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외할머니께서는 시골에 계십니다.
젊은 사람들이 길에서 잘 보이지 않는 곳.
시장은 있지만, 경제인구보다는 농사를 주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보이는 그런 곳에 계시지요.
아파트 2층에 계시는 외할머니댁에 올라가는데, 계단 한쪽 구석에 누군가 올려둔 모기향이 보입니다.
그렇게 계단에 모기향을 켜 둬서, 우리 집에 모기가 덜 들어오게 한다는 마음이 누군가를 향한 이타주의가 되어 모기향처럼 은은하게 퍼지겠지요.
글쎄요.
누군가에게 어린 시절 향수를 불러오는 모기향이, 누군가에게는 좋지 않은 향이 될 수도 있겠지요.
저마다의 가치가 다르듯,
저마다 선호하는 것이 다르고,
저마다 만족도가 다르겠지요.
제 눈에는,
나와 타인을 향한 누군가의 작은 배려가 보이는데 말이에요.
가끔, 불편한 배려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함께 일을 하는 제 부모님의 경우 그렇지요.
이제는 적응해야 하는데, 아직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입구부터 청소를 하고 있으면, 구석에 있는 먼지도 쓸어야 한다고 나름의 배려를 하시고,
더위에 시원한 음료를 준비하면 찬 음료는 몸에 좋지 않다며 생로병사에서 봤던 여러 박사들의 이야기를 줄줄줄 하십니다.
자녀를 향한 배려라는 생각에 살짝 미소 짓고 넘어가면 좋겠지만 아직 그 정도의 성인은 아닌지, 저도 모르게 표정 관리가 어려워지더군요.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단지 저 혼자의 문제는 아닌 듯합니다. 부모와 관계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런 불편함에 자주 노출되고, 모두가 비슷하게 상황을 마주하게 되더군요.
그래도 부모라서 감수하지요.
가끔, 부모가 아닌 존재가 그런 일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의 일을 마무리하고 다음 일을 하려 하는데, 본인의 팁이라는 듯 지적하지 않아도 되는 문제를 지적하며 싱긋 웃고 지나갑니다. “내가 말하지 않았으면 놓칠 뻔했지? “하는 듯 말이지요.
다른 절차가 너무 까다로워서 어쩔 수 없이 둔 건데 그런 사정도 모르고 말이에요.
익은 벼가 고개를 숙인다는 말을 종종 생각합니다.
무조건적인 겸손이 아니라, 표면적인 상황만 보고 즉각적으로 도출하는 해결법이 마치 정답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깊이 살펴보면, 저마다의 사정이 있는데 말이에요.
나이가 많아지고, 사회에서 조금씩 적지 않은 나이의 사람이 되면서, 문득 그런 생각을 해 봤습니다.
열심히 살고, 잘 살고, 노련하게 살아가는 방법은 배우지만, 지혜롭게 살아가고, 지혜롭게 사람을 배려하며, 깊이를 더하는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기회는 잘 없다는 생각을 말이에요.
그래서, 글을 쓰고, 책을 읽고, 많이 생각하려 노력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즉각적으로, 즉흥적으로, 표면만 보고 마치 정답인 것처럼 말 하는 무식한 어른이 되지 않으려 말이에요. 그런데 이상하게 그런 생각을 할 때면, 과거 무식했던 제 모습의 단면이 떠오르게 됩니다. 그럴 때 이불킥이란 단어가 어울리겠지요.
어떤 어른이 되고 싶냐고 묻는다면,
젊은 생각으로 배우고 수용하며 새로움에 놀라고 타인의 수고와 성취에 손뼉 칠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참 다행이지요.
이런 말을 하면서 떠오르는 어른이 있다는 게 말이에요.
적어도 그렇게 떠오르는 어른이 있다는 건, 방향은 있다는 의미겠지요.
오늘도, 내일도 그 방향으로 조금씩은 움직여 볼까 합니다. 그렇게 저는 오늘도 조금씩 어른이 되고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