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비
똑똑 똑똑 빗방울이 떨어진다.
기분 좋은 소리다. 겨울이면 모든 것을 하얗게 덮어주는 눈을 좋아했지만 봄이면 모든 것을 씻겨주는 비를 좋아했다. 생명이 있는 것이든지 없는 것이든지 가리지 않고, 각자의 '열심'이 묻은 일상의 때를 씻겨 주는 비였다. 그것이 모두의 부끄러운 색을 되찾아 주었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좋았다.
뚝뚝 뚝뚝 제법 굵은 비의 속삭임이 경고처럼 들린다.
옥상에 있는 녀석들이 걱정된다. 안 그래도 척박한 단지의 흙 속에서 힘겹게 싹을 틔었는데 잠깐의 곤란함 앞에서 세상을 향한 호기심이 꺾여서는 안 될 일이다.
총총 총총 새벽잠을 깨우며 옥상에 오른다.
생명을 부여잡자. 생명을 부여잡고 있다는 것은 예고 없이 찾아오는 어려움을 언젠가 끝이 있는 시련으로 받아들이겠다는 것. 시련 뒤에는 언제나 꽃이 피고 꽃이 지면 다시 시련이 오겠지만 그때면 또 열매가 생긴다. 그러면 다시 씨앗을 남기고 소망을 약속한다. 그러니 제발 살아있자.
첨벙첨벙 옥상에서는 낯선 물 장단이 들린다.
이야. 감탄을 내뱉는다. 살아있었구나. 거센 빗방물에도 잘 견뎌내고 있었구나. '나'라면 벌써 꺾였을 텐데 '너'를 보며 살아갈 용기를 얻는다. 다시금 신기함을 느낀다. '너' 때문에 힘이 빠지고 '너' 때문에 힘을 얻고 있는 이 아이러니한 상황 속에서도...
무럭무럭 '별'에 대한 기억은 별 탈 없이 잘만 자랐다.
그래도 내일은 거센 비가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원래 비라면 다 좋아했는데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