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엿새

좋은 사람

by 인디 공책
6일.jpg 엿새 - 좋은 사람



엿샛날, 기억의 단지를 본다.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풀에게는 잔잔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어디서 불어오는지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바람 때문에 작은 변화가 생겼다. 먼저는 항상 슬픔에 부어 있던 얼굴이 작아졌다. 그리고 사람들과 밥을 먹고 일상을 마주하기 시작했다.


바람이 불었다. 벚꽃잎이 떨어졌다. 난데없이 별이 생각났다. 그런데 그냥 좋았다. 불과 어제만 하더라도, 꽃놀이를 가자던 지킬 수 없던 약속 때문에 힘들었을 텐데 지금은 그냥 좋았다. 그냥 '나'도 좋은 사람이고 그냥 '그'도 좋은 사람이었다고... 그냥 현실이 녹록지 않았을 뿐이었다고 생각하자며 그냥 좋았다.


그냥 풀과 별도 사람이었다. 쉬지 않고 8시간을 통화해도 지루할 틈이 없는 사이라도 그냥 현실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헤어질 때마저 '좋은 사람'이라며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불확실함'으로 점철된 세계. 현실은 자본주의적 관점에서 해석되는 세계였다. 적어도 자연인적 관점에서 본 이곳은 '돈'이 없는 사람에게는 무자비한 곳이었다. 애초에 이 세계에서 '돈'이 없는 사람과 깊은 관계를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오답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앨 고어의 '불편한 진실'처럼 당장 마주 봐야 할 진실이지만 불편해서 보고 싶지 않은 것들이 있다. 이 사회에서 '돈'의 위상도 불편하기는 매한가지였다. 문화에 따라서 세속적이라고 쉬쉬하는 경우도 있지만 결국 생각의 밑바닥에는 '돈'이 깔려있었다. 그야 '돈'이 있어야 '빵'을 먹을 수 있으니까... 문제는 '돈'을 넘어서는 무엇인가가 '나'에게 있어야 했는데 그게 없었다는 것이다.


이제야 이별의 이야기를 머리로 받아들인다. 선과 악에 대한 이야기도, 누가 누굴 더 좋아한다는 이야기도 아니었다. 그냥 서로 좋은 사람들이 만났고 헤어졌다는 이야기였다. 그냥 잠시 '돈'의 존재를 잊고 그려갔던 두 사람의 아름다운 이야기였다.


엿샛날, '돈'은 없었지만 '좋은 사람'은 선택의 기로 앞에 서있었다. 안정감을 얻을 수 있을 만큼의 '돈'을 버는 길과 '돈'을 넘어서는 무엇인가를 소유하는 갈림길 앞에서 고민하는 그였지만 한 가지 사실은 분명했다. 그가 웃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날 처음으로 '좋은 사람'이 웃고 있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닷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