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날이 더워서 그런지,
감기 기운 때문에 그런 건지,
아이가 할아버지에게 때를 쓰더군요.
처음엔 모른 척 넘어가려다가
어느 순간
경계를 넘어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생각의 방으로 따라와.
그렇게 아이와,
조용한 방에서
일대일 면담을 했어요.
뭐가 그리 억울한지,
아이는 계속 말하더라고요.
내 말 들어봐,
내 말 들어보라고.
아이에게는 자신의 분노가 정당하다는 이유가 있었어요. 그 말을 하고 싶었지요.
저는 아이에게 말했어요.
지금 혼나는 이유는 무례함이 원인이라고.
그리고 네 이유도 이해는 가지만
그 이유가 분노를 합리화할 수 없다고 말이에요.
물론, 아이의 관점에서 설명했지요.
내가 밖에서 좋지 않은 일이 있었다고 네게 화를 낸다면,
내가 네 반복된 질문에 화를 낸다면,
내가 네 무지함에 화를 낸다면,
그건 올바른 것일까?
같은 상황에서 그와 나의 관계를 바꾸면 쉽게 납득할 수 있는 일들이,
때로는 분노란 감정 때문에 그러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그래도 그렇지”라는 말 또한 양념이 되고요.
생각해 보면, 분노하지 않고도
화내지 않고도 쉽게 흘러갈 수 있는 일에
우리는 너무 쉽게 화내고, 감정을 분출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어쩌면 그런 미숙한 표현이
나의 그릇과 깊이, 여유를 노골적으로 나타내지만,
그 순간은 마치 그것이 감춰진다고 생각하지요.
쉬운 것은 잃기 쉽고, 다치기 쉬우며
어려운 것은 성장과 발전의 거름이라는 생각을 종종 해요.
쉬운 것만 선택하며,
좋은 것을 탐하는 건 아닐까요?
분노하고, 화내고, 질투하고, 험담하며, 비판하고.
그런 쉬운 감정과 표현은
내 작음을 보이는 척도라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