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프레소 인생
어쩌다 카페에 가게 되었다. 비가 온다던데 혹시나 비가 오지 않을까봐 우산을 챙기지 않았다. 대신 디에스엘알이 든 가방과 로드자전거. 그리고 자전거 헬멧을 챙겼다.
흐린 날이어서 다행이었다. 습하지도 덥지도 않아서 로드를 타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다다 카페로 가는 언덕길이 가팔라서 가벼운 마음으로 등에 멘 가방이 땀받이 역할을 할 뿐이었다.
셰어 하우스 회원의 소개로 온 카페는, 한국을 대표하는 사람이 여러 번 다녀갔다고 해서 유명세를 치른 곳이었다. 마침 가게에는 그 사람의 성을 딴 블렌드 커피도 있었다. 하지만 에스프레소만 고집하는 나에게는 관심 밖의 맛이었다.
세상에서 카페에 가는 사람은, 네 부류의 사람이 있다. 맛을 마시는 사람. 멋을 즐기는 사람. 공간을 빌리는 사람. 맛과 멋에 공간도 사는 사람. 그중에 나는 세 번째 부류에 속했다. 맛과 멋을 느낄 여유가 없는, 공간에서 존재의 이유를 찾고자 허덕거리는 사람 말이다.
애초에 커피를 맛을 보려면 입소문이 난 커피숍을 가야 하고 멋을 느끼려면 인스타에 올라온 카페로 가야 되고 커피의 맛과 카페의 멋에 공간까지 더하려면 좋은 사람들을 태우고 먼 길을 달릴 수 있는 차와 이들과 함께 여유롭게 대화할 수 시간. 그리고 가볍게 내밀 수 있는 카드가 있어야 했다. 뭐 나는 아무것도 해당되지 않으니 공간을 빌리는 사람으로 분류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시되었다. 아주 자연스럽게 말이다.
아니지 아니야. 도대체가 희망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만 그래도 희망을 가져야지. 생각해보면 다들 처음에는 별거 없다. 커피도 마찬가지다. 프랑스의 석탄 가게에서 조금씩 팔리던 보잘것없는 것이 500조 규모의 시장을 형성하게 됐으니 말이다.
커피 하나에 모순된 감정을 경험한다. 어디를 가나 에스프레소밖에 주문할 수 없는 처지와 그 에스프레소의 씁쓸한 맛에 새로운 용기를 얻고 있는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혼란스럽다. 이것은 카페에 가면 으레 느끼는 연례행사의 감각이었다. 이럴 때면 나는 언제나 진한 커피 추출액에 시럽을 넣었고 달달해진 흙빛 인생을 마셨다. 지금도 내일도 그리고 영원히...
이날 에스프레소는 맛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