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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이레

짜증을 심는 날

by 인디 공책
열이레 - 짜증을 심는 날



꿈을 꾼다. 오늘도 역시 참새 소리에 잠을 깬다. '별'과 대화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마저 앗아 가는, 참새들이 참 원망스러운 아침이다. 아우 이 참새들아...


후흐으흐후. 깊은숨을 내쉰다. 째잭째잭 쬐엑쬐액짹. 오우 이 와중에 참새 소리가, 참 아름답게도 밤사이 모기 소리에 지친 고막을 부드럽게 두드린다. 참새야, 고맙다. 진심으로 고맙다.


어째 시간이 갈수록 짜증이 밀려온다. 삶의 이유 중에 하나였던 관계를 잃고서, 허무함과 공허함을 느꼈고 슬픔 속에서 존재를 자각하다가 되새겨지는 소소한 기억의 속에 혼자 웃고는 가슴을 데웠었는데 이제는 짜증이 몰려온다. 그냥 모든 것들이 다 짜증 난다.


아무렇지 않게 냉장고 문을 연다. 아무렇지 않게 우유를 꺼낸다. 아무렇지 않게 마지막 콘플레이크에 우유를 붓는다. 아무렇지 않게 먹는다. 아무렇지 않게 설거지를 한다. 아무렇지 않게 주전자에 물을 담는다. 아무렇지 않게 옥상에 올라간다. 아무렇지 않게 단지를 본다. 아무렇지 않게 물을 준다. 어후 짜증나, 진심 하나도 아무렇지 않지 않다.


날은 또 뭐가 이렇게 맑은 거야. 가슴속 깊은 곳에서 짜증이 올라온다. 짜증나 짜증나 짜증나 짜증나 짜증나 짜증나... 아우 아주 그냥 이불 킥을 이백오십육만이천이십팔 번을 날리고 싶은 날이다.


어쩌면, 사실은 좋은 날이었다. 그날의 일로, '나'의 재능 기부를 통해서 '타임뱅크' 사람들은 감동을 받았단다. 사진을 통해서 봉사자를 2명이나 이끌어냈단다. 이렇듯 여러 사람의 마음을 전달받은 날이었다.


좋았다. '나'님도 이 일을 통해서 경쟁 사회가 던지는 무가치함에 저항하며 가치를 찾은 것 같아 작은 승리의 기쁨에 잠시 취했었다. 무가치한 사람이었던 '나'에게 정말 사이다 같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집에 도착하자 모든 것은 말짱 도루묵이었다.


집에 왔다. 어째서인지 다시 기억의 단지를 마주했다. 짜증이 나서 눈물이 났다. 녀석에게 말을 건넸다.


같은 날, 플라스틱 통에 심은 놈들은 잘만 자라던데...

야 인마, 넌 왜 이렇게 안 자라냐.

어우 좀 빨리 좀 갖다가 심자.

이제 좀 지긋지긋하다.


젠장, 열이레가 지났고 다른 것은 없었고 그냥 짜증만 심을 뿐이었다.


오우야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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