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와 인간의 시간]④미안, 어르신~

달라진 산책길의 풍경

by 빛들때

*이것은 빼박 노견의 대열에 합류한 13살 갈색 푸들 '단지'와 함께 하는 일상의 기록. 그리하여 지극히 사적이고 대단히 편협한 시리즈.


내 눈엔 아직도 단지는 그저 '새끼 단지'인 터라, 나는 그가 '노견'임을 잊을 때가 많다. 어떻게 안 그럴 수 있을까? 이 녀석은 여전히 눈도 반짝이고, 코도 귀엽고, 입도 야물기만 한데. 이전보다 많이 자고 이전보다 잘 못 듣고 이전보다 덜 볼 뿐, 여전히 단지는 단지인데.


그러다 보니 노견에 대한 배려나 예의 따위 없는 나의 무심한 행동에 '아차!', 미안해질 때가 있다. 주로 산책 길이 그렇다. 야트막한 길. 앞서 가던 단지의 씰룩이는 엉덩이가 어느새 내 앞에 바짝 와 있다. 야트막해도 오르막길은 오르막길. 힘에 부치니 걸음걸이가 반 템포는 느려지는 거다. 약간의 점프가 필요한 길. 별 생각없이 앞서 가다 보면 어느새 뒤에서 당겨오는 리드줄. 의아해 돌아 보면 뒤따라오던 단지가 주저하고 있다. 점프하기엔 무리가 되는 거다.


그래도 아직 너의 최애는 산책


그럴 때면 서둘러 '미안~미안~' 하며 속도를 늦추거나 다른 길로 돌아간다. 동거인과 함께라면 "우리도 이거 조만간 개모차 구입하게 되겠는데?"하면서 농담삼아 웃어도 본다.


반려견과 함께 하는 건 어떤 거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그럼 이렇게 답하곤 했다. "영원히 자라지 않는 아이와 함께 하는 것 같달까?" 사람처럼 커가며 알아서 하는 것들이 느는 것도 아니요, 늘 손이 가는 존재. 사람처럼 세월과 함께 물들기도 하고 세월따위 나 몰라라 사악해지는 것도 아니요, 늘 변함없이 순수한 존재라는 의미였다.


하지만 이제 단지는 13살. 암만 해도 노견이다. 느려진 발걸음, 주저하는 눈빛은 그의 세월을 온 몸으로 말해준다. 영원히 자라지 않는 아이일 것만 같았던 이 녀석도 이제 '몸뚱아리'만큼은 너무 자란 '어르신'이 된 거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기다리고 배려해드릴 수밖에. "어르신~ 몰라뵈어 죄송해요. 제가 더 잘 모실게요"


그리고 뭐, 그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내 '몸뚱아리' 역시 이전과 다르다. 그리하여 우리의 산책을, '더 천천히 음미하는 시간'으로 명명하기로 했다. 그렇게 좀 더 천천히 구석구석 만끽하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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