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히 할 말이 없었다
이별 후 열이틀이다. 별다를 것 없는 일상이다. 아침이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참새 소리에 잠이 깬다. 커피와 미니 머핀을 먹는다. 양치를 하고 외출을 준비한다. 어! 룸메이트가 먼저 외출한다. 아싸! 다시 이불속으로 들어간다.
오랜만에 늦잠을 잔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일어난다. 음악을 듣는다. 자유롭다. 편하다. 노크 소리가 들린다. 같은 층에 살고 있는 분의 신호다. 함께 공동의 장을 보러 간다. 여유롭다. 즐겁다.
열두 시다. 본인의 생각과 감정을 강요하지 않는 분을 만난다. 점심을 대접받는다. 감사함으로 먹는다. 헤어진다. 집에 간다. 레깅스 트레이닝복과 반바지로 갈아입는다. 다시 마스크를 착용한다. 운동화를 신고 집을 나선다.
길이다. 다행이다. 사람들이 붐비지 않는다. 폰으로 타이머를 설정한다. 좋은 세상이다. 걷음을 빨리한다. 이내 바람길을 달린다. 숨이 가빠지기 시작한다. 땀이 흐른다. 일 분 일 초가 정말 천천히 간다.
타이머가 울린다. 다행이다. 천천히 걷는다. 바람이 불어온다. 땀이 식는다. 체온이 내려간다. 춥다. 조금 빠르게 걷는다. 발바닥이 욱신거린다. 근육이 비명을 지른다. 아직 갈 길이 멀다.
집에 도착한다. 체중계 앞에 선다. 몸무게를 잰다. 쓴웃음을 짓는다. 갈아입을 옷과 수건을 든다. 샤워실에 들어간다. 옷을 벗는다. 거울을 본다. 이별이 조각한 몸이 보인다. 귀를 기울인다. 고담시의 광대 아서 플렉의 울음이 들린다.
샤워기를 작동한다. 짠맛과 쓴맛을 씻는다. 이별이 만든 졸렬한 태작을 수건으로 닦는다. 옷을 입힌다. 샤워실을 나선다. 빨래통에 냄새나는 순간들을 던져 넣는다. 방에 들어간다. 2층 침대에 눕니다. 이어폰을 찾아 귀에 꽂는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눈을 감는다.
별다를 것 없는 일상. 이별 후 열이틀이 지나고 있다. 딱히 할 말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