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흐레

다시

by 인디 공책
10일.jpg 아흐레 - 다시



다시 글을 쓴다. 가만히 상처를 들여다보고 조용히 글감을 모은다. 글을 쓰기가 참 싫었는데 지금은 좋다. 글이라는 방구석에 숨어서 점점 더 작아지는 자신을 발견하던 내가, 그런 자신의 모습을 변호하기만 급급하던 내가, 맛볼 수 없는 꿈 냄새에 질려서 글쓰기를 포기하던 내가 다시 글을 쓴다.


고통을 적고 상처를 꿰맨다. 처음엔 '풀'이라는 사람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다. 지금은 그냥 '풀'이 좋아졌다. '풀'로 살아가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이 고맙고 고마운 사람을 가슴에 품고서 살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글을 쓴다. 이번에는 그냥 쓰는 글이 아니다. 이유가 있는 글을 쓴다. 소망이 담긴 이야기를 쓴다. 상처가 가득한 '나'라는 세계를 드러내고, 엄비[嚴祕]의 고통 속에 있는 이들에게 비명을 지를 용기를 건네는 글을 쓴다.


고통을 적고 상처를 꿰맨다. 묵혀 두었던 시들을 정리하고 공모전을 준비한다. 몇몇 작품은 메일로 보내기도 했다. 제일 '나'다운 일을 시작한 것이다. '풀'에게 '좋은 사람'이라고 말해준 '별'에게 감사했다. '별'의 그 말이 없었더라면 '나'는 '풀'의 모든 것을 부정하며 슬픔의 폐인으로 살았을 것이다. '별'도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


고통을 적고 상처를 꿰맨다. 다시 글을 쓰고 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여드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