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변화를 주는 간단한 원리

매일 쓰기 43일차

by Inclass

초등학교 2학년인 아이는 학원을 다니지 않고 있어요.

부모가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다는 이유도 있지만, 아이가 학원을 그렇게 바라지 않는다는 이유도 있지요.

자연스럽게 가정에서 학습 계획을 수립하고 아이는 가정에서의 학습 일정을 따르게 되지요.

가족 모두가 집에 있는 저녁에는 식사를 하고 일명 "홈카페"라는 이름으로 식탁에 모여 앉아서 가벼운 차를 마시면서 독서를 하거나 각자의 공부를 하곤 하지요. 초등학교 2학년이다 보니 공부하라는 압박보다는 모르는 것은 책을 보고, 강의를 보면서 배워가는 부모의 모습을 보여주려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어요.


얼마 전 하루의 일정이 바쁘게 지났던 적이 있어요. 아이에게도 바쁜 하루였지요.

그러다 보니 아이와 협의해서 그날의 학습 계획은 다음날 하자고 이야기를 했지요. 그리곤, 먼저 씻긴 아이를 두고 부모는 잘 준비를 했어요.


특별하게 할 일이 없어진 아이는 일기를 쓰겠다며 자신의 책상에 앉더라고요. 그냥 그러려니 생각했지요.


그런데, 얼마 뒤 아이가 우리를 부르더라고요? 당연히 일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나? 싶어서 방에 갔는데, 우리의 예상과는 전혀 달리, 아이는 혼자서 국어, 영어, 수학 문제집을 펼쳐서 그날 공부해야 할 것을 혼자서 하고 있더라고요. 당연히 일기도 간단하게 작성하고 말이지요.


정답을 맞히고, 그렇지 않고는 중요하지 않았어요. 아이 스스로 그런 행위를 했다는 게 놀라웠지요.

일기만 쓸 것이라는 우리의 예상을 넘어서 아이는 일기도 쓰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스스로 했어요. 우리의 기대를 넘어섰던 것에서 아이의 성장에 부모는 감동하게 되었지요.




아이의 행동을 보고 감동을 어떻게 받게 되는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어요.

기대치를 넘어서는 순간 감동을 느끼게 된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크게 기대하지 않은 영화에서 감동을 느끼는 경우가 있는 반면, 기대하고 본 영화에서 실망이 큰 경우도 있지요.

무심결에 들어간 식당인데, 예상보다 저렴한 가격과 그보다 좋은 맛과 서비스라면 당연히 만족하고 나올 거예요. 반면, 찾아보고 많은 후기를 읽어보고 선택한 식당인데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맛과 서비스라면 큰 실망을 가지고 나오게 되겠지요.


감동은 어디에서 올까요?


어쩌면 감동은 내가 예상한 수준 이상의 무엇을 받았다는 느낌을 있을 때, 또는 그보다 못할 때 감동의 정도는 바뀌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치, 일기만 쓸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시키지 않은 일을 모두 하고 자랑스러워하는 아이를 본 것처럼 말이지요.


감동은 변화를 준다고 생각해요. 아이가 부모에게 감동을 준 것으로 부모는 아이를 신뢰하게 되지요. 신뢰함은 어찌 보면 아이의 자유도를 높여준다고 볼 수 있어요.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할 것이라는 믿음 때문에 아이가 더 많은 것을 시도해도 염려하지 않고, 걱정하지 않고 지켜보게 되지요.




아인슈타인이 말했다고 알고 있어요.

내일에 대해서 염려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정신병이라고 말이지요.


안타깝게도 학교에 있으면서 그런 경우를 많이 봤어요.

꿈꾸는 진로와 그것을 위한 학과, 희망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서 부족한 성적에 대한 고민과 방법에 대한 상담을 하고 아이는 다시 자율학습을 하러 갑니다. 아이와 상담으로 미뤄진 공문 처리를 하고 퇴근 전 조용하게 아이가 얼마나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지 살펴보러 가면 아이는 책상에 엎드려 곤히 잠들어 있지요.


어떻게 해서라도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서 성적을 올려야 하는데, 오늘 자율학습은 참여가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음날 다른 아이들에게서 자율학습 참여 불가 사유가 이성친구와의 데이트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지요.


단순히 학생들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어른들에게도 충분히 일어나는 일이지요.


자신의 업무에서 인정받고 싶은데, 자신의 직장에서 영향력을 보이고 싶은데, 퇴근은 칼같이 하고, 월급 받는 만큼만 일 하고, 퇴근 후에는 술자리에 시간을 보냅니다.

꼬인 인생을 해결하기 위해서 무엇인가 시도해야 하는데, 일단 오늘은 술과 함께 꼬인 인생이 내게 주는 고통을 잊으려 합니다.


