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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 따위.

먼지가 모여서 강철을 부순다.

by Inclass


청소기의 흡입력이 약해졌다.

아침의 시작은 일단 청소이다.

기계가 많은 것은 아니지만, 일정하게 작동하는 기계의 반복된 소음이 생각보다 크기 때문에, 이어폰을 꽂고 시작한다. 그나마 오래전에는 이어폰이라고 해도 오픈형의 유선 이어폰이었지만, 시대가 좋아져서 이제는 노이즈 캔슬링 기능이 있는 블루투스 이어폰이며,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서 언제든 원하는 가수와 취향의 노래를 배경음악으로 청소를 즐길 수 있다.

아무래도 비트가 빠른 Rock음악을 많이 듣는다. 적당한 리듬감이 청소에도 속도를 더해준다고 해야 할까?


여느 때처럼, 지난 밤동안 열심히 일 했던 기계에 실에서 나온 먼지가 소복하게 쌓인 것을 청소기로 제거하고 있는데 여느 날과 다르게 흡입하는 힘이 약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차 싶어 생각해 보니 먼지통을 비운 지가 생각보다 오래되었다는 생각에 급히 먼지통을 열어보니 공업용 청소기에 들어있는 먼지봉투가 마치 작은 쿠션으로 착각할 정도로 먼지가 꽉 차 있었다.

눈에 보일 듯 말 듯 미세하게 쌓여있는 면실의 잔여물이 이렇게 될 정도로 많았다니.

그렇게 쌓여있는 먼지가 청소기의 흡입력을 약하게 만들었고, 내가 먼지 봉투를 꺼내려던 그때에서야 모터가 엄청나게 가열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열된 모터를 계속 작동했다가 어떤 결과가 왔을는지는 아무도 모르겠지만, 그렇게 유쾌한 일이 아니었음은 분명했을 것이다.




먼지가 바늘을 부순다.

어떤 디자인의 양말이냐에 따라서, 그리고 길이에 따라서 양말 한 짝이 만들어지는 시간은 차이가 있지만, 보통 10분 안쪽의 시간이면 90% 정도 양말의 형태를 취한 결과물이 기계에서 출력된다. 다르게 표현하면 양말 한 짝이 만들어지는 것을 하나의 주기로 해서 기계는 계속해서 일정한 속도로 작동된다.

그렇게 24시간 작동만 잘 된다면 양말을 방직하는 일은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문제는 기계에서 경고음이 울리거나, 출력된 결과물이 내가 인지하지 못한 어느 순간부터 상품의 가치를 취하지 못하는 어떤 흠집이 발생한 경우이다. 여러 가지 문제가 있겠지만, 보통 기계에 있는 바늘에 이상이 생긴 경우 이러한 일이 종종 발생한다.

양말 방직 기계의 바늘은 강철로 되어 있다. 약 1mm 정도의 두께와, 대략 7cm 조금 넘는 길이로 대략적으로 다음의 이미지와 비슷하다.

바늘.png 출처: 십자수 전문 쇼핑몰(joy jasu-요꼬바늘(스킬바늘) 3mm)

저렇게 얇은 녀석이 강철이라고 해 봐야 얼마나 단단하겠냐고 생각하겠지만, 언젠가 니퍼로 바늘을 자르려고 하다가 생각보다 강도가 높아서 당황했던 적이 있다. 결국 두 손에 최대한의 악력을 더해서 내가 원하던 목표를 이루었지만, 두 번 도전하지는 않기로 생각했으니 말이다.


강도가 높은 바늘이지만, 바늘과 바늘 사이에 먼지가 누적되고 그것이 덩어리가 되면서 종종 바늘이 부러지는 일을 만들기도 한다. 겨우 먼지 주제에, 방직되는 과정에서 면실이 딸려 나오고 그러면서 그 주변에서 아주 미세하게 공기 중으로 퍼지는 면실의 먼지정도인데 모이고 모여서 강철로 된 바늘을 부러뜨리고, 휘어지게 만드는 것이다.




교실 청소 깨끗한 교실

처음으로 학교에서 일을 시작했던 시점에 시간 강사를 했었다.

교과 교실제 강사라는 이름으로 하나의 특별실을 전담하고 2개 또는 3개 학급을 하나의 그룹으로 묶어서 수학 성적에 따라서 3개 또는 4개 학급으로 나누어서 가장 하위반의 아이들을 담당하는 역할이었다.

내가 담당한 특별실은 마치 학년에서 창고로 사용했던 것 같은 교실로서 후면에는 사용하지 않은지 오래되어 보이는 철로 된 캐비닛이 있었고, 교실의 앞면에는 먼지가 쌓여있는 비어있는 게시판이 있었으며, 학년 단위 교실에서 남는 여분의 책걸상이 어지럽게 놓인 교실이었다.


수업도 중요했지만, 우선적으로 했던 것은 교실 미화였다.

