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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디 공책 Feb 15. 2018

왜 사니?

혼술은 슬픔이란 질문을 나에게 던진다



때때로

  로 있는 시간은 슬픔이란 질문을 던진다. 타인으로부터 그토록 듣기 싫어했던 말. 정답 없는 물음이 뭐가 좋다고...... 하늘을 향해 쏴 올린 화살은 아래로 활시위를 당긴 이의 머리 위로 떨어지고 그는 피할 줄을 몰랐다. 삶에의 의지가 미지라는 죽음으로 표현되는 순간이었다.






생을 사랑했기에 생의 아름다움을 부정한 기독교가 싫었던 목사의 아들



   광인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 만약 그가 지금도 살아있다면 묻고 싶은 것들이 많다. 그 역시 스스로가 낸 수수께끼의 도전자였기 때문이다. 그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했고 답을 내렸고 미쳐갔으며 결국 육체의 자유를 만끽했다.


  그의 대답은 아모르 파티(Amor Fati)였다. 이것은 죽지 못해 산다는 무의미한 대답(스스로의 존재 자체를 부정한 대답)이 아니다. ‘사랑’을 뜻하는 아모르(Amor)와 ‘운명’을 뜻하는 파티(Fati)가 만나 운명에 대한 사랑을 달콤한 고어(古語-라틴어)로 속삭일 뿐이다.


  니체가 인식하는 세계는 간단했다. 그것은 의지다. 힘에의 의지. 인생이란 바퀴는 아이에게나 어른에게나 할 것 없이 힘(권력)을 얻기 위한 의지로 굴러간다. 이것은 필연이다. 해 아래에 새것이 없듯이 예전에 있었던 것은 지금도 있고 지금은 사라져가는 것이 나중에는 있을 것이다. 힘에의 의지가 전부인 영원히 회기되는 세계 속에서 그 삶을 깨달았을 때 극복인이 될 수 있다고 생을 사랑할 수 있다고 니체는 말한다.






A  : 왜 사니?  B : 아.아.아 아모르 파티 빠밧빠빠빳빠바바~



  인을 공감한다. 교실 안 책상에 걸터앉은 것도, 낯선 이(손님)에게 친절해야 하는 것도, 어두운 방에 들어오는 형광등 빛을 보는 것도, 유리창 틀 넘어 장난감을 보는 아이의 손을 그저 끌기만 하는 것도, 거리의 붕어빵을 보며 주머니 속 천 원짜리를 만지작 거리는 것도 다 아름다운데 생이 참 아름다운데 생을 즐겨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된다. 미쳐가는 니체에게서 나를 본다. 왜 사니? 오늘도 나는 나에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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