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함께 있고 싶은 사람인가?
과거보다는 미래를 보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거는 바꿀 수 없으며 미래를 바꿀 수 있으니 말이다. 이왕이면, 바꾸지 못하는 과거에 연연해서 지금을 주저하며 살아가는 것보다는 미래를 바라보며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고민하고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에너지를 쏟는 게 맞다고 생각하는 스타일이다.
그렇지만.
내 부모님은 그렇지 않다.
글쎄. 모든 어른이 그렇게 나이를 먹는 것인지 모르지만, 여전히 언제인지 모를 과거의 어떤 일을 이야기하면서 그때가 좋았다고 하며 지금 부족한 어떤 것을 꼬집어내는 경우가 많다.
마치. 정기적인 행사처럼 그렇게 찾아온다.
본인의 불안과, 본인의 불편함이 마치 타인으로 인해서 그렇게 된 것이라 정의하듯 말이다.
가족이 아닌 타인에게는 그런 언행을 해도 괜찮다. 그들은 타인이고, 그들에게 부모 또한 타인이기에 그냥 그런가보다 하면서 넘어갈 수 있으니까.
그렇지만. 자식인 내게는 조금 다르다.
부모를 섬긴다는 이유로 열심히 노력을 해도, 그런 수고와 노력이 본인은 원하지 않고, 불편했지만 억지로 했던 무엇으로 평가절하되기 일쑤이다.
잠자리가 불편하다는 부모님께 침대를 구입해 드린다고 하니, 좋은 건 너무 비싸서 부담이 된다고 그렇게 이야기를 하셨다. 결국, 침대를 보러 간 매장에서 우리가 생각했던 상품이 아닌, 어른들에게 맞다는 어떤 침대를 보고 판매하는 사장의 말에 현혹되어 그 자리에서 바로 그것을 구입했다. 물론, 좋다고 하셨다. 쿠션이 몸을 받쳐주는 느낌이 좋다느니 그러면서. 그렇게 1년이 조금 넘는 시간 침대를 사용하시더니 이제야 침대가 별로였고, 그때는 사줬으니 어쩔 수 없이 좋다고 했다느니 그런 이야기로 변명 아닌 변명을 하신다.
돈을 쓰고, 원망만 듣는 경우이다.
부모님과 함께 공장을 하고 있다.
아니, 정확하게 이야기한다면 내가 그분들의 일을 돕는다고 하는 게 맞을까?
경기가 나빠지면서 거래처의 주문이 끊어지게 되었고, 기계를 멈춰야 하는 상황까지 이르게 되었다. 어쩌겠는가? 기계를 돌리기 위해서는 우리 상품이라도 만들어서 판매를 해야 하는 게 아니겠는가?
그렇게 내가 주도해서 판매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렇게 기계를 다시 돌리게 되었다. 한동안.
덕분에 얻는 것도 많았다. 도매업자가 터무니없이 가격을 깎으려 해도 거절할 수 있었다. 아니, 10년째 물가는 올라가는데 원가는 반대로 내린다는 게 말이 되는가? 웃긴 건 상품의 판매가는 물가에 비례해서 움직인다는 것인데 말이다.
아무튼. 판매를 시작하게 되었다.
1인 스타트업의 수준으로.
디자인하고, 집에서 가족들이 양말을 신어 보면서 상품 사진을 촬영하고, 내가 직접 상세페이지를 구성하고, 스토어를 운영하고, 주문을 받고 발송하고 그런 작업을 했다.
시간이 약이라고 하는 게 맞는 건지.
시간이 지나면서 주문이 조금씩 들어왔다. 물론, 큰 수익은 아니지만 말이다. 아무리 가격이 저렴하다 하여도 스토어가 오픈하고 1년도 되지 않아서 오랜 시간 운영했던 스토어와 같은 실적이 될 정도로 성장이 빠르다면 모두가 온라인 스토어를 운영하려 하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참고했다.
거래처에 가면서 이름 모를 유튜버의 자극적인 제목의 상세페이지 어떻게 해야 한다 등등의 강의를 반복해서 들으면서 말이다.
