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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class Mar 26. 2024

훈수가 가장 쉬웠어요.

매일 쓰기 10일차

글 쓰는 게 어려운가? 그냥 쓰면 되는 거 아닌가?

생각나는 거, 말하고 싶은 거 그냥 쓰는 건데 그게 어려운가?


10일째 그냥 글을 쓰고 있다. 자유롭게. 주제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생각을 쓰는 거다. 하루하루의 생각. 아니, 글을 쓰기 위해서 생각한다.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지? 앞으로 무엇을 하지? 어떤 생각이 내 삶을 채우고 있을까? 등등의 생각으로 글을 쓰고 있다.

매일 글을 쓴다는 게 어쩌면 일기를 쓴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내 하루의 삶이 이곳에 묻어나지는 않으니 일기라고 말하기에는 표현의 부족이 있을 듯하다. 아무튼, 매일 "자유롭게" 글을 쓰는데, 그게 과연 뭐 어려운 일이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맞다. 배 부른 소리다. 글 쓰는 게 뭐가 어렵다고.


그렇지만, 정말 매일 글을 쓴다고 생각하면, 그것을 방해하는 많은 요소들이 있다.

먼저, 몸이 피곤하면 쓰기 싫고, 키보드 위에 손이 올라가는 것과 동시에 뇌가 포맷되는 느낌이다. 당연히 주제가 특별하게 떠오르지 않게 된다. 그렇게 멍하게 있다가 귀중한 시간을 그냥 보내게 된다.

매일 글을 쓰기 위해서 약속도 최소화한다. 근본적으로 수다를 좋아하는 인간이라서, 저녁 약속을 잡으면 식사 후 차 한잔이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당연한 것처럼 카페가 영업을 마치는 시간까지 떠들곤 한다. 그렇게 중요한 이야기도 아닌데, 떠들다가 보면 시간이 그렇게나 빨리 간다. 

글 쓰기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는 다른 곳에 시간을 사용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다. 좋아하는 드라마를 본다거나, 한창 재미나게 읽고 있는 소설을 읽는다거나, 아이와 놀아주고 싶다거나와 같이 말이다. 마치, 시험공부를 하려고 책상 앞에 앉아서 책상 정리부터 방 청소, 옷장 정리까지 하는 학생들의 심정과 비슷하다고 할까?


쉽다고 생각하는 많은 일이 막상 내 일이 되면 쉽지 않은 경우가 많다.

글쓰기처럼 말이다.


내 주변에 지혜롭지 않은 어른이 많아서 그런 건지, 직업 특성상 그런 사람이 많아서 그런 건지는 잘 모으겠지만, 언제부터인가 연배가 있는 어른들을 만나면 공감과 소통의 대화보다는 가르침의 언어로 시간을 채우는 분들을 종종 보게 된다. 대화에 함께한 사람은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이야기를 꺼낸 것이 아닌데, "그건 말이지..."라는 식으로 마치 자신의 경험과 아이디어가 최선의 해결책이라는 생각으로 나열하는 경우를 만나게 된다. 단지, 공감을 받고 싶고, 그것에 대하여 넋두리를 하면서 본인 마음의 무거움을 내려놓고 싶어 하는 눈치인데, 그가 속한 문제의 상황과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조언을 남발하며 마치 솔로몬의 해법을 이야기한 것처럼 자신감 넘치게 앉아 있는 불편함을 종종 경험하게 된다.


대화에서는 듣는 게 중요하다는 말을 많이 한다.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한다. 듣다가 보면 정보를 습득하게 되고, 넋두리를 들으면서 개개인에 대한 차이를 인지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빠진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만이 구렁텅이에 빠진 삶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대화에서 듣는 것이 중요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알고는 있지만, 사실 잘 되지 않는다. 듣는 것이 말이다.

학창 시절에 적극적인 듣기에 대해서 그렇게 공부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경험이 쌓이고, 사회적 직위가 올라가면서 자신에게 직언을 하는 사람의 수가 상대적으로 줄어들면서 마치 자신의 지식과 지혜가 어느 정도 정점에 이르게 된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

얼마나 안타까운 상황인가?

지혜롭고 똑똑해서 그에게 직언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그동안의 경험으로 이야기해도 듣지 않으니 그런 피로감을 덜 느끼기 위해서 말하지 않는 것이고, 그런 가까운 사람이 없어서 직언을 하지 않는 것인데 그걸 모르고 마치 자신의 지혜가 정점에 이른다고 생각하니 말이다.


훈수는 쉽다. 어떻게 하면 공부 잘한다. 어떻게 하면 점수가 오른다. 어떻게 하면 돈을 벌 수 있다. 어떻게 하면 성공할 수 있다. 등등. 누구나 그런 말을 할 수 있다.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하는 말이라면 더욱 쉽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결에서도 이세돌의 바둑을 보면서 "그건 아니지, 아이고~저기서 저렇게 했어야지."라고 말하는 어른들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그만큼 훈수는 쉽다고 생각한다. 


확실한 것은 관계에서, 삶에서 너무 쉬운 것만을 추구하다가 보면 분명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고민을 듣고, 상대가 공감을 바라는지, 그냥 들어주기를 바라는지, 해결을 바라는지 구분하지 않고, 쉽게 쉽게 모든 상황에서 조언을 가장한 훈수만을 하려 한다면, 분명 어느 순간부터 관계의 폭이 좁아진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폭이 좁아지고, 자신만의 시간이 너무 많아져서, 그 시간에 독서를 통해서 깊이가 더해지는 삶을 살아간다면 그것도 긍정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외로운 섬처럼 되는 사람이 그런 지혜의 길을 선택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점점 더 자신만의 시선으로 세상을 판단하고, 자신이 원하는 정보만을 수용하게 될 것이니 말이다.


훈수가 가장 쉬웠어요.


3월의 후반을 맞이하게 된다. 

"학교"라는 조직에서는 가장 바쁜 3월이 드디어 끝을 보게 된다. 자연스럽게 일의 파도에 떠밀려 살아가던 사람들이 조금씩 호흡을 돌리면서 모임 날을 정하기 시작했다. 만남의 자리가 많아질 듯하다.

대화의 순간마다 듣고 공감하며 최소한의 조언을 이어가는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사람을 품을 수 있는 어른이 되겠다는 다짐으로 글을 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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