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명

좋아하지만 필력이 없어서

by 랑랑

고등학교 때 내 꿈은 시인이었다. 글 써서 한 달에 백만 원쯤 벌 수 있길 기도했다. 지금도 그때도 참 어려운 이야기지만 그땐 그럴 수 있겠지 하고 꿈꿨다. 목표에 도달하는 방법은 등단밖에는 몰랐고 그 등단의 길엔 단연 신춘문예가 제일 멋있었다. 연초에 서점에 가면 그해 신춘문예 등단 작가님들 작품들이 얼굴을 빼꼼히 하고 날 기다렸다. 주머니 가벼운 학생 하나 등단하신 작가님들 얼굴을 보고 작품을 읽고 문장을 주워 왔더랬다. 뚜렷이 기억나진 않지만 빨래를 시로 쓰셨던 작가님. 읽는 동안 내가 빨래하는 느낌으로 시를 읽고 또 읽고 너무 좋아서 한동안 마음에 품고 살았는데 지금은 기억이 가물거린다. 몰래 폰으로 찍어 두었다면... 아니지. 신춘문예 출간책을 샀어야 했다. 시인의 이름 오래 기억해 둘 것을... 신춘문예로 등단한 시인과 작가가 꿈이었던 나의 겨울. 작가님은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실까 궁금하다.


2000년도. 수덕사에서 고은 시인님 강연을 접할 기회가 있었다. 시인의 어린 시절 시가 쓰기 싫어서 누군가의 시를 베껴가면 시인의 선생님께서 여기 고쳐라 다음날 저기 고쳐라 그다음엔 또 저기를 고치다 보면 전혀 다른 시가 되어있었다는 그런 이야기를 해주셨었다. 천하의 고은도 그러했는데 나도 그렇게나마 시를 써서 일취월장할 수 있으면 따라 해 보자. 빨래 대신 카레로 시를 써볼까 생각했다. 냉장고에서도 살아있는 당근을 깨우고 어떤 환경에도 싹 나고 퍼렇게 피부색을 바꾸는 감자를 노려보며 속이 썩어도 겉은 멀쩡한 겉은 멀쩡해도 속이 썩어있을 양파를 푹푹 끓여서 흐물흐물해질 때까지 마음에 고았다. 그러나 한해 두 해 흐르고 흐른 시간이 무색하게 시는 나오지 않는다. 얼마 전에 다시 습작했었는데 또 엔딩이 문제이다. 어디로 흐를지 어떻게 매듭 져야 할지 고민하다가 끝난다. 카레는 답이 없어서 작고 소소한 것들을 애틋하게 바라보고 있다. 나무를 오래 보고 있기도 하고, 새벽에 깬 나를 3인칭 전지적 시점으로 쳐다보기도 하고, 하늘을 나는 새들을 한참 보기도 한다. 이면지에 끄적거리기도 하고 뛰다가 머릿속에 써보기도 핸드폰에 저장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시로 풀어볼라 하면 건질 문장이 없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내 생각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둔 타인의 책들을 읽는다. 정아은 작가의 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 임경선 작가의 태도에 관하여:나를 살아가게 하는 가치들. 한승혜 작가의 다정한 무관심: 함께 살기 위한 개인주의 연습. 여기 까지는 버틸만했다. 나는 일상을 내 언어로 쓰면 되는 거지 처음인데 기성작가와 겨루면 무엇하랴 우겨도 보고 못 본 척도 했다. 그런데 최근 정재은 작가의 집을 고치며 마음을 고칩니다 :우울을 벗어나 온전히 나를 만난 시간을 보니 더 이상 내게 길이 보이지 않는다. 그동안 편협했던 독서 시야는 조금 넓어졌으나 이제 보지 않으려 했던 선행자들의 길을 보고 마음이 쪼그라들었다.


주변 탓을 해볼까 무얼 가져다 붙여 핑곗거리를 대볼까 고민도 해봤는데 결국은 실력이 없다. 며칠을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기도 하고 그러면서 진지하게 고민하고 쓰고 또 써도 계속 그 자리를 돌고 도는 장난감이 되고 만다. 써 내려간 문장들을 잘게 쪼개면 어디서 보고 듣고 습득된 것들이 드러나는 것만 같아서 펜을 들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저번주 시는 나오지 못하고 휴재를 했다. 아무도 관심 없지만 스스로가 부끄러워 어쩔 줄 몰랐다.


좋아하는데 실력이 없다는 사실. 그런데 계속해서 쓰고 있는 나와 이걸 붙잡고 있는 나를 견딜 수가 없다. 모르겠다. 제발 그만 징징거리고! 그냥 쓰고! 그냥 올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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