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때가 있습니다. 그냥 딱 그 누구의 상판대기('얼굴'을 속되게 이르는 말, 누가 미울 땐 이런 말 정도는 써줘야겠죠?)를 보기가 싫고 목소리조차 듣기 싫은 그런 날. 남편이나 아내, 부모나 자식일 수도 있고 친구이거나 직장동료, 아니면 옆집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우리는 다양한 상황에서 다양한 사람들에 대해 미움을 느끼곤 하죠. 얼마나 그 미움이 강렬하냐면 때론 '도저히 그 사람이 이해되지 않는다'를 넘어 '그 사람의 숨 쉬는 소리조차 싫다', '그 사람도 좀 당해봐야 해!', '진짜 한 대 확~ 때리고 싶다'와 같은 격한 반응을 일으키게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미움이란 게 참 얄궂은 게 말이죠. 마땅히 미움받고 고통받았으면 하는 대상은 그 사람인데, 그 사람을 미워하게 된 나 역시도 만만찮게 너무 힘들더란 것입니다. 그러니까 누군가를 미워하는 내 감정이 나로 하여금 고통을 일으키는 거죠. 그만큼 누군가를 미워하는 데에는 정작 그가 아닌 내 힘이 많이 쓰이게 되고, 그렇게 하면 힘드니까 내 기분이나 생활이 어딘가 흩트려져 정작 내가 흔들리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옆자리 동료가 너무 미워서 매일 그 동료의 말 하나하나, 행동 하나하나, 일거수일투족에 신경이 곤두세워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정작 내 마음이 내내 불쾌하고 내 일에 대한 집중력은 떨어지는 거죠.
그러니 내가 그를 미워하는 마음이 든 건 자연스럽게 든 감정이니 어찌할 수 없다 치더라도, 그 미움을 계속 품고 있을 때의 결과는 어떤가요? 네, 맞습니다. 어쩐지 내가 힘들어지는 결과도 포함되니 이런, 젠장. 좀 억울해지기도 하죠. 어릴 적 그런 경험 있으시죠? 엄마에게 잔소리 듣고 잔뜩 마음이 상한 데다 그런 잔소리를 한 엄마가 미워져 문을 '쾅!' 닫고 방에 들어와서는 밥도 안 먹겠노라 시위를 할라치면, 저 방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약간은 가소롭다는 듯의 엄마 말씀. "아이고, 그렇게 밥 안 먹어봐라~ 너만 배 고프고 힘들지~ 누가 손해냐?!" 어른이 됐다고 해서 뭐 별반 다르잖죠. 그래서 "누구 오래 가슴에 품고 미워해봐야 나만 손해다"란 말이 나오는 겁니다.
작년인가요, 화제가 되었던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JTBC)를 보신 분들 있으실 거예요. 저도 참 애정하며 봤었는데요. 거기에 큰 딸로 나온 주인공이 그랬습니다. 늘 사람들에 대한 미움이 많아 욕을 달고 지내는 스타일이었는데, 사랑에 빠지게 된 후 세상이 달라 보인다며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아무한테도 욕이 안 나와요. 아, 욕을 딱 넣으니까 이렇게 가벼울 수가 없어요. 아... 증오가 이렇게 무거운 거구나. 맨날 땅에서 잡아 끄는 것 같더니, 날 수도 있을 거 같아요."
그녀처럼 사랑에 빠질 수 있다면야 좋겠지만 그럴 수 없다면(아쉽네요^^), 우리들 각자도 미움의 무게로부터 덜 고통받고 더 이상의 손해는 그만 보기 위한 작업을 스스로 해주어야 합니다.
우선 내 미움은 정당합니다. 유독 내 성격이 나빠서, 내가 이상해서 생기는 일이 아니에요.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감정입니다. 누구나 가질 수 있고, 그러다 사라질 수도 있는 감정. 그러니 누군가를 미워하는 자기 자신에 대해 '난 왜 이러나?'로 심각해지거나 자책하지 마세요. 의외로 많은 분들이 상대에 대한 미움으로 시작했다가 자신에 대한 미움으로 더 고통받곤 합니다.
다음으로, 미운 대상과는 일단 멀어져야 합니다. 원래 이해되지 않는 상황은 피하고 싶은 게 사람의 본능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요? 피하고 싶어도 매일 나가야 하는 직장의 옆 자리 동료를 내 마음대로 아예 안 볼 수 없고, 한 집에 사는 가족이라면 당장 안 보고 살 수도 없죠. 이렇게 싫은데도 그를 완전히 피할 수 없기에 더 미운 감정이 솟구치기도 합니다. 그러니 가능한, 최대한의 '틈새'를 만들 수 있는 거리 두기를 의식적으로 해야 합니다. 직장 옆자리 동료라면 자리를 바꿔보면서 그 사람과 덜 마주치게 일을 하거나 아예 부딪힘이 적은 업무로의 조정을 요청해 보기, 자녀라면 매일 저녁 해 온 학원 라이딩을 당분간은 배우자에게 맡긴다거나 휴가를 써서 짧은 여행을 가기 등등.
