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자식을 망하게 할 수 있다.
<더 글로리>라는 드라마가 있다.
어린 시절부터 어려운 환경에서 학교 폭력의 피해자였던 문동은의 복수극.
동은은 그냥 당하고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학생이지만, 자신이 당하는 폭력에 대해서 저항했다.
학교에 신고했고, 경찰도 이야기했다.
그렇지만, 학교에서는 담임이 일을 덮었고, 경찰 역시 사건을 덮었다. 그럼에도 동은은 저항을 했고, 일이 공론화 되려 하자 가해자의 부모는 동은의 어머니를 회유한다.
동은의 어머니는 자녀가 당한 피해보다는 눈앞의 돈이 중요했다. 그녀는 돈을 받았고, 아이가 당하는 폭력을 암묵적으로 옹호했다.
시간이 흘렀고 동은은 어른이 되었다.
학교를 그만둔 동은은 공부했고, 검정고시에 통과했으며, 자신의 인생을 복수라는 목표로 살았다.
그녀의 복수가 드디어 꽃으로 피어나려 할 무렵, 동은의 복수 대상은 다시 동은의 어머니를 찾았고, 어느 허름한 골목에서 술에 취해서 살아가는 동은의 어머니를 다시 동은에게 대려다 줬다.
동은의 어머니는 딸의 이름을 팔아서 다시 자신의 욕구를 채웠고, 동은의 쌓아온 사회적 지휘는 다시 어머니로 인해서 무너지게 되었다.
결국 동은은 어머니를 정신병원에 넣는다.
그렇게 어머니와 손절을 했다. 그리고 동은은 온전히 자신의 복수를 완성하고, 자신이 바라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
……….
제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랜만에 듣게 된 이야기, 그동안 아이가 지냈던 삶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도 가슴이 아팠다.
어린 시절부터 가정폭력에 시달렸고, 결국 폭력적인 아버지를 피해서 부모는 이혼을 했고, 자신은 성인이 되어 대학을 핑계로 자취를 시작했다고 한다.
집에서의 도움은 없었고, 아르바이트와 장학금을 학교 생활을 하면서 그럼에도 착실하게 돈을 모으고 있었다고 한다.
그 무렵부터 엄마에게서 연락이 왔다.
돈을 빌려 달라고. 네 이름으로 보증을 서 달라고.
이제 고등학교를 졸업한 아이에게 그게 무슨 소리였던 건지. 그럼에도 아직 어렸던 아이는 아르바이트로 모았던 적금을 어머니께 드렸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필요로 하는 금액이 커지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엄마와의 연락도 끊게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몇 년의 시간이 지났더란다.
그리고 얼마 전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고 한다.
OO의 아들이 맞냐고. 네 엄마가 내 돈을 빌리고 숨었으니 네가 갚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이다.
아이는 당황해서 아무런 말도 못 했다고 한다.
얼마 뒤 다시 전화가 왔고, 본인도 엄마와 연락이 끊어진 지 오래라서 모른다고, 그리고 나 또한 갚을 돈이 없다고 말을 했다는 게 그 말을 하면서 얼마나 두려웠다는지.
아이는 그렇게 자신의 두려운 마음을 토로하고 있었다.
부모라는 존재는 모두 옳은 존재일까?
……..
제조업을 하고 있다.
도매상이 상품을 주문하면, 우리는 제조해서 납품을 하는 방식이었다. 말이 좋아서 제조업이지 사실은 하청이나 마찬가지이다.
10년이 지났지만, 납품을 해서 받는 비용은 동일하기는커녕 시장 경기가 좋지 않아도 오히려 낮아졌다고 한다. 그 말에 화가 났다. 찾아보니, 상품의 가격은 올랐는데 납품값은 낮아졌다는 게 말이 되는 건가?
그래서 직접 유통 및 판매를 시작했다.
물론, 수고는 들어야 하지만 실질적으로 상품의 가격을 낮출 수 있지만 공장 입장에서는 마진이 더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중간 유통에서 소비되는 비용이 사라지니까 소비자와 제조업자 모두에게 이득인 것이다.
쉬운 일이 어디 있을까?
