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1

시골흙집

by 랑랑

어떤 형태의 집에 살았던 기억이 지금의 나와 가장 잘 어울리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시골 흙집, 단독주택, 연립주택, 아파트. 무엇이 나랑 가장 잘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집에 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유년 시절의 기억을 가장 많이 담고 있던 집은 아무래도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을 피부로 느낄 수 있던 시골 흙집이었다.


아빠는 부지런하셨지만 집안일엔 굉장히 게을렀고 엄마의 불편함과 힘듦과 투정이 만렙을 찍어야 겨우 해줄까 말까 했다. 덕분에 집은 한 번에 고쳐지지 않았고, 사는 내내 그 집을 수리하며 지냈다. 대청마루가 있어서 겨울 한해 울릉도처럼 비닐로 집을 에워싸기도 했고, 욕실 공사를 하기도 했고, 칸막이되어 있던 방을 헐어내기도 했고, 대청마루아래를 막아내기도 했다. 주방을 입식으로 고치기도 했고, 어디서 주워온 창과 샷시를 달기도 했고 시골집 작은 쪽문들을 없애고 막아내기도 했다. 아랫채의 구들이 무너져서 구들 전문가 할아버지를 모셔와 새로 깐 것을 제외하곤 다 아빠손으로 어디서 알음알음 재료를 구해와 진행한 것들이 많아서 내 눈에는 아빠가 맥가이버처럼 보이던 눈부신 순간들이 많았다. 화를 좀 덜 냈다면 더 멋있어 보였을 텐데 여하튼 그 시절 아빠는 나에게 김반장이었고 우연수집이었고 제이쓴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웃기지만 꼭 그런 손재주 넘치는 남자에게 시집가야지 했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집안에서 사계절을 다 느껴왔던 것은 재료 다루는 솜씨가 아마추어였기에 폼도 쏘는 것도 어설펐고 어설픈 그 공간으로 계절감이 고스란히 느껴져서 여름엔 더운 바람이 겨울엔 추운 바람이 계절을 알려왔다. 그러나 아빠가 하는 아빠 집의 아빠 만족이었기 때문에 힘들면 마감도 제대로 안 하고 몇 달을 보내기도 부지기 수였고 우리의 불평불만은 먹히지도 않았다. 그래도 아빠는 내게 맥가이버였다. 내겐 금손아빠.

그 집에 살면서 홈패션 하느라 재봉틀질하고 화단을 정리하고 이쁜 꽃들을 심고, 움직일 때마다 흙이 조금씩 떨어지는 그 집을 정성스럽게 쓸고 닦는 엄마를 볼 때마다 엄마의 수고가 부담스러웠지만 그 깔끔함을 당연하게 살았던 것 같다. 거북이처럼 천천히 고쳐지는 집에서도 늘 정돈된 주방과 식탁 그리고 깔끔히 정돈된 침구들. 그때 쓰던 식기들을 아직도 쓰고 있는 엄마를 보면 엄마의 마음가짐을 삶의 철학을 만날 수 있다. 엄마의 밥상을 만날 때마다 만난 그 그릇들을 보면 따뜻했던 찌개와 엄마표 반찬들 그럼에도 고마운 줄 모르고 투정하기도 했던 어린 시절이 주마등을 스쳐간다.


나와 동생은 서로의 책상을 두고 이쁘게 꾸미기를 경쟁했는데 연필깎이를 CD와 CD플레이어를 자기 자리에 꾸며놓겠다고 이모가 등공예로 만들어준 공예품을 자기 거라며 소유주 놓고 매번 싸웠다. 투닥거리는 소리는 흙벽을 뚫고 엄마 아빠의 귀에 들어갔고 결국 손들고 서 있거나 디지게 혼나는 일이 일상이었다. 고장난 시계도 하루에 두 번은 만난다고 만화를 사랑하는 공통분모를 가졌던 나와 동생은 엄마가 아끼던 염상섭 전집 뒤에 슬램덩크와 드래곤볼을 모아두었고 유년시절 읽고 읽고 또 읽고 둘이 밤새 자투리 코믹버전까지 얘기하며 소소하게 즐거웁기도 했다.



비가 오면 빗소리를 듣고 눈이 오면 눈 오는 소리를 듣고 바람이 불면 바람소리가 났던 집. 대추나무, 앵두나무, 감나무, 밤나무가 있었던 집. 한켠에 강아지 여러 마리, 닭과 오리 가끔은 토끼도 키우던 비닐하우스. 그 사이 집에서 먹는 야채들을 키우던 텃밭.

거기서 나는 나뭇잎이 흔들리지 않아도 바람이 분다는 것을, 한 눈 파는 사이에 풀이 사방으로 자라나는 것을, 벌레들도 무농약을 사랑해서 식욕왕성하게 먹이들을 먹어치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엔 시간을 필요로 하고 시간을 단축시키는 것엔 비용이 수반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사람과 가까워지는 것은 나의 노력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멀어지는 것도 나의 마음만으로 되는 게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고 마음이 쓸쓸하기도 했다. 하늘엔 별이 가득하고 땅엔 개미가 가득하다는 것도 라디오 주파수가 잘 맞지 않아서 손으로 안테나를 잡고 여기저기 방향을 돌려보기도 했다. 잘 맞춰지지 않는 주파수처럼 늦은 소식들이 산골마을까지 전해지고 뒤늦은 유행을 따라가고 그렇게 하나 둘 생기던 취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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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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