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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흘

반려 단지

by 인디 공책
KakaoTalk_20200407_203944952.jpg 나흘 - 반려 단지



변한 것은 없었다. 아침이면 어김없이 들리는 참새 소리에 절로 눈이 떠졌다. 갑갑한 2층 침대에 누워 천장을 향해 손을 뻗으면, 닿을 듯 닿지 않는 천장에 뻗쳐진 손마저 별을 생각하게 했다. 그 손은 참 예뻤지... 변한 것은 없었다. 여전했고 그래서 지금 막 일어난 '나' 대신 풀만이 있을 뿐이었다.


한숨 두 번 푹푹 내쉬고 외출 준비를 했다. 사실 풀은 셰어하우스 형태의 생활공동체에 살았다. 이성의 고삐를 놓을 수 있는 상황에서, 지켜보는 눈들이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었다. 하지만 집구석구석 공유 공간이 많다 보니 본인의 감성에 흠뻑 젖어 지내기에는 힘든 점도 있었다. 이럴 때 유일한 해결책은 집 밖을 나서는 것밖에 없었다.


외출 준비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벌써 풀은 강길을 따라 걷고 있었다. 산책로에는 반려동물과 짝을 이루어 다니는 사람들이 심심치 않게 보였다. 풀은 생각했다. 반려동물이 사람보다 더 나은가 정말 그러한가. 하지만 우문이었다. 났고 났지 않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풀의 손에도 반려식물이 들려있던 것이었다. 소중한 것을 손에서 놓고 싶지 않은 마음은, 인간이 가진 기본적인 마음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 풀이었다.


소중한 것. 별에 대한 풀의 기억을 담은 소중한 단지. 그곳에 심어진 씨앗에서 싹이 나고 꽃이 피면 모든 생각과 감정을 담아 바람이 달리는 저 땅에 심기 우리라. 풀의 간절한 바람에도 기억의 단지는 도무지 싹을 틔울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기억의 단지는 늘 같은 자리, 같은 모습으로 소중히 실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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