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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

과정을 걷는다

by 인디 공책
10일1.jpg 열흘 - 과정을 걷는다



터널을 지난다. 터벅터벅. 산책로를 잇는 터널 안에 느린 울림소리가 들린다. 터널 안길의 측면은, 드문드문 여러 개의 기둥들이 만드는 프레임들의 미술관이었다. 프레임 너머로 보이는 평범한 이름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느릿느릿 힘없는 걸음으로 걸었지만 기분만은 상쾌했다.


터널 안에 떨어진 빛의 부스러기가 눈부시게 따뜻했다. 터널은 언제나 옳았다. 미세한 걸음 소리도 크게 들을 수 있는 곳. 아무 감흥이 없던 한낮의 햇살이 그리워지는 곳. 터널은 익숙함에 무뎌진 소중한 것들을 일깨워 주는 신세계였다.


터널을 지났다. 터벅터벅. 빛이 보인다. 터널이 끝나는 지점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가는 길이 멀어도 즐겁게 걸을 수 있었다. 뒤를 돌아봤다. 터널이 말을 건네는 것 같았다. 모든 것에는 끝이 있고 그 끝이 있다는 사실을 알기에 과정을 아름답게 느끼는 거라고 말하듯 말이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조금 긴 터널을 지나는 과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이별 후 초순이 지나고 기억의 단지에 심은 씨앗은 그대로지만 괜찮다. 마음의 키가 조금은 자란 듯 이 하루를 보는 시선이 사뭇 다르다. 그저 이 하루가 참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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