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 푸는 스트레스
시댁 어른들의 생신은 명절 한 주 전이다. 시어머니가 추석 한 주 전, 돌아가신 시아버지가 음력설 한 주 전. 덕분에 그 달엔 두 번은 시댁에 갔다. [며느리의 명절 전 스트레스받은 이야기이니 토로가 보기 싫으시면 뒤로 가기 버튼을 누르시길 추천드린다]
이번 추석 전에도 어김없이 시댁에 다녀왔다. 시어머니 생신인데 아무것도 준비된 것은 없다.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준비성에 나온 것들로 생신이 치러진다. 15년 차에 이젠 그러려니 하고 여전히 챙겨가는데... 어쩜 이렇게 깐죽거리는지. 내 엄마 생신 아니고 시어머니 생신이고 본인들의 어머니 생신상이면 그냥 군소리 없이 먹고 인사하고 보내주면 좋겠건만... 내 작은 소망은 참 어려운지 이뤄질 기미가 없다.
집은 살고 있는 사람의 중요도가 보이는 법이다. 일이 우선이라 지금 지어지는 농사가 무엇인지. 일하다가 집까지 가지고 들어온 걱정과 고민과 현안이 무엇인지. 한 바퀴 돌아보면 속속들이 정확한 사연은 몰라도 두리뭉실하게 알 수 있다. 시댁에 가면 우선순위가 하루 살이라는 것이 보이고 살다 일하다 일하다 사는 고단함이 보인다. 그래서 웬만하면 그 삶에 내가 껴있고 싶지 않고 최대한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넘어가고 싶은데..
애아빠랑 아이들은 토요일 내려오고 저는 일요일에 내려올게요.라는 내 설명에 기껏 한다는 소리가 왜요? 였다. 굳어가는 안면을 애써 부여잡으며 토요일 출근입니다 이야기해 줬건만. 정말 안하무인이다. 밥 못 먹어 죽은 귀신이 붙었나, 그렇게 걱정을 지금부터 하시냐고 면전에 뱉어줄걸. 토요일도 출근해서 다음 날 오겠다는 정상적인 발언이 고깝나 보다. 내가 안 가는 것도 아니고 내가 안 하는 것도 아니고 정말 나한테 뭐 맡겨놓기라도 한 거야??? 그의 와이프마저 내게 뭐해먹을지 생각해 오라고 숙제를 준다. 아 정말 너희들 휴...
머리에 뭐가 들어가 있으면 책임을 나한테 다 밀어두는 건지. 내가 정말 손 한번 거하게 놓아볼까?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하루 혹은 이틀, 눈 감고 귀 닫고 그냥 자고 오긴 한다만... 16년이 되어도 20년이 되어도 예의 없는 집에서 감정을 다스리는 일은 참 힘겹다. 나는 한없이 요동치고 있고 나는 한없이 분노하고 있고 그러지 않고 싶은데 풀리질 않아서 화에게 잡아 먹혀서 먹고 먹고 먹는 중. 내가 못하는 거 아닌데 너한테 칼 한번 휘둘러볼까? 하다가 아 내가 니 위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굉장히 어른스럽게 오냐 그랬구나 걱정되었구나 끼니 걱정하느라 애쓴다고 개무시해 줄걸 우르르르 우르르르 마음속이 요동친다.
그럼에도 시어머니의 취향이 담긴 어수선한 집에서 어머님 방에 걸려있는 시할머니 시할아버지 시아버지 신랑졸업사진 아이들 돌사진을 보며 화를 참고 참아본다. 아들 4명은 엄마 생일에 관심도 없고 무슨 생각으로 사는지 그지 같구나를 현실판으로 보여주시니. 엄마 생일도 안 챙기는 아들들과 다르게 나는 여자로서라도 챙겨드려야지. 얼마나 사신다고 잘해야겠구나. 생각이 행동으로 옮겨지고 즐겁게 생일날을 넘기고 싶건만, 둘째 아들 때문에 해주고 내가 올해 또 왜 이랬을까 후회를 백만 스물두 번 하고 있는 이 상황이 짜증 난다. 그리고 여전히 그 순간 내편 안 들어준 어머님 넷째 아들이 원망스럽다. 성질내는 형은 무서워서 말 한마디 못하면서 와이프한테는 참으라는 레퍼토리도 지겹다. 그러고 보니 신랑졸업사진 아이들 돌 사진들 보고도 화를 참아내지 못하고 집에 와서도 이 분노를 아이들한테 별첨부록처럼 조금씩 얹어주는 나도 어린이 같아서 더 속상하다.
나도 안다. 가족이라고 말은 하지만 내가 무수리를 자처하는 상황이 열받는다는 것을. 내가 준비해 온 것들을 차려내기까지 손 놓고 구경하고 내가 무슨 플래너도 아니고 이게 뭐 하는 걸까 에서부터 시작하는 짜증이라는 것을. 그리고 지 마누라 고생할까 봐 내가 늦게 오는 것이 고까운 너의 말투에 편들어주지 않은 내 편에 대한 실망감. 나도 누구보다 잘 알지. 가깝지 않다고 난 너희들에게 상처받을 사람이 아닌데 한없이 아랫사람대하는 너희들의 비 인간성에 화가 나면서도. 나는 왜 이런 대접을 받고 이 짓을 하는가....
화내는 내년은 없다. 고 다짐한다.
화내는 명절은 내 인생에 지워버리겠다고. 다짐한다.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명절이 두렵도 싫다. 왜 젊은 처자들이 비혼이고 싶어 하는지 이해도 되고 왜 나는 그때 기혼을 선택했는지 어떤 마음이었는지 다시 생각해 본다.
누군가를 미워하며 보낸 하루하루가 아깝다. 별 시답지 않은 인간 때문에 화를 내며 보낸 하루가 너무 안타깝다. 편도선이 부어 올라왔다. 몸에서 과부하가 걸렸다. 아- 가기 싫다. 를 몸으로 표현한다. 추석은 코 앞으로 다가오고 다시 가게 될 그 집이 두렵다.
한가위 풍요로운 물질과 넉넉한 마음 없어도 되니 동굴에 들어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