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오늘 한 그루의 나무를 심을 것이다.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자.

by Inclass

1999년

밀레니엄의 시대에 학창 시절을 보냈던 내게, 2000년 지구 멸망설은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어차피.

컴퓨터 오류로 지구가 망한다는데, 수능이 무슨 소용이람. 공부가 의미가 있을까? 어차피 끝날 세상인데.


그런 걱정과 관계없이 할 일을 하는 아이들이 있었고, 어떤 아이들은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그냥 멍하게 있는 아이도 있었다.


그렇지만.

시간은 흘렀고.

00년도가 되었으며, 누군가는 진급을 하고, 누군가는 진학을 했으며, 누군가는 어제와 같은 오늘을 보냈다.


경기가 좋지 않아서 군 입대를 먼저 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나 또한 그러했고, 입대 신청을 했지만 입영 대기자가 너무 많았기에 무려 7개월 후 입대일을 잡을 수 있었다.

그 무렵의 생각이 그러했다.

어차피 7개월 후에 군에 가는데, 군에 가서는 내가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것도 없으며, 지금 공부했던 것도 모두 잊게 되는데 해서 뭐 하나.

그런 생각에.

정말 그냥 하루하루를 살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어차피 7개월 후, 나는 세상과 단절될 것이고, 그렇게 2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면 세상은 바뀌어 있을 것인데.

해서 뭐 하겠는가. 그런 생각.


그렇지만.

7개월은 생각보다 길었고, 생각보다 많은 책을 읽었고, 생각보다 많은 장소에 갈 수 있었으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과 많은 추억을 만들 수 있었다.



교직을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했다.

많은 것을 배워야 했다.

제조업이니 기계를 다루는 방법, 기계를 관리하는 방법, 도소매업을 함께 하다 보니 상품을 홍보하는 방법, 기획하는 방법 등등.

교사로서는 경험하지 못했던 많은 것을 해야 했으니, 여러 분야를 관찰하고, 고민하며, 찾아봐야 했다.


그러던 중 오랜 교직 기간 동안 함께 지낸 선생님을 만났다.

서로의 근황에 대해서 이야기하던 중, 바뀐 내 삶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니 부러워했다.


역동적이라고.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배우고, 길을 만들어가는 게 멋지게 느껴진다고.

본인은 어느덧 20년이 넘는 교직 연차가 되었고, 앞으로 10년이 조금 넘는 시간이 남았는데, 무엇인가 시도하려면 이제야 이걸 해서 뭘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이다.

직위에 대한 욕심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바뀌는 기술을 배운다고 수업에 적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러다 보니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에 대한 무료함에 침식되는 것 같다고 말이다.


그의 무료함도 이해는 갔다.

조직이라는 게,

너무 튀어도 문제이고, 너무 느려도 문제이고.

구성원의 속도에 맞춰야 하고, 구성원 중에서 자신의 위치에 맞는 무엇인가를 하다 보니 아무래도 본인의 속도로 살아간다는 게 쉽지는 않은 부분이니 말이다.



교직에 있다가 제조업을 처음 시작하고는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너무 많은 변화와 예상하지 못했던 일 때문에 허덕이던 교직이었다.

업무를 처리하면 학급에서 문제가 일어났고, 학급 아이들을 잘 관리하면 학교에 문제가 일어났으며, 학교 문제에 관여하다 보면 어느덧 학기가 마무리되고 그렇게 학년이 마무리되었으니 말이다.

항상.

큰 흐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머리에 넣어둬야 했고, 그 가운데 잔잔하고 불규칙하게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을 처리해야 했다.

주체적이고 주도적이지만, 온전하지는 않았고, 조직의 흐름에 종속되어했지만 자신의 흐름을 지켜야 했다.

그런 복잡함 속에서 나의 변화무쌍한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다.


제조업은 그렇지 않았다.

해야 하는 일은 넘쳐났지만,

어제 했던 일을 오늘 해야 했었고, 오늘 하는 일을 내일 해야 했으며, 내일 하는 일이 한 달 뒤에 할 일과 같았고, 한 달 뒤에 할 일이 일 년 뒤에도 하고 있을 일이었다.

당시에는 변하지 않는 틀이 오히려 편하게 느껴졌다.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고, 몸은 조금 힘들어도 고민이 없었으며, 해야 할 일이 보이는 게 나쁘지 않았다.

그렇지만.

반복된 흐름이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답답함이 느껴졌으며, 반복된 흐름의 결과가 안정적인 삶을 가지고 오지 못할 가능성이 높음을 알게 되었다.


물론.

부모님의 시대에는 그렇지 않았다.