그렇게 반년을 하면서 조금만 더 익숙해지면 잘 되겠지라며 스스로를 타이르고 응원하면서 하루를 버티고 있었는데, 부모 때문에 망했다.
예전에는 일이 편했는데, 내가 판매를 시작하면서 일이 바빠졌다고. 힘들어졌다고. 뭔가 정신이 없어졌다고.
또 말이 바뀐 거다.
사실, 나는 교육 관련 일을 하고 싶었다.
사실, 나는 아이들이 수학이라는 학문을 공부하면서 내가 알려준 내용을 이해한 순간의 표정을 보는 게 너무 행복한 사람이었다. 눈을 반짝하는 그 순간. 추상적인 기호 사이에 숨겨진 논리적 관계를 인식하며 오랜 시간 움직이지 않던 사고가 빠드득거리면서 움직이기 시작하는 그 순간 아이들의 눈이 반짝이는 그 모습을 말이다.
학교에서 부장, 교장이 되고 싶어서 나를 이용해 먹는 인간들의 도구로서가 아니라 정말 수학을 배우고 알고 싶어 하는 아이들을 위해서 내 힘을 쓰고 싶은 생각에 학교를 나왔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 시기에 부모님은 또 본인들의 일이 힘들다고 찡찡거리기 시작했었다.
하긴. 처음부터 연세가 적은 것도 아닌데 다시 공장을 한다고 할 때부터 염려되긴 했지만, 내가 교직에 있을 때도 주말이며 휴일이면 공장에 와서 일을 도우라는 말을 할 때도 염려되긴 했지만. 그 찡찡거림에 측은한 생각도 들었었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자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게다가. 변하기 위해서 공부를 가르치는 사람인데, 본인은 변하지 못한다는 모순에 빠지고 싶지 않았던 것도 있었던 것 같다. 일종의 운명에 대한 반항심이라고 할까?
처음 공장 일을 시작할 때도 일은 쉽지 않았다.
매일 기계는 고장이고, 매일 부속이 파손되고, 창고는 엉망이고, 재고 관리는 되지 않고.
그리고 지금은.
1주일에 1회 이상은 대청소를 하고, 큰 고장의 횟수는 줄었으며, 부속이 파손되는 일은 거의 없으며 창고는 깔끔하게 정리가 되었다.
문제는 그렇게 여유를 만들면, 행정보급관 뺨치는 부모의 성향이 문제인 것이다.
3년째. 봄과 가을이면 닭장을 만들고 있고, 문짝을 만들고, 선반을 만들고, 뭘 그렇게 만들라고 하는 건지.
정작 일이 많아져서 바쁘고 힘든 게 아니라, 정작 많아진 일을 빨리 처리해서 만든 여유만큼 다른 일을 더 만들기 때문에 바쁘다는 걸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예전에는 일이 이렇게 어렵지 않았는데. 예전에는 일이 그렇게 쉽지 않았는데.
그 예전이 언제의 예전을 이야기하는 건지 모르겠다. 내게 공장일을 네가 받아서 하는 건 어떻겠냐고 물었던 시기에도 일이 복잡하고, 원사 종류가 많아서 힘들기 때문에 네가 하면 좋겠다고 했는데 말이다.
물론, 그전에는 일이 편했다.
지금처럼 색상이 있는 실을 이용해서 양말을 방직하는 게 아니라, 후염. 그러니까 염색되지 않은 실로 양말을 방직해서 염색 업체에서 양말을 판매하던 시기의 일 말이다. 그렇지만. 그때에도 창고 가득 재고가 쌓였고, 물건이 팔리지 않고 돈은 잠겨서 힘들었다고 그렇게 자주 이야기 하시는데 과연 언제가 편했다고 하는 건지.
이건 마치 장어에 대한 이야기와 같다.
