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적인 갑은 없다.
양말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계를 구입해야 하고, 원사를 구입해야 한다. 기계에서 방직되어 약 80%의 형태를 취하는 양말은 봉조라는 작업을 통해서 일상생활에 착용해도 무리 없는 양말의 형태를 취하게 되고, 자수를 담당하는 분들을 통해서 특정 브랜드에서 책임지는 상품이라는 증표를 받게 된다.
비슷한 방법으로 미끄럼 방지등의 추가적 작업을 하시는 분들의 손을 지나서 가공소라는 곳에서 반듯하게 다려지고 라벨이 붙어있는 최종 상품의 형태를 취하게 된다.
완성된 상품은 도매상의 손을 거치고 소매상의 손을 거치며 소비자들의 손으로 들어가게 된다.
상황에 따라서 특정 단계를 넘어가는 경우도 있지만, 완전한 상품이 소비자의 손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대략적으로 이러한 작업을 수반해야 한다.
상호 간에 필요한 존재들.
기계를 만드는 사람에게는 기계를 사용할 수 있는 방직자, 기술자가 있어야 한다. 방직자의 관점에서는 기계를 만드는 사람과 실, 원사를 판매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방직된 양말을 봉조하는 사람과 그것을 상품으로 만들어주는 가공 업자가 있어야 한다.
도매업자 역시 제조 공장에서 만든 양말을 가공해서 상품의 형태로 자신에게 전달할 수 있는 업자가 필요하며 그것을 소비자의 손에 전달하는 소매상 역시 필요하다.
모두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들이다.
단순히 내가 이야기한 양말의 관점만 그런 것은 아니다.
교사에게는 학생이 필요하고, 교사가 자신의 사명감에 진솔하게 임하는지를 확인하며 그것을 더욱 잘 구현하도록 능력을 연구 발전시키는 장학사가 필요하다.
우수한 학생을 통해서 연구 결과가 어떻게 적용되는지 알려주는 학생도 필요하지만, 우수하지 않다 평가되는 커리큘럼을 따르지 못하는 아이들을 통해서 변수의 발생 가능성을 인지하게 하기 위한 창의적 학생도 필요하다.
학생이 없다면 교사도 없을 것이고, 교사가 없으니 장학사의 존재 이유를 비롯하여 교육과 관련한 행정 요소의 필요성에 누구나 의문을 던질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는 최근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만든 애니메이션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의 원작 소설에서 주인공 코페르의 깨달음에도 언급된다.
세상은 모두 거미줄 같은 촘촘함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연결되어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으로 누구 하나가 누구 하나에게 절대적 갑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할 수 있다.
단지 일의 직위나 위험도, 특수성, 난이도, 희소성과 같은 복합적인 요소에 따라서 저마다 수익의 차이는 발생할 수 있으나, 수익이 많은 사람이 적은 사람을 홀대하며 대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이다.
물론 사회적 약속으로 우리는 그 필요에 따라 감사의 표시로 물질적 보상을 지불하겠지만, 보상을 지불하는 사람이 절대적 우위에 있거나 지불받는 사람이 절대적 우위에 있음은 아니라는 것이다.
상생의 가치를 인식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너와 내가 함께 지금보다 좋은 삶을 영위할 수 있는지, 나의 목적을 이루는 과정에서 주어지는 너의 도움으로 인해서 너는 어떤 유의미함을 창출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
단순하게 물건을 많이 판매하고, 계산기를 잘 두들겨서 수익을 창출하고 내 주머니가 채워진다는 일차원적 고민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에 최선을 다해서 극대화한 수익을 이용하여 내가 속한 조직과 사회에 어떤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것이다.
임용시험을 준비하던 시절에 교육학을 지도하던 어떤 교수님께서는 사업에서 성공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홍익인간이라는 말씀을 하셨다.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
중고 거래 플랫폼을 통해서 누구나 쉽게 자신이 필요하지 않은 물건과 필요한 물건을 거래할 수 있으며, 윈도우라는 프로그램 덕분에 컴퓨터 언어에 대한 특별한 지식 없이 누구나 마우스만으로도 기본적인 컴퓨터 사용이 편리하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대중의 필요를 관찰하고 그들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방법을 고민하며 그에 대한 노력의 결과를 수당으로 지불받고 있다.
보통의 사람들은 어쩌다 그들이 좋은 아이템을 획득하여 막대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상당 부분은 대중의 필요에 대한 고민과 그에 대한 해결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얻게 되는 수익이 아닐까?
양말을 만들고 있다.
조심스러운 말이지만 지금 내가 하는 이것을 단순한 수익 창출의 요소로 사용하고 싶지는 않다는 작은 욕심이 있다.
그러다 보니 상생의 방법에 대해서 고민하게 된다.
물론, 아직 이 분야에 ‘초짜’인 내가 어떤 방법으로 해결책을 찾을는지는 모르겠지만, 고민과 배움의 연장선 속에서 적어도 유사한 해결점은 찾았으면 하는 마음이 크다.
상생을 고민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좋겠다.
일을 통해서 나의 부를 축적하는 수단이 아니라, 일을 이용해서 나와 내가 아끼는 사람들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