벌이가 적으면 적게 쓰면 되는 것이었고,

벌이가 크면 조금은 모아두고 쓰면 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내겐 달랐다.

누구나가 그렇듯.

어제보다 좋은 오늘을 살고 싶은 마음이 있지 않은가?

나 또한 그러했다.

적어도, 어제보다는 좋은 내일을 살고 싶어서 학교에서 나왔는데, 하루하루가 지나면서 조금씩 더 어제보다 못한 삶을 살아간다는 느낌이 가득하게 되었다.


그래서.

변화를 시도했다.

경영 관련 책을 읽었고,

경제와 관련한 책을 읽었으며,

마케팅과 관련한 지식을 쌓아보려 했다.


학생의 시기처럼 하지는 못했지만, 가랑비에 옷이 젖어가듯이 그렇게 했다.

어떤 날에는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2주 동안 한 챕터를 겨우 읽고 반납하기도 했지만, 얼마 뒤에 다시 그 책을 빌려서 열 페이지만 읽고 다시 또 반납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계속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좋다는 생각에.


인터넷을 보며 사업자 등록을 했고,

책을 보면서 온라인 마켓을 만들었고,

여러 자료를 참고하며 내가 판매할 물건에 대한 소개 페이지를 만들었다.


팔리지 않았다.

아무에게도.

누구에게도.

아니, 내가 만든 스토어의 존재조차도 몰랐다.


판매가 일어나지 않아도 계속 상세페이지를 수정했다.

상품은 하나뿐이지만,

다시 사진을 찍어보고, 문장을 바꿔보고,

내용을 다시 살펴보고,

다른 판매자들의 상세페이지를 살펴보고를 반복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했지만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때, 내게 떠오른 이야기가 군 입대 전의 내 모습이었고, 1999년 교실에 앉아있던 내 모습이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해야 했다.

불평 불만하며 그 자리에 주저앉아서 투덜거린다고 일이 해결되는 건 아니니 말이다.


블로그에 글을 쓰고, 브런치에 글을 쓰고,

내 상품을 고객이 사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고민했고, 그 이유가 나를 설득할 수 있어야 했으며, 그에 대한 답을 찾아갔다.

내 감정에 대해서 생각했고, 유지해도 되는 감정인지, 풀어야 하는 감정인지에 대해서 글로 풀어봤다.


그렇게 브런치에 글을 쓰고.

블로그에 글을 쓰고.

그렇게 쓴 글이 어느덧 모이기 시작했다.


작은 성과를 이야기하자면,

이제 스토어에서는 수익의 높고 낮음을 떠나서 매일마다 매출이 발생하고 있으며,

누군가는 내 블로그를 보고 상품을 구매하러 온 고객도 있었고,

블로그로 얻은 수익금이 가족 외식을 할 수 있는 정도는 되었으며,

누군가는 내 브런치의 글을 인용한 사례도 있으며,

글 쓰기 덕분에 출판사와 계약까지 할 수 있게 되었다.


“우와, 대단하다!”라고 할 정도는 아니다.

모든 것이 너무 미미하기 때문에. 그렇지만, 아무것도 없는 내게 그런 작은 경험들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자랑인가?

누군가에게는 작은 일이라고 할 수 있지만, 내게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계속했던 것으로 인해서 발생한 작은 특이점이기에 더욱 귀하게 느껴진다.


오늘도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그루의 나무를 심어 본다.

이 글이 누군가에게 읽힐 수도 있고,

또는 오늘 밤이 지나면 아무도 찾지 않는 온라인 무덤에 있는 글이 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 글의 가지가 자라고 어떤 열매가 생길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후 내가 쓰게 될 어떤 글에서 인용되는 말이 될 수도 있고, 언젠가 미래의 내 글을 본 누군가가 나에 대해서 궁금해하면서 다시 찾아보는 글이 될 수도 있으며, 혹은, 어떤 이이기를 찾아서 온라인의 여러 텍스트를 찾는 누군가에게 우연하게 발견되는 글이 될 수도 있다.

무엇이 어떻게 될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아무도 모른다는 그런 막연함을.

무의미한 어떤 행위로 치부하지 않고,

아주 적은 가능성의 시발점으로 두려 한다.

이것이 오늘 내가 심는 한 그루의 나무이다.


오늘도 한 그루의 나무를 심은 모든 이들이.

무의미한 어떤 행위를 했음에 대한 아쉬움과 원망보다는, 아무도 모를 어떤 가능성의 씨앗을 심었다는 기대로 하루가 마무리되었으면 한다.

그런 두근거림으로 따뜻한 밤을 맞이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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