마트에 가서 장어가 맛있어 보인다고 사 왔는데, 어머니께서 요리만 하면 원래 장어 요리하는 집은 이렇게 하지 않는다며 투덜투덜거리시는데, 공장을 하면서 십수 년째 거의 삼식이 뺨치는 수준으로 집밥을 드시면서 매번 이야기하는 고급 장어집은 언제 가 봤다는 것이며, “요즘 장어 요릿집에서는”이라는 대사에서 요즘이 과연 언제 이야기를 하는 건지 유추하기 어려운 것과 같은 수준인 것이다.
가끔. 아니 어쩌면 자주 부모님의 이야기를 듣다가 보면 측은함을 느끼기도 한다. 어찌 저렇게 지금 이 상황을 살아가지 못하는 건지.
지금 눈앞에 장어를 먹으면서 언제인지도 모르며 가족 중 누구도 모르는 기억 속 장어 요릿집의 음식을 찬양하는 모습. 함께 일을 하면서 계속 바쁘고, 거래처 주문이 끊어질 듯 아슬아슬하게 오는 상황만 연속되고 있는데, “주문만 막 들어오면..”이라는 말을 하며 지금을 외면하는 모습.
눈앞에 손자가 오만 귀여운 짓을 하고 있는데, 걷지도 못하던 시기의 귀여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모습.
가족과 자유여행을 가서는 그 장소의 추억을 느끼기보다는 십수 년 전 친구들과 여행사를 통해서 여행을 가서 힘들었다는 이야기만 늘어놓는 모습.
이상하게.
현실에서는 투덜거리고, 언제인지도 모르는 과거만을 이야기하며 지금이 부족하고 못하다는 이야기를 늘어놓고는 하신다.
내가 교직을 그만둔 이유는.
어떤 일을 하는가도 중요하지만, 누군가와 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에. 한정적인 시간을 이왕이면 즐겁게 살아가고 싶어서 선택을 했는데.
그 선택으로 인해서 부모와 일을 하게 되었고, 부모가 일을 대하는 스타일이 내가 직장에서 피하려고 했던 사람들의 스타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과연 인생에 봄은 올 수 있을까?
가끔은, 그 봄이 보이지 않아서 봄이 오기 전에 그냥 끝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물론, 그런 어두운 생각이 매우 무책임하고 나쁘다는 것을 알기에 이렇게 글을 쓰면서 나름의 방법으로 풀어내지만 말이다.
에잇.
브랜드에 대한 이야기로 메거진을 채우려고 했는데 이번에도 틀린 것 같다.
요즘은 일을 하면서 라디오를 자주 듣는다.
부모님과 일을 하면서 무슨 이야기를 하면 꼬투리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라디오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어요.라고 하면 그건 거짓말이지 믿지 말아라.라고 하고, 웃자고 한 이야기가 항상 진지한 비판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더욱 그런 것 같다. 아무튼. 라디오를 듣는데 낮 11시에는 박하선의 시네타운을 한다. 시네타운에서 박하선은 청취자를 테리우스라고 부르고, 본인을 캔디라고 한다.
물론, 내가 테리우스라는 말은 아니다.
그냥. 나는 캔디라는 생각을 해 봤다. 물론 성별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고 말이다.
아무리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사람들과 섞여 있어도 나는 버티고, 이겨내고, 어려운 환경이라도 그 속에서 내 영역을 조금씩 만들면서 강하게 버티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그게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방법이니까.
기간제 교사로 학교에 처음 들어가서도 나만의 영역으로 나만 할 수 있는 업무를 만들어 냈던 것처럼. 지금의 내 일에서도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을 조금씩 찾고, 꾸준하게 진행해서 내 영역을 만들어 가려한다.
과거에 묶여 있어서 좋을게 뭐가 있을까?
같은 논리로. 나 아닌 사람이 내게 주는 불편이 싫다고 그들의 변화를 바라는 것보다는 내가 더 강한 존재가 되는 게 빠르지 않을까?
그렇게 내 영역에 집중해야겠다. 느리더라도 조금씩. 그렇게 내 영역을 만들면서 그들이 깨닫지 못하는 영역을 볼 수 있고, 그들이 모르는 부분을 알아가며 성장해야겠다. 집중하자. 나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