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이점에서도 지켜야 하는 것.
아이의 여덟 번째 생일.
주말을 이용해서 외할머니 집에서 조금 이른 생일 파티를 한 아이는 그날의 이벤트가 자신의 생일에 대한 모두라고 알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그런가, 아침부터 불만 투성이다.
내 생일에는 학교 가서 별로다.
생일인데 특별한 게 없다.
생일이면 뭐 하나. 어차피 학교 가는데.
생일이라고 학교를 쉴 수는 없다. 하교 후, 집에서 놀고 있는데 아빠가 일찍 퇴근을 하고, 할머니와 할아버지도 오셨다. 그때부터 아이가 예상하던 하루가 바뀌기 시작했던 것 같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손에는 아이가 좋아하는 구슬 놀이의 확장 유닛이 있었다. 그것으로 이미 기분은 상승했다. 타지에 있는 삼촌이 선물을 보내줬다. 선물을 열어본 아이는 평소 좋아하던 멋진 흰색 레고 스포츠카를 보고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어린이의 표정을 보였고, 이후 이어진 선물 오픈식과 저녁 식사, 그리고 케이크로 하루의 끝을 맞이했다.
하루를 마감한 아이는 최고의 하루라는 말을 몇 번이고 반복하였고, 그렇게 하루를 마무리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생일인데 씻어야겠지? “
평소 씻는 것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씻지 않고 잠들지 않으면 하루가 더 길어질 것 같은 본인의 생각을 표현한 말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그 말을 듣고 문득, 생일이어도, 어떤 특별한 날에도 꼭 이어져야 하는 평범한 하루의 일들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나이의 앞자리 숫자가 바뀌던 새해의 첫날에도 아무런 변화는 없었다. 그냥 평범한 하루였으며, 해마다 맞이하는 신년의 아침, 그리고 첫 일출을 놀라운 광경을 보면서도 하루는 여전히 어제의 연장선에서 이어지고 있었다.
사랑하던 사람을 잃게 된 어느 날도 여전히 시간이 지나면 허기짐을 느꼈고, 피곤이 쌓이면 잠들게 되었다.
삶이라는 하나의 선에서 특이한 점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어떤 점도 이전의 삶과 이후의 삶을 이어주는 연결점 중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떤 기억은 마치 그날에 대한 기억이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기억이 휘발된다는 생각을 한다.
아이가 처음 걸음을 걷던 날, 처음 자전거를 타고, 처음 산책을 가고, 처음 소풍을 가고, 처음 유치원에 가던 날과 같이 처음에 대한 많은 기억은 사진처럼 내 기억에 남아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은 왜곡되고, 잊게 되며, 미화되고, , 희석된다는 것에 익숙하게 된다.
그래서 그런지 기억을 잡으려 노력한다.
누군가는 사진으로, 누군가는 영상으로, 누군가는 글로 남겨둔다.
그것을 자신의 삶에서 특별한 점으로 정해서 오랜 시간 기억하려 하는 것 같다.
그러고 보면 특별한 날에도 변하지 않고 해야 하는 것은 하루에 대한 기억을 유지하는 방법에 대한 행위이며, 어떤 형태이든, 하나의 일정한 장소나 공간에 보관하는 행위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기록한다 한들, 이후에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면 의미 없는 것이 아닐까?
지구가 멸망해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철학자 스피노자는 이야기했다.
가벼운 그의 말이 지금 글을 쓰는 중에 갑작스럽게 떠오른 이유는 내 나이에 그것을 하는 게 의미 있냐는 말로 20년 이상의 시간을 아무런 변화 없이 보냈던 지인에 대한 기억이 나서 그런 것 아닐까 생각한다. 20년 전에는 분명 그 말이 맞았지만, 아이러니는 시간이 흐르면서 기대수명 또한 늘었으며, 그렇게 시간의 상대성은 마치 멈춘 것 같은 삶을 그에게 선물했다는 생각을 한다.
그때도 그의 나이는 젊지 않았고, 지금도 그의 나이는 젊은것이 아니지만, 기대수명이 계속 연장되는 상황에서 그는 과거에도 지금도 생각보다 오랜 시간을 젊지 않은 나이로 살아갈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어쩌면, 그런 삶에 대한 통찰로 스피노자는 내일 내 삶이 멸망하더라도 나는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에 집중하겠다는 말을 했던 것이 아닐까?
20년 이상 변화 없이 보냈던 그의 삶에서 성장은 없었다 하여도 매일같이 규칙적이고 일정한 삶을 이어갔다는 부분은 분명 배워야 할 부분이며 가치가 있는 삶이라는 것이라 명시하고 싶지만, 배우지 못했던 시간의 흐름이 아쉬운 마음에 한 이야기이다.
아무튼, 삶은 이어지고 있다.
특별한 날에도 우리는 여전히 우리가 해야 할 것을 해야 하고, 삶이 비록 언젠가는 끝난다 하여도 우리는 여전히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을 해야 한다.
여전히 이어지는 삶이기에 그것을 기억해야 하고, 어제보다 좋은 오늘을 만들기 위해서 기억하고 기록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생각하고 배우고, 고민하며 사고해야 한다.
그렇게 삶이라는 그릇에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것을 채우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니, 생일이어도 씻은 다음에 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