미운 대상과의 거리를 둘 때, 그만큼의 공간이 생기고 거기에 미움 대신 다른 생각과 감정(예. '그 사람도 요즘 상황이 좋지 않긴 했지'와 같은 이해와 연민, '어쩌겠어, 그와 난 여기 까지지~'와 같은 포기나 체념, '나도 좀 심하긴 했어...'와 같은 미안함 등)이 들어와, 미움도 줄어들 수 있습니다.
특히 거리 두기로 짧은 여행을 택한 분들에게는 인간에 대한 연민의 감정을 품게 되는 곳을 추천해드리고 싶습니다. 늘 바르고 관대하면 좋겠지만 누군가를 미워하면서 뾰족뾰족 날을 세워 뒷담화도, 악담도 하는 나 자신에 대해서 '괜찮다~그럴 수 있지'... 때론 끝내 이해가 안 가지만 똑같은 인간으로서 결국 자신의 행복을 바라고 나름대론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을 그 상대에 대해서 '그래, 뭔가 사정이 있겠지~ 그럴 수 있지'... 그런 마음도 쓰윽 품게 되는 곳. 소위 자기 자비(self-compassion)와 타인자비(others-compassion)를 느낄 수 있는 곳.
자칫 특정 종교 언어라 여겨질 수도 있을 거 같은데요. 이 기회에 '자비'라는 단어 자체가 가지고 있는 본래 뜻을 한번 찬찬히 들여다보면 어떨까요?
'고통스러운 순간에 과도한 자기/타인 비난에 빠져드는 대신에, 인간은 모두 약한 존재라는 점을 받아들이고 너그럽게 스스로나 타인을 이해하고 연민하며 돌보는 마음'
어떤가요? 이렇게 보면 결국 모든 종교의, 혹은 인간의 도리에 대한 보편적인 가르침이란 것에 수긍가실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나의 미움에 거리를 두고 나의 연민을 가까이 불러들일 곳을 향해 조금은 열린 마음, 아니 더 적극적인/의식적인 마음을 가지고. 오래도록 약하디 약한 인간군상과 함께 해온 역사와 전통 있는 성당이나 절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요? 가지고 있는 종교가 있다면 그에 따라가도 좋겠지만, 타 종교 시설이라도 보편적 인간애와 진리를 좇는 경외심이 한 데 모이는 공간으로서 경험해 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종교가 없다면 또한 더욱 자유로이.
자, 그럼 지금부터는 정작가가 어떤 곳을 안내해 줄지 그 길에 따라가 보실까요?
누군가를 오랫동안 미워하는 건 자신에게도 참 힘든 일인 것 같아요. 미움이란 감정에 자신의 에너지가 끊임없이 빨려 들어가니 정신적인 소모는 물론 때론 육체적인 피로감까지 밀려오기 마련이죠. 이럴 땐 변 박사의 조언처럼 미움의 대상에서 잠시 떨어져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겠죠. 미워하고 원망했던 누군가를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는 여정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죠. 힘든 마음을 다독이며 자신보다 타인을, 미움보다 자비를 먼저 생각하게 해주는 곳들로 떠나볼까요.
성철스님의 말씀을 되새기는 곳, 산청 겁외사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문구 같지 않나요? 네, 맞습니다. 이 시대 큰 스님으로 불리는 성철스님의 말씀인데요, 종교를 막론하고 성철스님이 남기신 가르침은 많은 사람들에게 큰 감흥을 주고 있죠. 경남 산청이 바로 스님의 고향이자 생가터가 있는 곳입니다. 푸른 산과 맑은 물로 둘러싸인 산청은 며칠만 지내도 마음이 깨끗하게 비워질 것 같은 싱그러운 에너지가 가득한 고장입니다.
성철스님의 생가터에 '겁외사'와 '성철스님 기념관'이 건립되어 있어 언제든 찾을 수 있습니다. '성철스님 기념관'에는 수많은 불상들로 둘러싸인 성철스님의 좌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경건하면서 엄숙한 분위기에 저절로 마음이 편안해지는 곳이지요. 이곳에선 성철스님이 참선 수행자들에게 전한 말씀들을 하나씩 곱씹어 보게 됩니다.
