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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디 공책 Feb 12. 2018

어쭈, 대신할 수 없는 '나'란 녀석

잘난 척해도 괜찮을까......

대체할 수 없는 '나'란 녀석



  J.R.R. 톨킨은 반지의 제왕이라는 자신의 책에 샘와이즈 갬지라는 인물을 등장시킨다. 샘은 호빗이다. 호빗은 평화를 사랑하며 그것에 취해 안주하는 삶을 살아가는 작은 키를 가진 종족이다. 샘은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종족 중에서도 내세울 만한 것이 없는 청년으로 나온다. 샘 스스로도 자신을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톨킨은 샘을 그리고 등장하는 모든 인물을 특별한 존재로 그렸다. 샘이 없었다면 반지의 제왕은 비극으로 끝났을 것이다. 


  톨킨의 작품 속의 인물들은 저마다의 다름을 갖고 있다. 이것은 인간에 대한 톨킨의 기본적인 견해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인간은 공통된 인식을 갖고 있기도 하지만 각기 다른 존재는 견해 말이다. 달랐기 때문에 작품 속 등장인물들은 이미 모두 특별했다. 그것은 이윤추구라는 틀 속에 가둬둘 만큼 작지 않았으며 혈액형별 성격이나 MBTI로 개량화하거나 나사처럼 부품화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사람은 대체할 수 없는 다름을 소유하고 있기에 특별했다. 당신도 그랬고 나도 그러했다.






공장 노동자와 고아 소녀



  작은 시간의 구애받지 않는다. 1936년에 개봉한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도 그랬다. 감독이자 주연 배우인 채플린은 공장 노동자의 삶을 통해 사회의 단면을 표현하고자 했다. 단언컨대 공장의 거대한 톱니바퀴에 그가 끼었을 때의 장면은 압권이었다. 기계가 될 수 없는 인간이 억지로 기계의 일부가 되는 순간이었으리라.


  채플린의 영화가 개봉한지도 70여 년이 흘렀다. 하지만 채플린의 영화는 지금도 사랑받고 있다. 그것은 70여 년 전의 사회와 현재의 사회에서 간극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형태만 변했을 뿐이지 영화 속 거대한 톱니바퀴는 여전히 건재했다.


  기업은 이윤 추구의 극대화를 위해 조직을 만들었다. 조직은 한번 가동하면 멈출 줄 모르는 또 다른 모양의 컨베이어 벨트였다. 그는 라인을 앞에 사람들을 세웠고 그들에게 일을 가르치며 바로 실전에 투입시켰다. 라인은 멈추지 않았다. 라인의 속도에 따라가지 못한 인간만이 다른 인간으로 대체될 뿐이었다.






섹시한 사람은 자신의 결을 아는 사람이다



  체품으로써 존재하는 자신을 모습을 발견하는 개인은 큰 괴로움이다. 식자우환(識字憂患)이라 했던가. 차라리 '나'에 대한 인식을 하지 않았더라면 좋을 뻔했다. 다름에서 오는 특별함을 소중히 여기지 않았더라면 배가 부르고 등이 따뜻하고 귀가 즐겁고 눈이 화려한 것만을 쫓았을 텐데...... 오늘도 대체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나'를 찾아가는 여정은 벅차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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