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쓰기 8일 차.
가족과 함께 일을 하고 있다.
조금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부모님과 함께 제조업을 하고 있다.
그 시절을 살았던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공부보다는 돈을 벌어야 했고, 아껴서 모아야 했던 시기였다.
부모님 또한 그러했다.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고, 양가의 형편이 좋지 않으니 작은 단칸방에서 시작된 삶은 매일같이 아끼고, 모으고를 반복하여 재산을 축적해야 했다.
기술을 배우고, 공장을 시작하며 조금씩 삶은 여유롭게 되었지만 그것 역시 수익이 좋아서라는 이유보다는 열심히 일 하고 아끼고 모아서 만든 결과였다.
지금도 그러하다. 제조업을 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러하듯이, 가능하면 기계는 멈추지 않아야 하고, 공장은 계속 돌아가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고 있다. 처음에는 그게 욕심이라 생각했다. 내가 함께 일을 하기 시작하고 날씨가 좋으면 함께 나들이를 가는데도, 오전에 열심히 일 해서 그날의 일을 끝내고 나들이를 갔었고, 여행을 다녀와서도 집에 오면 일단 기계부터 가동하고 여독을 풀었다. 지독하다고 생각했다. 쉼이 없는 삶이라니. 눈만 뜨면 기계를 돌리고, 틈만 나면 기계를 살펴본다.
함께 지내며, 혹시나 부모님께서 쉼의 방법을 모르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계속 일을 했었고, 여유시간이면 낚시를 가거나 뒷산을 오르는 게 전부였고, 가족과의 외식이 전부였으니 말이다.
함께 지내면서 관찰하니, 정말 그런 것 같았다.
잠을 자거나, TV를 보거나, 공장에 가거나, 가족들과 외식을 하거나, 병원에 다녀오시거나, 뒷산에 올라갔다 오신다거나.
그게 전부였다.
공장을 하시기 전, 직장생활을 하셨던 아버지께서는 직장 동료들 사이에서 당구를 잘한다고 유명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노화로 인해 시력과 몸이 약해지면서 당구 역시 TV로만 즐기는 방법이 되었다.
공장을 하다가 폐업을 하고 잠시 쉬었던 기간이 있었다. 그 기간에 두 분은 배드민턴과 탁구 동호회에도 참여하셨다. 그렇지만 역시나 몸이 약해지면서 그러한 모임에 참여하는 것도 힘들게 되었다.
어쩌면, 가장 작은 에너지로 할 수 있는 게 공장의 일을 살펴보는 것이 된 것 같았다.
자영업을 하다가 귀농을 해서 스마트팜을 운영하는 친구가 있다.
농장은 시골에 있고, 가족들은 도심에 있다 보니 매일 농장까지 출근과 퇴근을 반복하고 있다.
아침 8시면 일을 시작하고, 저녁을 먹고 일을 끝내고 수확물을 경매장에 넘기고 집에 들어가면 보통 저녁 10시가 된다. 그 일을 하루도 빠짐없이 하고 있다. 정말 나 같으면 벌써 그만뒀을 것 같은데 항상 밝은 목소리로 노력하는 친구를 보면서 나 또한 이겨내야 한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어쩌다 하루 우연하게 그 친구와 내가 쉬는 날이 겹친 적이 있다.
우리 가족과 그 친구의 가족이 함께 나들이를 갔다.
나들이에 다녀오며 잠든 아이들을 보며 젊은 부모들의 대화가 이어졌다. 친구의 아내는 남편이 열심히 일 하는 것도 좋고, 열심히 수익을 만들어 오는 것도 좋지만, 본인의 시간을 갖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는 이야기를 했다. 친구는 정말, 매일같이 일 했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쉬는 날 없이 일했으며, 한 달에 한 번 겨우 만들어지는 쉬는 날에도 아이를 위해서 시간을 활용했기 때문에 더욱더 본인의 시간이 없음에 대해서 주변에서 염려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물론, 그 시간에 친구는 달리는 차 안에서 잠들어 있었다.
나들이를 다녀와서 경매장에 물건을 납품한 친구와 차 한잔 할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친구에게 힘 들이지 않는 자신만의 취미를 만들고 쉼의 시간을 즐기는 방법도 배워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래야, 언젠가 몸과 마음이 약해지게 되어도 스스로를 챙길 수 있다는 생각에서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 부모님 또한 자신만의 취미를 즐길 수는 있다.
당구, 배드민턴, 탁구, 드라이브.
그렇지만, 그런 취미들은 육신이 힘을 잃어가는 순간부터, 몸이 피로에 예민하게 반응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조금씩 멀어지는 취미가 된 것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가장 익숙하고 가장 적은 에너지로 할 수 있는 "일"이 결국 취미라기보다는 남는 시간을 보내는 유일한 방법으로 부득이하게 선택된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다.
내 친구 또한 그런 어른이 될까 봐, 그런 노인이 될까 봐 염려가 되었다.
문제는 자신에게 남은 유일한 취미인 "일"에도 육신의 힘과 정신적 에너지가 소요되기 때문에 결국에는 본인이 꿈꾸고 계획하는 것은 있으나 쉽게 피로를 느끼기게 그에 대한 실행은 자녀에게 전가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지금의 내 삶이 그러하듯 말이다.
적어도 내 친구는 어른이 되고, 노인이 되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자신이 그동안 가꾸어 왔었던 일이 유일한 것으로 남은 시점에서 자신의 몸은 그것을 충분히 소화하기 힘들기에 자녀에게 부담을 주는 노인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그런 말을 하게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친구는 그 말을 수용했다. 그의 유일한 자녀가 이후에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자신 또한 충분히 독립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늙어갈 것을 다짐하게 되었다.
취미, 여가를 보내는 방법, 쉼을 즐기는 방법을 배우는 것은 중요하다.
젊은 시절에는 다양하게 경험하는 것이 좋지만, 어느 정도 나이가 되고 자신의 삶에 대한 소유권의 상당 부분이 가족에게 양보되는 시점에도 자신의 삶을 즐기는 최소한의 방법을 훈련해 두는 것은 정말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래야, 내 몸이 약해져서 이것을 하고 싶은데 몸이 따르지 않으니 네가 도와달라는 의존적 노인이 되지 않을 수 있다. 바꿔서 보면, 그래야 내 다음 세대가 독립적이고 자유롭게 자신의 삶을 펼쳐가는 방법을 영위할 수 있다.
책을 읽고 생각하며, 영화를 보고 생각한다.
대화를 하고 생각하며, 사물을 관찰하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의 흔적을 모아서 글을 쓴다. 그러고 보면 나의 글 쓰는 행위는 노인이 되어서도 나 자신의 독립적 삶을 살아가기 위한 노력의 일부라는 생각을 한다.
10년, 20년, 30년이 지나서도 비록 그게 어떤 플랫폼이 될는지는 모르겠지만, 계속 글 쓰고 생각하는 삶을 살면 좋겠다. 그렇게 내면적으로 풍요로운 어른으로 늙어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