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3

하숙집 딸내미

by 랑랑

만약이라는 생각을 참 많이 하지만 단 한순간도 되돌아가고 싶은 시절은 없다. 돌아가고 싶은 시절로 돌아간다고 해서 순간 하나를 바꾼다고 혹은 그 순간을 더 열심히 산다고 더 나은 미래도 행복도 보장해 주지 않을 것이며...


우리 이사 갈 건데 너 학교는 어떻게 할래? 엄마가 물어봤다. 미성년자의 의사는 이사 여부를 뒤집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따라가냐 가지 않느냐 정도 결정할 따름이었다. 처음엔 학교 기숙사에 있었으니 그러겠노라 했는데 점점 무너져갔다. 난 내가 그렇게 외로움을 많이 타는 인간인지 그때 처음 알았다. 성적도 떨어지고 성격도 굽어지고 얼굴도 어두워지고 가족과 죽고 못 사는 관계도 아니었건만 닿지 못한다는 게 이렇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결국 기숙사엔 늦은 시간까지 불이 켜있었고 사람들이 가득한데 날이 밝으면 더 많은 사람이 가득 차는데 마음은 뚫려있어서 혼자 훌쩍였다. 몇 번을 그러다가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나 전학시켜 줘 엄마.

도에서 도를 넘는 전학이 그렇게 어려운 줄 처음 알았다. 엄마는 여기저기 학교들을 가서 사정 아닌 사정을 했다. 부탁 아닌 부탁을 했다고 했다. 그러다가 모교에 들어갔다.


그리고 나는 하숙집 딸내미가 되어있었다. 기숙사와 하숙집 별반 다르지 않았지만 덜 외로웠는데 가끔은 더 외로웠다. 역시나 함께 있다고 덜 외롭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안 그래도 가벼웠던 고등학생의 마음은 수시로 흔들렸고 가난했고 우울했고 지킬 수 있는 것이라곤 자존심뿐이었다. 하숙집은 기숙사와 비슷했다. 식당 + 공용화장실 + 개인방이 한 동에 몰려있다는 것과 엄마의 직장이 함께했다는 것 정도가 가장 컸고 하숙생 언니 오빠들이 학기들을 보내며 가지고 온 CD, 잡지, 책 등을 공유하고 얘기나누기도 했고, 언니 오빠들의 연애와 술문화를 근거리에서 보았던 것은 재미있는 일이었다. 이토록 즐거운 선행학습이라니!

그러나 네모 반듯한 집에 산다는 것은 참 재미없는 일이었다. 바꿀 것이 없는 풍경들. 변화를 싫어하는 육중함. 사람을 누르고 있는 건축물. 불확실한 미래. 방황하는 청춘들의 에너지. 학교와 먼 집. 재미없는 학교. 집에 있으면 학교에 가기 싫어지고 학교에 가면 집에 가기 귀찮았다.

대략 4살 차이 나던 언니 오빠들. 몇몇은 군대에 가고 몇몇은 학교를 그만두기도 하고 혹은 졸업하기도 하고 취업이 되어 인사하러 오기도 했다. 그땐 멀게만 느껴졌던 고민들이 내 고민이 되다가 나도 대학생이 되었다. 네모난 집에서 그냥 네모나게 네모나게 네모나게 되어버린 대학생. 정작 대학생이 되고 나니 그때 동나이가 된 하숙생들과는 말 한마디 하지 않게 되었고 난 가끔 청소나 하고 밥 차리는 데 있는 직원 중 하나 느낌이 났고 언니 오빠들을 볼 때와는 다른 데면데면함과 동질감은 있지만 친해지고 싶지 않은 마음과 각자도생도 함께 했다. 문은 벽과 달라 열릴 수 있다지만 원치 않은 거리둠은 문을 굳게 닫게 했다. 상처받을 것도 없이 나도 내 대학생활을 하느라 바빠졌고 역시나 대학생이 되니 더 멀어진 학교덕에 집에선 등교가 귀찮고 등교 후엔 귀가가 귀찮아 학교 근처에서 자주 서성거렸었다.


타이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도 내 거주지는 하숙집 딸내미 일 테고 고등학생은 자력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 그다지 없으며 지금 알고 있는 깊이의 인문학과 조금 나아진 필력을 쏟아부어도 백일장이나 문예대회에서 눈부신 결과도 주어지지 않을 테고 더 비참할 텐데... 그렇다고 공부를 더 열심히 해서 더 좋은 학교에 간다? 그럼 뒤에 만날 사람들을 못 만났을 거 같고. 나는 나의 과거를 그냥 제자리에 두고 어루만져준다. 그냥 온통 아쉬운 밤, 내게 친구가 되어준 사람들이 그리워지는 밤이다. 그 단단한 집에서 집 밖에서 호되게 겪고 있는 사춘기의 나에게 말도 건네주고 친절도 건네주고 웃음도 건네주고 싸가지도 건네주고 잔소리도 조언도 이별도 아픔도 건네준 사람들이 그립다. 그때의 모나고 성격 더럽고 더 편향적인 나와 친구가 되어준 친구들이 생각났다가 흩어지는 밤이다.

주민등록초본상 과거가 되어버린 집과 서류도 없이 멀어지게 된 사람들과 점점 희미해지는 기억들. 붙잡고 싶은 마음도 기억하고 싶은 마음. 그 마음을 표현하려는 내 글은 부족해서 박완서 작가님의 글로 마감한다.



내가 취한 행동은 그전부터 예정된 일이었다. 나의 눈물에 거짓은 없었다. 이별은 슬픈 것이니까. 졸업식 날 아무리 서럽게 우는 아이도 학교에 그냥 남아 있고 싶어 우는 건 아니다

박완서 그 남자네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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