당연한 말이지만, 직접 유통을 한다고 하더라도 소비자의 눈에 들어오는 것에는 분명 시간이 필요한 부분이다. 그렇지만 내 부모는 그에 대해 그렇게 인내심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얼마 전 한동안 거래가 없었던 도매상에게서 연락이 왔다.
한동안 같은 상품만 판매하다 보니 시장에서 인기가 없는 것 같다. 새로운 디자인을 만들어서 판매하는 건 어떨까 한다. 제조업장에서 디자인을 잘 만들어서 샘플을 만들어 줘 봐라.
사실 화가 났다.
내가 검토하겠으니, 팔릴만한 물건을 만들어서 내게 결재를 올려보라는 말이 아닌가?
이런 어처구니없는 말을 부모님은 원래 이 바닥이 그렇다고 기꺼이 기계를 멈추고 여러 디자인을 만들어서 거래처에 보냈고, 거래처는 특별한 피드백 없이 “이건 쫌 아닌데.”라는 말로 끝내버렸다.
얼마 뒤 나름의 피드백을 했다. “쫌 더 은은한 건 없습니까?” 그러면서 슬쩍 흘리는 말이 원사를 더 고급으로 사용하기를 바라는 말이었다. 가격은 낮추고, 원재료는 더 고가의 원재료를 사용하고. 그 말에 화를 내는데, 부모님은 당연히 그렇게 해 보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하나의 디자인을 만들어서 내게 보여주며 이건 어떻냐고 물어보시는 것이 아닌가? 내 브랜드에서 판매하려 구상했던 컬러 매치로 말이다.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건 내가 하려고 봐 뒀던 건데.”
“어쩔 수 있나? 그쪽에서 해 달라면 그냥 줘야지.”
그게 전부였다.
자식이 브랜드를 만든다고 여러 디자인과 컬러 매치를 알아보고 있을 때, 부모님은 내가 고민한 결과물을 거래처에서 판매하라고 넘기는 게 당연하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다행스럽게도 결론부터 말하자면, 거래처에서 보는 눈과 내가 보는 눈이 다르다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그들의 취향과 내 취향은 달랐고, 내가 만들 브랜드가 추구하는 미학과 그들의 미학은 확실하게 달랐으니까.
……
앞에서 이야기했지만.
부모님께서는 오랜 시간 제조업을 하셨다.
그리고 나는 그 제조업을 이어받으며 이건 살아남기 힘든 구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름의 방법을 만들게 되었고 지금도 만드는 중이다.
제조업을 바탕으로 브랜드를 만들고 직접 디자인하고 판매까지 하는 진짜 브랜드 말이다.
경제학적 관점으로 이야기하자면, 제조라는 단순 노동직에 브랜드라는 지식요소를 넣어서 동일한 상품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일을 진행 중에 있다. 그리고 이 일은 지금 일을 함께하는 부모님과 나 중에서 유일하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인 것이다.
문제는 부모님은 일에 대한 이해가 없다는 것에 있다.
기계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오랜 시간 제조업자가 갖는 마음가짐이고, 실제적으로 제조업장의 공장 가동률이 공장을 높이 평가하는 수치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렇지만. 수익 구조를 바꾸는 시점에서는 일의 완급 조절이 필요한 것이다. 제조에 투자해야 하르 대는 제조에 힘쓰는 게 맞지만, 가끔은 제조에서 힘을 빼고 마케팅에 힘을 넣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부모님은 그것을 모른다.
양말이나 잘 만들어라.
물론 맞는 말이다.
좋은 상품을 만들어야 고객에게 좋은 상품을 전달하는 것이 맞는 말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잘 만든 양말이 계속해서 창고를 채우고 있는데, 생산량의 10%도 판매량이 따라가지 못하는 시점에서 제조에만 전념하는 게 과연 맞는 구조인가?
화가 나는 부분은.
판매가 되지 않는다라는 넋두리를 내게 한다는 것이다. 가족 중에서 판매를 가능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나뿐인데, 기계를 가동하는 것에 모든 에너지를 쏟게 하면서 판매량이 올라가지 않는다고 내게 넋두리를 한다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부분인 것이다.
