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유의미한 존재이며 가치 있는 존재이다.
양말 방직의 과정은 적층식의 방법을 따른다.
더욱 상세하게 이야기하자면, 원통형에서 만드는 방법이냐, 아니면 횡편으로 만드냐의 차이가 있으나, 기본적으로 속실과 겉실 그리고 고무사와 같이 양말 방직에 필요한 실이 발끝 또는 발목에서 시작해서 반대편 끝까지 편직 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기계에 의해서 양말이 방직되기 때문에 사람이 하는 일이 별로 없으리라 생각하지만, 속실이 밖으로 나오는 경우, 또는 속실이나 겉실 중에서 하나가 들어가지 않는 경우, 바늘을 비롯해서 일부 부속에 문제가 있어서 양말에 구멍이 나는 경우와 같이 다양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며, 이를 대비해서 기계가 일을 하는 동안에 관리자는 수시로 출력물을 점검해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다.
맞다.
양말을 방직한다는 일이 생각처럼 부가가치가 높은 일도 아니고,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하례해야 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혹여 기계가 불량을 제작하는 것을 발견하지 못할 경우, 관리자가 발견하지 못하는 시간 동안 기계는 상품가치가 없는 물건을 계속해서 생산하게 되고, 비용의 관점에서 본다면 불량을 생산한 시간 동안 정품이 나오지 않았으니 손해이고, 불량의 경우 모두 파기하기에 그만큼의 원자재가 낭비되어 손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안에서 브랜드를 하는 경우라면 B급의 경우 필요한 소비자에게 저렴한 가격에 유통하면 되지만, 도매상의 주문으로 만든 제품을 그렇게 판매하는 것은 불가능한 부분이다. 그들이 주문한 제품을 생산자가 B급이라는 이유로 판매한다면 누구라도 문제시할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가끔 지인들에게 B급을 주고는 한다.
물론, 그들이 일상에서 착용하는지 여부는 본인들의 선택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우리가 전달한 B급을 그들이 유통하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는 이들에게만 그렇게 하는 것이다.
특히, 농사일을 하거나, 쉽게 양말이 지저분해지는 일을 하는 지인들에게는 매우 유용하게 사용된다.
그게 B급이라도 말이다.
농사를 하는 경우 아무래도 흙과 가까이 지내다 보니 쉽게 양말이 지저분해지는데, B급 양말을 일회용 양말 수준으로 사용하면 적어도 농사의 피로도에 빨래에 대한 부담은 줄어들게 되니 그래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그러고 보면 B급이라고 해도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일반인이 열심히 눈을 뜨고 찾아야 보이는 실 한 올의 차이가 있으며, 사실 겉실과 속실의 위치가 바뀐 부분이 있다고 해도, 미관상의 차이는 조금 있어도 착용상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으니 말이다.
가끔 너무 심한 불량의 경우 두 가닥이 들어가야 하는 겉실이 한 가닥만 들어가서 얇은 양말이 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러한 경우 양말이 가지고 있는 내구성은 약해지지만 얇은 착용감이 오히려 더 좋은 경우도 있다. 때로는 방직 과정에서 속실이 일부 들어가지 않아서 면실만으로 양말이 만들어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경우는 사실, 착용의 용도보다는 면 100%라는 강점을 살려서 청소용으로 사용하면 아주 좋은 용도로 활용할 수 있다.
무엇이든 목적이 있다.
일상생활에서 나를 돋보이게 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양말은 디자인으로, 기능으로 그것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사용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B급은 디자인으로 때로는 기능으로 소비자가 원하는 본연의 목적을 성취하지는 못한다.
그렇지만, B급이라 하더라도 다른 기준으로는 분명 사용 가능한 용도를 만들 수 있으며, 그것이 가진 목적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어떻게 하다가 양말을 하게 되었냐고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리고 양말을 하기 전에는 고등학교에서 10년간 수학을 가르쳤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와 대화를 나눈 사람은 왜 내가 학교를 나와서 사교육으로 들어가지 않았는지에 대해서 의문을 던졌다. 분명, 그 길이 내겐 더 비전이 있어 보였으리라. 게다가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10년을 일 한 교사였으니 사실 러브콜도 적지 않게 받았었다.
