운 형태가 되기도 하지요.
공간은 그 자리에 남은 이야기를 모두 기억할까요?
제가 사용했던 창고였던 교실도 이전에는 또 다른 누군가의 추억이 남겨진 교실이었겠지요?
교실과 인사를 하면서 그렇게 첫 교직의 추억이 조금씩 모이기 시작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