"... 좋고 영광스러운 것은 항상 남에게 미루고 남부끄럽고 욕되는 것은 내게 돌리는 것이 공부 가운데 가장 큰 공부이며 수행자의 행동이다. 천하에 가장 용맹스러운 사람은 옳고도 남에게 질 줄 아는 사람이다. 칭찬과 숭배는 나를 타락의 구렁으로 떨어뜨리는 것이고 천대와 모욕만큼 나를 굳세게 하는 것은 없다..."
‘겁외사’라는 이름부터 남다른 기운이 느껴지지 않나요. ‘시간 밖의 절’, 즉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절이라는 의미이지요. 사방이 터진 공간에 세워진 절은 안과 밖이 하나인 듯한 개방감과 잘 가꿔진 수목들로 전형적인 ‘사찰’과는 다른 곳이죠.
절 뒤편에는 생가터에 한옥 건물을 세워 스님의 유품과 족적을 살필 수 있는 전시관을 마련해 놓았습니다. 성철스님은 가야산 호랑이로 불릴 만큼 수행자들에게 엄격했다고 하는데요, 당신 자신은 누더기 옷 한 벌과 검정 고무신으로 평생을 사셨을 정도로 검소하게 지내셨다고 합니다. 전시관에는 성철 스님의 행적들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시절에 태어나 1993년 돌아가시기 전까지 스님의 일대기를 하나하나 짚어볼 수 있어요. 그러다 보면 마음속에 있던 미움이란 감정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지요.
성철스님은 자신을 욕되게 하거나 험담하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감사해야 한다고 늘 말씀하셨는데요, 그들로 인해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하게 되고 수행에 더욱 정진하게 됨을 강조하셨죠. 스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내가 품고 있는 미움의 감정을 좀 더 객관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답니다.
미움과 용서를 되새겨보는 곳, 제천 배론성지
충북 제천에 있는 배론성지는 우리나라 천주교 역사에서 중요한 장소 가운데 하나입니다. 국내 첫 신학교인 성 요셉 신학교가 있던 곳이자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 사제가 된 최양업 신부의 묘가 있는 성지이지요.
‘배론’이란 이름은 마을 계곡이 배의 밑바닥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것인데요, 1800년대부터 박해를 피해 모여든 교인들이 숨어 살았던 곳이지요. 당시에는 외지인의 눈을 피해 입구조차 찾기 어려울 만큼 험난 했겠지만 지금은 누구나 다녀갈 수 있도록 개방되어 있습니다. 교인이 아니어도 부담 없이 둘러볼 수 있답니다.
천주교 성지이다 보니 곳곳에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이나 작은 성당, 여러 가지 상징물들을 눈에 띕니다. 왠지 모르게 마음이 경건해지고 정갈해지는 기분이 들죠. 언덕 한쪽에 최양업 신부의 일생을 부조로 만든 조각 공원이 있는데요, 한 번쯤 둘러볼 만합니다. 힘겨운 상황에서도 자신들의 신념을 지키며 올곧게 살아가려 했던 옛사람들의 모습이 무언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줍니다.
배론성지는 종교를 떠나서 아름답게 가꾼 연못과 정원이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줍니다. 주변에 단풍나무가 많아서 특히 가을에 무척 아름다운 풍경을 펼쳐내죠. 이곳에서 쉬어가는 시간은 힐링 그 자체입니다. 푸른 자연과 단아한 한옥 건물이 어우러진 한적하고 조용한 분위기에 마음을 맡기고 있으면 마음 한 구석에서 미움과 용서란 단어가 절로 떠오르게 되죠.
누군가를 미워하는 감정 때문에 오히려 자신이 더 괴로울 때 배론성지를 찾아가 보세요. 마음을 따뜻하게 위로받고 힘든 감정들을 내려놓을 수 있는 여유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 정작가: 정은주 여행작가. 우연한 기회에 여행 기자가 되었다. 몇 년간 여행 신문과 여행잡지 『트래비』에서 기자라는 타이틀을 달고 다니다 돌연 사표를 내고 1년간 캐나다로 떠났다. 이후에도 언제든 기회만 되면 집 밖을 떠돌 궁리를 했다. 지금은 취재차 들른 제주도에 반해 수년째 눌러살고 있다. 가까운 미래에 캠핑카를 집 삼아 전국을 떠도는 게 꿈이다. 현재 다수의 매체에 글과 사진을 기고하고 있다. 저서로 『대한민국 커플여행 바이블』, 『제주가자』, 『차 없이 떠나는 제주여행 코스북』, 『교과서가 쉬워지는 제주여행』등이 있다. 모든 여행 사진을 전담하고 있는 남편과 함께 오늘도 '여행 중'이다. 여럿이 함께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