매 시간 수업이 끝나면 교실 청소를 했는데, 수업을 마치고 나가는 아이들에게 자리 주변에 눈에 보이는 쓰레기를 수거하라고 부탁하고, 1번째 수업이 마치면 빗자루, 2번째 수업이 마치면 바닥 걸레질, 3번째 수업이 마치면 칠판이나 창틀 걸레, 4번째 수업이 마치면 책상이나 벽의 낙서를 지우는 등으로 나누어서 청소를 했다.


그렇게 많은 시간을 소요하는 것도 아니었고, 많은 에너지가 들어가는 것도 아니었지만, 지속적으로 하다 보니 교실이 깨끗해지게 되었다. 교실의 바닥 색이 밝게 변하는 느낌이 들었고, 책상의 낙서가 없어지면서 아이들 또한 책상을 깨끗하게 사용하게 되었다. 이후로 게시판에 몇몇 수학과 관련한 글이나 이미지를 코팅해서 붙여두니 언제부터인가 아이들이 찾아오는 교실이 되었다. 창고 같았던 교실이 몇몇 아이들에게는 쉬는 시간의 휴식처 같은 장소가 되었던 것이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당시 내가 담당했던 3학년 학생들은 이전 1학년과 2학년 시기에 교과 교실 담당 선생님을 해마다 2번 이상은 사표를 쓰게 만들었던 악명이 높은 아이들이었다고 했었는데, 내 수업에서는 전혀 그런 모습이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폭력적인 교사가 아니었고, 폭언이 난무하며 강압적인 언어가 난무하기보다는 농담을 좋아하고 수업을 핑계로 게임을 좋아하는 교사였으며, 아이들과 이야기 나누기 좋아하던 교사였다. 종종 수업 중에 교실을 보고 가시던 교장선생님께서는 내게 "깨어진 유리창 이론"을 이야기하시면서 교육 현장에서 깨끗하고 청결한 교실 환경이 학생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을 내가 잘 알고 실천하는 것 같다고 좋은 말씀을 해 주셨었다.


짧은 시간을 할애하지만 지속성이 더해지는 순간 그것이 가지고 오는 영향력이 생각보다 크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었다.




미세한 먼지가 모여서 강철로 만들어진 바늘을 부러뜨리는 것처럼, 하루하루 짧은 시간 지속된 청소가 교실 환경을 바꾸고 그 교실에서 만들어지는 학생들의 태도에 변화를 주는 것처럼, 아무리 미미한 일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지속성을 갖는 순간 어떤 효과를 가지고 올 수 있는지는 사실 누구도 알지 못한다.


뽀얗게 쌓여있는 먼지를 보면서 그것이 모여서 청소기의 흡입력을 낮추고 모터를 가열하고 어떤 불미스러운 결과를 경험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과거 작지만 반복된 행위의 지속력이 가지고 왔던 긍정적 효과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종종 졸업생들을 만난다. 이제 막 대학 생활을 시작한 아이도 있고, 아직 대학 생활을 준비하는 아이들도 있으며, 어느덧 사회생활을 시작한 아이도 있다. 가끔은 사회생활을 하다가 자신이 몸담았던 조직을 떠난 아이들도 만나게 된다.

대학에 합격했다고 의기양양한 아이도 있고, 이번 입시에서도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고 풀이 죽은 아이들도 있으며, 취업에서 어려움을 이야기하는 아이들도 있고, 자신의 직장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아이들도 있으며, 조직을 떠나야 했던 이유를 이야기하는 아이들도 있다.

마치, 어떤 계기로 성공했고, 어떤 이유로 실패했으며, 어떤 일로 실패를 인정하지 못한다는 말처럼 들리는 상황들이 있다. 그렇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하나의 상황을 바탕으로 삶의 성공과 실패를 정의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 각자의 삶은 작은 성공과 실패의 누적의 결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

실에서 떨어져 나온 작은 가루가 모여서 강철을 부수는 것처럼, 성공이든, 실패든 그것이 반복되며 적층 되는 순간 단단한 자신의 모습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그런 단단함이 만들어지기 전 까지는 결코 누구도 삶을 성공했다, 실패했다고 정의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지금 우리의 삶이 비록 세상의 관점에서 작은 삶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실패한 것이 아니며, 세상의 관점에서 큰 삶이라 하더라도 성공했다고 정의할 수 없을 것이기에, 항상 스스로를 불쌍히 여길 필요가 없으며, 스스로에게 교만할 필요 또한 없으리라는 생각을 한다. 역시나, 내가 오늘 만나는 그 사람에게도 이러한 관점이 적용되면 결코 상대를 가볍게 대할 이유가 없어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오늘도 기계는 돌아간다. 그리고 지난 하루동안 누적된 먼지를 청소기로 제거한다.

이렇게 작은 먼지가 강철로 된 부속을 파손하고, 때로는 누전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미미하다 생각되는 나의 하루가 누적되어 이후 어떤 강함으로 표현될는지에 대해서 기대하게 된다.

먼지를 청소하며, 매일 반복되는 루틴으로 하루를 시작하면서 조금씩 오랜 시간 쌓이는 나의 하루가 만들어갈 미래를 조심스럽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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