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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dianjina Mar 23. 2016

말테, 아니 '나'의 수기

지금 내가 보는 법을 배우는 이 때



나는 지금 무슨 일이든지 시작을 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내가 보는 법을 배우는 이때에. 내 나이 벌써 스물 여덟이지만, 아직까지 거의 아무것도 해놓은 일이 없다.

[말테의 수기], 라이너 마이어 릴케

회사생활 4년차, 릴케가 보는 법을 배우던  스물 여덟 즈음의 나는 ‘시선'을 잃어가고, '어휘'를 잊어간다. 고유한 자신을 꼭 쥐고 사는 것이 이다지도 난할지 상상이나 했을까. 생활인으로서 바투 열두달을 처내는 동안 시간은 잘도 흘러갔다. 시간은 제 몫만큼 성실히 흘러갔는데 나란 사람은 과연 제 몫을 다해 그 시간을 꾸려냈을까.

주저없이 답을 하고 싶은데 도무지 자신이 없다. 한켠에선 가진 게 없어도 고유한 내가 서 있던 지난 날만 자꾸 떠오른다. 과거를 미화하는 것은 일종의 감정적 도피라는 걸 잘 안다. 그런 자신에게 이젠 연민도, 동정도, 인정도 베풀지를 못하겠다. 타인을 향한 토로, 끊임없는 자기 해명도 이젠 진절이 난다.

그래서 '다시, 쓰기로 했다’. 그 무엇에도 무릎을 칠만한 소질이란 게 없는 내가, 한때나마 자존을 끌어낼 수 있었던 수단. 남의 글을 팔게 된 이후 감정적 난독증에 시달리고 있다만, 오로지 표현할 수 있어 충만한 밤을 다시 경험하고 싶다. 최후의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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