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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디 공책 Jul 24. 2018

노회찬을 아는가

나는 그를 모른다

  날따라 전자제품을 사용하고 싶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서 습관처럼 켜는 TV도 보지 않았고 스마트폰도 만지지 않았다. 그저 내게 주어진 일에만 집중했다. 저녁이 됐다. 외로움의 방편으로 시작한 SNS를 확인했다. SNS에 올라오는 게시물의 몇 안 되는 글자 앞에서 의식이 흐려졌다. 노회찬 사망.


  사실 나는 노회찬을 모른다. 그와 피가 이어진 가족도 아니고 함께 자란 친구나 함께 일한 동료도 아니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직접적으로 안다고 할 수 없는 입장이다. 다만 그에 대해서는 알고 있다. 


  TV나 뉴스, 그가 발의한 법안들. 그를 만나 본 사람들에게 들고 알게 된 노회찬은 정치인 노회찬이었다. '천민자본주의'라는 거대한 힘 앞에서 싸우며, 누구나 악기 하나쯤 다룰 수 있는 삶의 여유가 있는 나라를 함께 만들고 싶다고 말하던 정치인이었다. 그런 그가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투신이라는 모양으로......


  칸트는 말했다. "내 마음을 늘 새롭고 더한층 감탄과 경외심으로 가득 채우는 두 가지가 있다. 그것은 내 위에 있는 별이 빛나는 하늘과 내 속에 있는 도덕률이다." 하지만 돈이라는 권력 앞에서 자기 속에 있는 도덕률을 버린 이들이 정치인이라는 멋들어진 옷을 입고 장난질하며 살고 있는데 노회찬은 스스로의 목숨을 버리고 유서라는 양심을 남겼다.


2016년 3월 두 차례에 걸쳐 경공모로부터 4000만 원을 받았다. 어떤 청탁도 없었고 대가를 약속한 바도 없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다수 회원들의 자발적 모금이었기에 마땅히 정상적인 후원 절차를 밟아야 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누굴 원망하랴. 참으로 어리석은 선택이었으며 부끄러운 판단이었다. 책임을 져야 한다. 무엇보다 어렵게 여기까지 온 당의 앞길에 큰 누를 끼쳤다. 이정미 대표와 사랑하는 당원들 앞에 얼굴을 들 수 없다. 정의당과 나를 아껴주신 많은 분들께도 죄송할 따름이다. 잘못이 크고 책임이 무겁다. 법정형으로도 당의 징계로도 부족하다. 사랑하는 당원들에게 마지막으로 당부한다. 나는 여기서 멈추지만 당은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국민 여러분 죄송합니다! 모든 허물은 제 탓이니 저를 벌하여 주시고 정의당은 계속 아껴주시길 당부드립니다. - 2018년 7월 23일 노회찬 올림.


  하. 그의 유서 앞에 허망한 마음이 들었다. 분명 정상적인 후원 절차를 밟지 않고 4000만 원을 받은 것은 그의 잘못이었다. 하나 과오를 범했다면 재판을 통해 죄의 무게에 걸맞은 형량을 받으면 되는 일이었다. 나는 당신을 응원했다. 다시 시작하면 되는 일이었다. 죽으면 다인가. 죽으면 남은 사람들이 편할 것 같은가. 고인을 향한 애도의 마음이 어느새 원망의 마음으로 바뀌어 갔다.


  그렇게 또 양심에 따라 살아가려는 정직한 자들의 꿈은 스러지고 그의 판단을 흔들었던 정치도 결국 돈이라는 생각에 슬픈 가슴을 주(酒)님의 힘으로 쓸어내린다.



무거운 짐만 지우고 옆에서 도와주지 못한 자의 후회처럼 허망한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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