……
생각해 보면 자녀교육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있지만, 부모교육에 대한 관심은 낮은 것 같다.
특히, 먹고 살아가는 생존에만 전념했던 어른들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자녀를 위험한 것에 노출시키지 않는 것. 자녀가 실패하지 않게 하는 것. 자녀가 먹고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 그런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인가?
때문에 우리 부모는 내게 기계를 다루는 방법을 배우라고 하면서 기계를 건들지 못하게 한다. 혹시나 기계를 파손할까 염려되어 말이다. 때문에 우리 부모는 내가 세무사와 상담을 하려 하는 것도 못하게 한다. 어디서 이상한 사람을 만나는 게 아닐까 염려되어 말이다.
부모가 자녀를 보호하려는 마음은 알지만, 그 가운데 자녀가 느끼는 무력감이 얼마나 위험한지 그들은 전혀 알지 못한다.
언젠가 강연에서 그런 말을 들었다.
부모는 칭찬에 인색하다가.
엄마, 나 시험 점수 잘 나왔어.라는 아이의 말에, 교만하지 마. 그러다가 곧 떨어져. 라는 것 처럼 말이다.
어떤 부모가 될 것인가?
나는 내 삶을 통해서 어떤 부모로의 목표를 꿈꾸게 될 것인가? 생각해 본다.
본능에 의해서 자녀를 이용하는 부모는 되지 않기를 바란다. 내가 아무리 지치고 힘들고 쓰러져도 나는 내 아이가 자신의 성을 만들기를 응원하며, 내가 측은하다고 나를 도와주는 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부모가 꿈꾸는 완벽한 삶으로 인해서 내 존재가 없어진 것을 내 자녀에게도 전가하고 싶지는 않다.
좋은 것은 이어가지만 좋지 않은 것은 내 선에서 끝내고 싶다. 그게 배우는 사람의 힘이라는 생각을 한다.
부모의 욕심 때문에 자녀의 희생을 강요하는 문동은의 어머니가 가진 무지는 문동은의 선에서 끝나지 않았을까?
나이가 들어서 이제는 공장을 하기 힘들다. 그렇다고 공장을 처분하려니 돈이 되지 않고.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나 싶다는 말로, 내가 그 일을 하겠다고 말을 유도하던 내 부모의 말이 달갑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과거에만 잡혀서 살아간다고 삶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지금 주어진 환경에서 내게 주어진 것을 잘 분석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만들어야지.
물론. 지금 나는 내 성을 만들고 있다. 안타깝게도 내 성에는 나만의 영역이 존재하지는 않는다. 항상 내 부모는 성 한쪽의 벽을 자신들이 쉽게 오고 갈 수 있도록 매일마다 허물고 있으니까. 그렇지만, 그로 인해서 무너진다면 그건 결코 견고한 성이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오히려 그런 통로를 만들고도 굳건하게 버티는 성이 더 강한 성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그런 성을 만들고자 한다.
모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탓하지 말아야 한다. 나 또한 모르던 시절이 있었으니까.
때문에 이렇게 글을 쓰는 것이다.
내 나쁜 마음을 조금은 털어내고 가벼운 마음을 갖고 싶어서. 내 나쁜 마음속에서 감정적인 부분과 이성적인 부분을 나누기 위해서.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조금은 더 구체적으로 길을 잡아가고 싶은 마음에 말이다.
교사로 지낸다는 내게 사촌동생이 말했었다.
“형은 정말 교사가 어울려.”
교직을 그만두고 사업을 한다던 말에 사촌동생이 말했었다.
“사실 형은 욕심이 많은 사람이야. 난 알아. “
그 욕심이 물욕이라고 생각했다. 물질에 대한 욕심. 그래서 그 녀석의 말을 흘려 들었다. 그냥 웃었다. 그리고 조금씩 깨닫게 되는 것 같다. 나는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단, 물질이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한 욕심 말이다. 내 성을 만들고 싶다는 욕심. 오늘 글을 쓰면서 깨닫게 되었다. 언젠간 내 성에서 자연을 보며 계절의 변화를 느끼며 사람과 세상을 보면서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는 욕심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