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정의하지 말아라.

당신의 삶조차도.

by Inclass

“선생님! 학교에 갔었는데 이제 학교에 계시지 않는다는 이야기 듣고 연락드렸어요! 잘 지내시나요? 언제 함 봐요!”


식물처럼 느리지만 그래도 아주 미미하게 변화가 일어나는 SNS를 통해서 오래전 졸업한 제자에게 연락이 왔다. 그리고 그렇게 약속을 정하고 함께 졸업했던 다른 아이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학창 시절 자율학습 시간이면 담요를 덮고 책상에 엎드려 자는 모습이 눈에 선하던 아이였는데, 어느덧 다 큰 아가씨가 되었고, 벌써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첫인사를 나누며 아이는 이야기했다.

대학에 가서 공부가 그렇게 즐겁다는 것을 처음 알았고, 전공과목을 공부하다가 눈을 떠보니 아침 해 뜨는 시간이었음을 알고 놀랐던 경험이 많았다고 자랑삼아 이야기했다. 그 덕에 장학금도 받고, 우수 학생으로 인정받아 다양한 학교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으며, 졸업과 동시에 취업도 쉽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아이 또한 스스로에게 놀랐다고 했다.

자신의 고등학교 생활을 돌아보면 대학생활의 자신과는 다른 사람이었던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자신의 성장에 기뻐하는 자신감 넘치는 성인의 모습과 학창 시절 수업시간에 게슴츠레한 눈빛으로 칠판을 응시하던 눈빛이 생각나면서 아이의 긍정적 성장과 함께 시간의 흐름에서 아이가 얻게 된 성취감에 대한 이야기가 그렇게 기분 좋게 들려왔었다.



대학시절 후배를 만났다.

학부 졸업과 동시에 대학원에 진학하고 바로 교단에 들어간 나는 바쁘다는 이유로 연락하지 못하고 지냈었는데, 교직을 그만두고 잠들어 있던 SNS를 통해서 연락이 왔다.


“형님! 잘 지내십니까? 함 뵙지요!”


그렇게 자리가 만들어지고 함께 식사를 나누고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근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서로에게 많은 이야기가 없었다.


후배는 졸업과 동시에 해운업 관련 직종에 취업을 했다. 졸업과 동시에 일자리를 얻었고, 호탕한 성격과 책임감, 그리고 듬직한 키와 함께 선 굵은 얼굴은 바다를 가까이하는 사람들의 거친 관계에서도 주눅 들지 않았고, 그래서 그런지 10년이 넘는 시간을 한 직장에서 일했었다.


시간이 지나며 시간의 흐름과 경제의 흐름이 가장 많은 시차를 만들던 시점에 후배의 회사 또한 어려움을 겪게 되었고,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영입한 인적자원이 낙하산 인사라는 것이 일의 진행 과정에서 증명되면서 후배는 그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고 한다. 물론, 오랜 시간의 주말부부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자신이 담당한 일에 애증을 가진 사람이 갖는 실망도 있었지 않을까 생각된다.


일을 그만둔 후배는 웃으며 전업주부로 생활한다고 이야기했다.

듬직한 아빠가 아이의 유치원 등하교를 도와주고, 하교 이후의 다양한 활동을 함께 하게 하고 있으니, 후배의 아이가 얼마나 행복할까 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고민 또한 있었다.

일을 해야 하고, 수익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아이의 미래도 준비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조심스럽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지금, 경제 활동을 하는 것보다 더욱 큰 가치를 알고 그것에 투자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아들에게 있어서 오랜 시간 함께하지 못했던 아빠가 계속 같이 있다는 것이, 잘 생기고 키 크고, 덩치 좋고 호탕한 아빠가 아이의 하원길에 손 잡고 걸어가는 그 장면에서 아이는 세상 무엇도 두렵지 않을 것이라는 안정감이 느껴졌기에, 지금의 상황은 숨을 고르는 과정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오랜 시간 타지에서 생활하던 친구가 다시 돌아왔다.


중학교 시절 전학 와서 지방에서의 생활이 어색하기만 하던 내게 어딘가 마음이 통하고 소통이 되었던 친구였다.


서로 다른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대학에 진학했고, 군 입대 이후 연락이 끊어졌다고 생각했지만, 어디서 어떻게 시작된 건지 모르지만 인연이 이어진 친구이다.


성인이 되고 처음 알게 된 친구는 패션디자이너가 되어 있었다.


