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자존감도 필요합니다.

매일 쓰기 39일차

by Inclass

지필고사가 끝나면 아이들과 함께 점수 확인을 합니다.

마킹한 OMR카드의 데이터를 읽어서 NEIS에서 채점한 결과와 미리 아이들에게 공지된 정답표를 바탕으로 학생들이 채점한 결과가 맞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과정이지요. 보통, 서술형 문항이나 단답형 문항이 있었다면 그에 대한 채점 결과도 함께 확인하는 작업입니다.


단답형의 경우는 정답이 정해져 있으나, 서술형 문항의 경우는 종종 학생이 어떤 부분이 미흡해서 점수를 획득하지 못했는지 이유를 설명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어떤 논리의 부족으로 점수를 획득하지 못했는지 말이지요.


점수를 확인하다 보면 학생들의 다양한 반응을 보게 됩니다.

어떤 아이는 예상보다 높은 점수에 기뻐하고, 어떤 아이들은 풀이 죽은 표정으로 점수를 확인하지요.

종종 너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점수로 힘들어하며 들어가는 아이들도 있어요.

어떤 아이들은 자신의 점수를 보고 제게 미안하다고 이야기하는데 그 말이 얼마나 마음이 짠한지요.


학창 시절 공부에 대한 기억이 그렇게 좋은 사람들은 잘 없었던 것 같아요.

사실, 저도 그랬었지요.


그런 기억이 있다 보니 점수를 확인하고 들어가는 아이들을 보면서, 우리는 왜 이렇게 시험점수로 힘들어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종종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저는 수학을 전공했어요.

교사를 생각했는데, 부족한 진로 지식으로 수학교육과보다는 수학과에 진학하는 게 더 수학에 대한 전문적 안목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을 했었지요.


가장 어려웠던 과목이 미적분학이었어요.

나름 수학을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대학에서 만난 미적분학은 어찌나 어렵던지. 물론, 수능 이후에 책을 잡지 않았던 제 잘못도 있었겠지만 말이지요.


미적분학 교재에 있는 연습문제를 풀이하는데, 한 문제가 어떻게 풀어도 답이 나오지 않더라고요. 이상하게 고집이 생겼어요. 정말 그 문제만 3일 이상을 고민했던 것 같아요. 그 문제를 풀이하기 위해서 다른 문제를 반복해서 풀어보며 아이디어를 찾았는데 잘 나오지 않더라고요.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번뜩!! 하면서 그 문제에 필요한 아이디어가 떠올랐어요.

그리고 풀이를 써 내려갔지요. 믿기 힘들겠지만, 거의 연습장 2장 정도의 풀이로 기억하고 있어요. 아무튼, 그렇게 답이 나왔지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교재에 정답이 있는 페이지를 봤어요.

결과가 어땠을까요?

정말 현실적으로.

틀렸어요.


그 순간의 좌절이란.

순간 이성을 잃었지요. 풀이가 적혀있는 연습장을 찢었어요. 정말 화가 났었거든요. 며칠을 고민해도 풀이하지 못하다니. 겨우 연습문제인데. 나름 수학을 한다고 자신하고 있었는데, 며칠의 고민이 정답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니. 그런 여러 마음들이 깊은 어디선가 폭포처럼 나오고 있었어요. 그리고 그 감정을 막을 댐이 없었지요.


잠시 뒤.

제 옆에 누가 오더라고요.

도서관 자율 위원회라고, 도서관의 학습 분위기를 관리하는 학생들이었지요.

맞아요. 그렇게 저는 도서관에서 쫓겨났어요. 덕분에 한동안 제가 있던 단대에서 멀리 떨어진 다른 도서관을 이용해야 했었지요.


참, 웃기지요? 그깟 수학 문제 하나 틀렸다고 그렇게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다니 말이에요.

수학문제 하나 풀이하지 못한다고 인생이 망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지요.




사람마다 역량은 달라요.

잘하는 분야가 다르고, 관심 분야가 다르고, 적성을 보이는 분야가 다르지요.

그런데, 학창 시절 우리가 마주하는 공부라는 녀석은 그렇지 않아요.


종합적으로 좋은 성적을 얻어야 하고,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 필요한 과목에서 우수한 성적을 얻어야 하지요.

그런 점수의 기록이 있어야 해요. 그리고 마치 그 점수에 미치지 못하면 아무것도 못한다는 것처럼 해석되기도 하지요.

"이 점수로는 그 대학, 그 과에 진학하는 건 어려운데?"