성적은 올려야 하지만,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았으니 일단 오늘은 일탈을 하겠다는 학생과 다른 부분이 없습니다. 결코, 어른이 된다고 삶을 대하는 태도가 더욱 지혜롭게 성장하거나, 대범하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지요.


내일에 대해서 염려하고 그것에 변화를 주기 위해서는 오늘 무엇인가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 변화가 시작되지요.




"감동"을 생각하며 변화를 생각해 봤습니다.


감동은 어떤 상황에 오나요? 기대한 것 이상의 무엇이 시도되었을 때 감동을 받게 됩니다.


삶에 대해서도 그런 관점을 적용하면 어떨까 생각해 봤어요.


삶이 내게 감동을 한다면, 삶은 변화하게 된다고 말이지요.


삶이라는 보이지 않는 존재가 "나"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이 있을 거예요. 나라는 존재는 그러니까요. 오랜 시간 그렇게 살아왔으니까요. 그렇지만, 그런 고정관념을 벗어나는 시도가 일어나는 순간, 삶은 나라는 존재에게 감동하게 되고, 삶은 내게 조금씩 변화를 준다는 말입니다.


학생의 관점에서 생각해 봅시다.

성적을 올리겠다는 간절함은 예전부터 가지고 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시도도 항상 하겠지요.

문제는, 과거부터 오랜 시간 무의식 중에 "이 정도 노력이면 오르지 않을까?"라는 기대 수준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대 수준은 안타깝게도 과거부터 계속 반복된 범위였다는 것입니다. 즉, 삶의 관점에서 "이 정도 노력"은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충분히 예측 가능한 범위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오늘 나는 열심히 노력해서 "이 정도 노력"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면 되겠다고 생각하지만, 삶의 입장에서는 역시나 반복된 시간 속에서 누적된 그 사람에 대한 예상치 범위 안이라고 볼 수 있지요.

간절함이 의미 있는 변화로 보이기 위해서는 "이 정도 노력"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렇게 이야기하면, 그렇게 생각하겠지요. 아니, 24시간 중에서 20시간을 노력하는데 더 하라고? 그게 가능해?라고 말이지요.

여기서 제가 이야기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단면적 부분이 아니라 종과 횡을 모두 포함한 개념입니다.

즉, 하루의 범위와 기간의 범위를 모두 이야기하지요.

오늘 하루의 시간 중에서 "이 정도 노력"과 함께 기간의 범위에서 "이 정도 노력"이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쉽게 말해서, 뜨거운 노력이 작심삼일이 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음의 소리>라는 유명한 웹툰이 있지요. 저도 즐겨 봤었는데, 재미있는 것은 그 웹툰이 매번 항상 재미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 웹툰을 즐겨 봤었지요. 왜 그랬을까요?

중간중간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있지만, 과연 작가의 기발함이 수년의 시간 동안 끊어지지 않고 계속되었다는 것에서 사람들은 감동을 받은 게 아닐까요? 즉, "기간"이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었고, 그 감동은 그의 웹툰을 찾아서 보게 하는 변화를 줬다고 볼 수 있지요.


경영과 관련한 일화에서도 이런 이야기는 종종 만나게 됩니다.


처음에는 가벼운 만남으로 생각했으나, 끈질긴 성실함에 누군가의 마음을 흔들어서 계약이 성사되는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몇 번 정도의 면박으로 당연히 포기하리라 생각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 감동을 얻게 되고 그런 마음이 결정에 변화를 주게 된다고 볼 수 있는 것이지요.


우리는 항상 오늘보다 좋은 내일을 생각하게 됩니다.

내일의 삶이 적어도 어떤 부분에서 오늘보다 긍정적 변화가 있기를 바란다면, 분명 오늘을 노력하며 보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노력은 삶이라는 추상적 존재에게 감동을 줄 수 있을 때 유의미한 변화로 다가오게 되지요.


결코, 오늘과 내일의 삶을 그저 하루하루 이어가는 태도에서는 감동을 줄 수 없으며, 그것은 어떤 긍정적인 변화를 기대할 수 없게 됩니다.


때문에 우리는 노력해야 하고, 그런 변화를 위해서 고민하고, 공부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책을 보고 지식을 탐독하는 공부가 아니라, 내 삶을 더욱 풍성하게 하고 나를 성장하게 하는 모든 행위를 의미하는 공부 말이지요.


그런 시도가 꾸준하게 누적되어 임계치를 지나는 순간, 삶은 우리의 노력에 감동하고 분명 어떤 변화의 시발점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 매일 글쓰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게 어떤 유의미함을 제게 주는지는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다 보니 마음에 흔들림이 생기는 것 같네요. 어쩌면 오늘의 글은, 내일의 변화를 위해서 매일 반복되는 작은 노력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라는 저에게 제가 하는 말이라고 볼 수 있을 듯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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