어느 날 공모전에서 상금을 받았으니 맛있는 저녁을 사주겠다고 오래된 구형 소나타를 끌고 내 자취방을 찾았고, 그렇게 골목을 나서다가 주차된 택시의 뒷 범퍼를 살짝 긁으면서 지갑에 있던 돈을 모두 털리고 다시 자취방에 돌아가서 함께 라면을 먹으면서 웃던 친구였다.


얼마 후 친구는 방송에 출연 중이라며 지방에서 송출 여부는 모르지만 여건이 되면 찾아보라며 방송 명을 알려줬다.

자취생에게 TV는 사치였고, 학교 도서관의 컴퓨터를 이용해서 아직 발전하지 않은 깨진 화질 속에서 친구의 활약을 볼 수 있었다.


바쁜 삶이었고, 언제 하는지 모를 영상을 찾아보기 힘들어서 잊고 지내다가 촬영이 끝났다며 역시나 밥을 먹자는 친구를 만났다. 결승까지 진출했으며, 우수한 성적으로 대회는 마감했으나 시청률이 부진하여 최종화까지 방송이 되지는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그렇지만 방송을 계기로 친구의 역량은 인정받았다.

신문에서 친구의 이름을 볼 수 있었고, 인근 백화점에서 친구가 만든 의상 브랜드가 자리 잡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승승장구할 것 같았던 삶이었는데, 어느 순간 꼬이기 시작했었다. 그 친구의 어려움을 수용하고 해결할 수 있는 능력 있는 내가 아니었기에 그냥 옆에서 기다려줬었고, 이제는 그 어려움이 조금은 해결되어 얼굴을 마주하게 되었다.


친구는 이제 디자이너를 하지 않고 다른 일을 하게 되었다.



졸업생을 만나며, 후배를 만나며, 친구를 만나며, 함께 학교에서 일했던 선생님들을 만나며 삶에 대한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누구도 삶을 정의할 수 없으며, 단정하지 말아야 한다.


생각보다 많은 졸업생들이 학창 시절 담임선생님께서 정의 내린 “네가 갈 수 있는 대학”에 근거한 능력치에 절망하고 자신의 수준이 그러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지만, 대학에 들어가고 그렇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아이들이 생각보다 더 많이 있음을 알게 된다.


대학 진학 후의 삶에서 그들이 사회적으로 승승장구하는 삶을 이어갈는지, 아니면 경제적으로 풍요롭지 않더라도 충분히 행복한 삶을 살아갈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아이를 돌보며 집안일을 하고 있다는 후배가 몇 년 후에 어떤 삶을 펼치게 될는지에 대한 가능성에 대해서도 누구도 정의할 수 없을 것이다.


한때 유명한 디자이너였던 친구가, 이제어야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한 그 친구가 패션 디자인이 아닌 새로운 일에서 어떤 인연을 만들고 과거의 경험이 기반이 되어 어떤 미래를 그려갈는지 아무도 모른다.


몇 살의 나이에 어떤 사회적 위치에 있다고 그들의 삶의 성패를 정의하는 것은 옳지 않으며, 앞으로의 삶이 어떤 곡선을 그려갈는지 유추하는 것도 옳지 않다는 것이다.

내가 타인의 삶을 그렇게 정의하는 것도 옳지 않으며, 타인이 내 삶을 그렇게 정의하는 것도 옳지 않으며, 내가 내 삶을 정의하는 것 역시나 옳지 않다는 생각이다.


삶은 정의되지 않는다.

과거 이런 실수 때문에 이런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니며, 지금의 이런 미흡함 때문에 어떤 미래가 필연적임은 안며, 역시나 지금의 행운이 미래의 풍요와 직결돼야 하는 절대성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한 깨달음이 바탕되는 순간, 지금이라는 순간에 집중하게 되며, 한편으로는 지금이라는 순간에 조금 관대하게도 되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지금이라는 순간에 숨겨진 평안을 찾는 혜안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삶을 정의하지 말자.

내가 과거 어떤 것을 했으니, 내겐 어떤 미래가 보장되어 있다고 확신하는 과정에서 교만을 싹 틔우지 말고, 내 과거 미흡함이 내 미래에 영향을 준다는 생각에 너무 소극적으로 살아가지 말고, 과거 나의 연약함이 미래의 내게 필연적 연약함이 된다는 생각에 주눅 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제와 오늘은 분명 연결되어 있지만, 연결의 끈을 이어가는 것도 사람의 능력이며, 그것을 끊어내는 것도 스스로의 능력이 아닐까?


넓은 거실 한쪽 구석에서 식탁 의자 사이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로봇청소기처럼, 스스로가 만든 정의에 갇혀 작은 공간에서 우왕좌왕하다가 배터리가 다 되어 삶을 끝내는 그런 삶은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도. 너도. 그들도. 모두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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