정답을 찾는 과정은 어쩌면 스스로의 논리적 확신으로 답을 찾게 되지요. 그게 오개념이 될 수도 있지만, 아무튼, 자신이 가지고 있던 기존의 지식을 바탕으로 생각하고 고민하며 판단해서 정답을 결정하게 되지요. 이 과정에서 무의식 중에 자신의 논리, 사고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는 것 같아요. 하다못해 자신의 촉, 감이라는 것에 대해서라도 신뢰하게 되지요.


그런데, 정답이 오답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되면서 나의 사고와 논리, 촉, 감이라는 선택에 관여한 모든 부분이 부정당하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것 같아요. 이 과정에서 마치 자신이 부정받는다는 느낌을 받게 되지요.

정답과 오답의 결과가 친구들과 비교되면서 자신의 존재를 더욱 낮게 평가하게 되는 것 같아요.

공부라는 이 영역에서 마치 본인이 패자인 것 같은 생각이 들게 되지요.

정말 그런 게 아닌데 말이지요.


어쩌면 공부가 어려운 이유는, 반복된 자존감과의 싸움이 아닐까 생각해요.


여기서 잠깐 자존감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사전적 의미로 자신을 존중하고 가치 있는 존재라고 인식하는 마음이라고 할 수 있거든요. 때문에, 나의 판단에 관여한 모든 부분이 오답이라는 이유로 부정받으면서 나의 가치가 외면당한다는 느낌을 받게 되고, 사회적 시각에서 나를 존중해야 할 이유가 없어진듯한 생각을 하게 되지요. 그러니 공부가 힘들어지는 것 같아요.


이런 논리로 이건 정답이야. 이런 규칙으로 이건 정답이야. 이런 기억을 바탕으로 이게 정답일 가능성이 높은 것 같아. 내 감을 바탕으로 이게 정답인 것 같아. 그동안의 내 운을 바탕으로 난 정답을 마킹한 거야.

내 기억이 맞아. 지난밤 공부했던 기억에 의하면 이게 정답이야. 역시, 난 학습 능력이 우수한 것 같아.

이런 마음을 문제를 풀이하지만, 결과를 보면 오답과, 오답과, 오답이지요.

점수의 부여, 미부여의 차이로 우리는 생각하지만 정작 답을 기록한 학습자에게 다가오는 느낌은 "네 논리가 틀렸어. 네가 찾은 규칙이 틀렸어. 네 기억이 틀린 거야. 네 감은 맞지 않아. 넌 운이 나빠. 네 학습 능력은 우수하지 않아."처럼 들리게 되지요.


공부가 쉽다고요?

아니요.

학생들은 매번 이런 과정을 반복하고 있는 거예요.

학생의 시기에 모두는 이런 과정을 반복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 공부가 어렵지요. 힘들지요.


그렇지만, 자존감이 좋은 학생들은 이런 어려움을 털어내고 회복할 수 있어요.

내 논리가 틀렸지만, 다음에는 더 정확하게 생각해 봐야겠어. 내 기억이 부정확했으니 다음에는 정확하게 해 보겠어. 운에 의존하지 않겠어. 감으로 맞추지 않을 거야. 많이 공부해서 정확하게 생각해야겠어. 등등 말이지요.


공부를 잘해서 행복한 삶을 마주할 확률과 좋은 자존감으로 행복한 삶을 마주할 확률 중 어떤 확률이 더 높을까요?

공부를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존감 좋은 아이들로 성장시키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행복할 삶을 마주할 확률이 높다고 생각하거든요.


부모와 대화하고, 가정이 소통하며, 안정적인 분위기의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 자존감이 좋을 확률이 높은 것 같아요. 안정적인 분위기란 부모의 경제적 여건보다는 가족 안에서 느끼는 유대감과 안정감에 대한 영역이 더 높다고 생각하고요.


성인이 된 사람들은 분명 알고 있어요.

높은 모의고사 성적, 높은 내신 성적이 내가 그와 좋은 관계를 만들기 위한 전제조건은 아니라는 것 말이지요. 오히려, 나와 소통할 수 있고, 이기적이지 않고, 편안한 사람과 관계하고 싶다는 것을 우리는 분명 알고 있어요.


많은 사람들이 오늘도 열심히 살아가고 있어요. 각자의 환경에서 고군분투하지요.

왜 그렇게 살아갈까요? 더 좋은 내일과, 행복한 삶을 위해서 살아가지 않나요?

어떤 부모들은 더 좋은 내일과 행복한 삶을 아이가 살아갔으면 하는 생각 때문에 불합리함에도 이 악물고 참아가며 오늘을 이겨내고 있지요.

그런 노력과 인내가 유의미하게 연결되면 좋겠어요.

우리는 행복한 삶을 위해서 살아가고 있어요.

내 삶도, 내 가족의 삶도, 우리 모두 행복할 삶을 위해서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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