그렇지만, 학교에 있으면서 그런 생각을 많이 했었다.
내 수업을 듣는 학생 모두가 수학을 잘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수학을 잘하지 못한다고 그들의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수학을 잘 못하고, 학업 성취도가 좋지 않고, 좋은 대학을 진학하지 못한다고 그들 개인이 갖는 가치가 무의미한 것은 아니었다.
내 눈에는 교육 현장에서 우수한 교육 성과를 내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는 시스템에 대한 불만이 계속 쌓여가고 있었다.
앞으로는 IT가 전망이 좋아, 코딩을 해야 해. 의사가 되어야지. 간호사가 되렴. 화학자가 되렴. 과학자가 되렴.
경영학과에 진학하렴. 등등.
진학에 대한 목표치는 대부분 높은 지적인 역량이 선행되어야 하는 어떤 것을 강요하고 있었고, 그러한 지적인 역량 습득에 흥미가 없는 아이들은 그러한 형태와 커리큘럼을 갖춘 그럴듯한 형태의 기관에 진학하게 되었다. 물론, 그런 기관들에서는 졸업 이후 학생들의 취업 현황에 대한 자료를 크게 공유하지 않았고, 교육 현장 또한 그러했다.
아무리 시대가 빠르게 변한다고 하여도 사회라는 집단이 생성되고 기본적으로 우리가 필요로 하는 요소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 로봇 바리스타가 아메리카노를 내려주고, 드립 커피를 만들어 준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누군가는 진짜 바리스타가 내려주는 커피를 선호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아무리 기계가 옷을 찍어내고 자동화로 일관된다 하더라도 그곳에서 필요로 하는 인력이 "0"으로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있다.
누군가 하찮다고 생각하는 그 일을 해야만 하는 사람이 분명 필요하고, 언젠가는 그 하찮다는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가진 교만한 생각에 대해서 반성해야 할 시기가 올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변화에 대한 기대와 속도는 빠르지만, 그러한 기대와 속도를 누리고 살아가는 사회 구성원 모두가 그 속도에 맞춰 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조심스럽게 내가 양말 방직을 선택한 이유가 이러하다.
과거 배우지 않은 세대도 이 일을 할 수 있었다. 물론, 방직과 관련하여 기계를 다루는 기술적인 부분에는 배움과 지식이 필요하지만 그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일로 만들면 된다.
단, 방직된 양말을 상품이라는 형태로 변형하는 작업에는 배움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남과 여, 노인과 소인을 떠나서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내겐 그 부분이 매력으로 다가왔다.
물론, 아직 이 일을 얼마 하지 않은 초짜의 광대한 꿈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나는 조심스럽게 그런 미래를 꿈꾸곤 한다. 단순히 내가 잘 먹고살고, 우리 가족이 풍요롭게 살아가는 미래가 아니라, 경제적으로 어렵다는 사람에게 돈을 주는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일을 통해서 먹고 살아가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무엇인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언젠가 <그것만이 내 세상>이라는 글을 작성했었다.
그 글의 가사에 "그래 아마 난 세상을 모르나 봐, 혼자 그렇게 이 길을 걸었나 봐..."라는 가사가 나온다.
여전히 그 노래를 들으며 아침에 기계 청소를 하면서 나는 내 미래를 꿈꿔보고, 과연 그것이 공상가의 헛된 이상이 될는지 의심하다가도 다시 의지를 모으기를 반복하곤 한다.
아직은 아무것도 모른다.
배우면 배우는 만큼 더 모르게 되는 것 같다.
그렇지만, 조금씩 꾸준하게 나의 터를 다지고 조금씩 벽돌을 놓다가 보면 언젠가는 안정적인 지반을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B급 양말도 활용도가 있다.
우리 모두가 유의미한 존재임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살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자신의 유의미함을 인식할 수 있는 여건이 많이 만들어지면 좋겠다.
배운 사람, 경험이 있는 사람,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는 선행 조건이 붙은 선별된 사람들에게만 그 말이 의미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에 함께 하는 모든 사람이 그런 유의미함을 느끼며 그 과정에서 삶이 행복해지는 경험을 하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