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가진 것을 고치려는 우리의 태도

빠그작

by Inclass

주방에서 거실로 걸음을 옮기는데 발과 지면 사이에 무엇인가가 들어오는 느낌이 들었다. 순간적으로 체중을 가볍게 하려 생각했으나, 이미 들어간 힘의 속도는 어떻게 하지 못했다.


“빠그작”


다행스럽게 사람은 다치지 않았지만, 거실에서 굴러다니던 탁구공은 사람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회복하지 못하는 균열을 얻게 되었다.


이미 오랜 시간 가지고 놀았던 탁구공이고 찌그러진 부분을 뜨거운 물에 넣어서 몇 번이고 살렸던 공이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탁구공은 자신의 기능을 온전하게 상실하게 되었다.


아이는 그동안 정들었던 공이 아깝다고, 스카치테이프를 덕지덕지 붙였다. 물론, 그런다고 공이 가진 기능이 살아나는 것은 아니었지만, 탁구공의 약간 누런 흰색과, 스카치테이프의 반질반질함이 오묘하게 균형을 잡아서 마치 참기름이 듬뿍 발려 있는 송편을 보는 것 같은 모양을 만들었다.

그리고 탁구공은 우리 집에서 떡으로 불리면서 새로운 장난의 소재로 사용되곤 한다.



결혼 초부터 사용하던 소파가 있다.

3인용이지만, 기준보다 조금 넓고, 가죽의 부드러운 느낌 때문에 가족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높지 않은 팔걸이 덕분에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소파에서 잠들기도 했고, 열대야에 잠을 설치면 역시나 소파에서 잠을 자기도 했으며, 발소리를 조절하지 못하는 아이는 소파를 쿠션 삼아 뛰었고, 처음 걸음마를 하면서는 넘어져도 다치지 않는 든든한 보조기구가 되어 줬었다.


그렇게 애용하다 보니 어느덧 팔걸이의 가죽이 삭아서 균열이 생겼다.


전부터 살펴보다가 인터넷에서 리폼용 가죽을 주문했는데, 정신을 어디에 뒀는지, 필요한 사이즈에 맞춰서 가죽을 자르고 나서야 접착용 가죽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순간접착제를 이용하면 붙어있다는 말에 본드를 덕지덕지 발랐지만, 시간이 지나니 본드의 흉터만 남고 자연스럽게 떨어지게 되었고, 결국 소파는 이전보다 조금 더 흉한 모습으로, 리폼하려는 가죽이 너덜너덜한 상태로 팔걸이의 형태를 갖게 되었다.


수리해서 사용한다는 게 결국은 수리하지 못하는 상태를 만들었다. 차라리 그냥 쓰는 게 더 좋은 선택이었을까?




직종이 바뀌고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저녁시간이면 아이와 함께 레고를 했다.

바닥에 앉아서, 아이보다 더 집중해서 레고를 했던 게 문제였던 것 같다.


숙면을 취하고 일어나서 머리를 감았는데 허리가 펴지지 않았다. 뚝. 거리는 느낌은 아니지만, 뭔가 빠직 거리는 기분에 걸음부터 모든 움직임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옷을 입는다는 표현보다 옷에 몸을 잘 넣었다는 표현이 맞을 듯했다. 그렇게 흉한 몰골을 가리고 병원에 갔고, 의사의 상담과 진료 결과 디스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중에 더 정확하게 알게 된 것은 4번과 5번 척추 사이의 디스크와 5번과 6번 디스크 사이의 척추가 부어서 신경을 건들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약을 처방받고, 나름의 운동과 스트레칭으로 몸을 회복했다고 생각했는데, 딱 1년 만에, 날씨가 추워지던 얼마 전 통증이 다시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왼쪽 엉덩이와 다리 그리고 발가락이 저린 증상이 계속되었다.


병원에 찾아가니 의사는 그동안 치료에 소홀했다고 몸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고 격분을 했다. 불편함은 내가 겪는 건데, 필요 이상의 감정 표현에 마음이 상한 부분도 있었지만, 환자를 사랑하는 표현의 다른 방식이라는 생각에 가볍게 생각하고 넘어갔다.


약을 처방받고, 치료를 받고 있지만 이번 통증은 생각보다 오래가고 있다. 재발의 기간이 짧아지고 통증의 시간이 길어진다는 것은 디스크가 심해진다는 반증이라고 했는데, 어떻게든 관리해야겠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었다.


뒤늦게서야 허리 디스크와 관련한 책을 찾아 읽었다.

병원에서 이야기하지 않은 통증의 원인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고, 평소의 좋지 않은 습관에 대해서 찾아갔으며, 지금 상황에서 유용한 운동 방법을 찾아서 공부하기 시작했다.




생각하지 못했던 많은 문제 상황을 경험하게 된다.

누구나가 삶을 살아가며 문제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

때로는 본능으로 해결하고, 때로는 나의 부족한 지식으로 대응하다가 더 큰 낭패를 겪기도 하며, 때로는 선행 사례를 찾아가며 해결하고, 때로는 무지함으로 대응하다가 늦게서야 허겁지겁 바른 해결 방법을 찾기 위해서 노력한다.


문제를 미리 인지하고 그것에 대한 대응 방법을 알아가는 방법이 있어도, 정작 문제를 접하기 전에는 그러한 앎의 과정에 대한 유의미함을 크게 인지하지 못하게 된다.


경험은 앎의 계기가 된다는 생각을 한다.

비록 그것이 실패의 경험이고, 성공의 경험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탁구공을 밟고 그것을 재미난 놀이 거리로 만드는 경험은 아이에게 유의미함을 줄 수 있었을 것이며, 내게는 바닥을 잘 보고 다녀야 한다는 학습을 줄 수 있었을 것이다. 소파 리폼에 대한 경험은 쇼핑 사이트에서 검색 결과에 대한 절대적 신뢰를 경계하는 앎을 깨닫게 했으며, 해당 분야 기술 전문가의 우수성을 체감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디스크의 경험은 건강의 문제로 어려움을 겪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얻게 된 깨달음과 비슷하지 않을까?


경험은 앎의 계기가 되지만 경험이 앎으로 이어지는 필연성에 대해서는 개인마다 다르다는 생각을 한다. 내겐 깨달음의 이벤트가 누군가에게는 그랬던 상황에서 멈추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유한의 삶에서 경험이라는 이벤트를 통해서 배움을 축적하지만, 누군가는 타인의 이야기에서 간접적인 경험을 통해서 배움을 축적하게 된다. 그것이 어쩌면 유한한 인간의 활동 범위에서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배움의 축적을 가능하게 한 것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한다.


아마 내 글을 읽으면서 “탁구공을 그렇게 활용한다니?”라던가, “소파를 그렇게 리폼하는구나!”라던가, “디스크가 그런 증상을 가지고 오는구나!”와 같은 앎이 생겼다면 그것 또한 읽는 이의 유한한 삶에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간접 경험을 얻은 것이 아닐까?


문득, 글을 쓴다는 행위와 읽는 행위의 중요성을 생각한다.

글을 쓰면서 자신의 경험을 누군가에게 간접으로 나누고, 읽음으로 인해서 타인의 경험을 나의 경험으로 생각하며 경험하지 않은 문제 상황에서 그것에 대한 정보를 습득하는 계기를 만든다.

즉, 글을 쓰는 행위와 읽는 행위를 하는 모든 이들은 분명, 지금보다는 더욱 성장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기본적인 소향을 갖춘 것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된다.


그런 관점에서 브런치라는 플랫폼이 참 좋아지기 시작한다.

광고, 선전, 홍보의 목적이 아니라 순전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 공간. 그렇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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