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디 공책 Oct 29. 2018

그랜드마미(Grandmommy)

매번 낯설지만 반갑고 그리운 기억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한 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할머니가 아프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무덤덤했습니다.


그런가 보다 했습니다.


핑계 하나


관계의 단절이 주는 고통을 이겨낼 힘이 없었습니다.

새로운 감정에 기대어 볼까 하여 3년간 낯선 환경을 찾아서 헤맸습니다.

그러던 중이었습니다.


핑계 둘


구인사 할머니. 

츤데레 할머니. 

한 고집 할머니.


할머니에 대한 기억의 파편입니다.

그녀와 함께 보낸 시간이 많지 않았고 기억의 애틋한 감정은 곧 끊어질 거미줄처럼 이어져있었습니다.

그러던 중이었습니다.





어머니의 울음을 봤습니다.


처음이었습니다.


할머니를 찾아갔습니다.


아픈지 어떤지 몰랐습니다.


반갑게 만나고 헤어졌습니다.


집과 집을 오가는 눈물 어머니의 모습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야야 자가 누구나"


할머니가 속삭이듯 말했습니다.


장난인 줄 알았습니다.


"자가 손녀 아이라"


할머니가 분위기를 살피며 말했습니다.


아 이게 알츠하이머. 그건가 보다 했습니다.





할머니와 같이 지내는 시간이 부쩍 늘었습니다.


밤잠을 놓치고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다가 잠깐 고개를 들면, 하얀 잠옷 차림에 기척 없이 다가와 손자를 지켜보는 할머니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놀라서 자기 손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괴성을 참아낸 첫 번째 경험을 했습니다.


할머니는 자신의 상태를 빠르게 받아들였습니다.


함께 걷는 길에도, 딸을 배웅하면서도 글자가 보이면 열심히 소리 내서 읽었습니다.


화투도 전보다 더 열심히 쳤습니다.


많은 딸과 손녀, 손자를 화투의 세계로 입문시켰습니다.


"쨍하고 해 뜰 날 돌아온단다"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이 오거나 기분이 좋은 일이 있거나 멋쩍은 일이 있을 때면 할머니의 입에서 나오는 노래입니다.


"쨍"


하면 할머니는 반사적으로 그 노래를 불렀습니다.


물론 다음 구절로 넘어갈 수 없는 노래였습니다.





할머니는 관심을 먹으며 자랐습니다.


"아야 아야 아야야 야"


관심을 끌고자 했던 할머니의 노림수가 아니었습니다.


할머니의 허리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할머니는 전문의에게 시술을 받고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이틀간 어머니와 삼촌, 손녀와 손자가 돌아가며 할머니를 간호했습니다.


할머니는 화투를 치고 싶었고 자력으로 화장실에 가고 싶었습니다.


할머니를 아끼는 간호인들은 그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할머니의 한 고집을 누가 막을 수 있을까요.


화투를 거래로 밥과 약을 먹었지만 남사스럽게 사람들이 있는 앞에서 뒷일을 처리하는 일만은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기저귀를 차도, 호스를 연결해도, 감정을 호소해도 한 고집 할머니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습니다.


병원 분들의 도움으로 할머니는 세상 편한 자세로 승자의 표정을 지었고 패배한 손자는 말없이 할머니의 변기 버튼을 눌렀습니다.


할머니가 퇴원했습니다.


오전에만 3층에서 1층까지 이어지는 X-ray 검사를 두 번, MRI 검사를 한 번 했습니다.


아프다는 소리 한 번 없으신 분이 갑자기 아프다고 꿈나라로 빨리 가고 싶다고 한 것은 참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아무 이상이 없었습니다.


다시 할머니와 협상의 테이블에 앉았습니다.


아프다고 일어나지 않으려는 할머니와 일으켜서 퇴원시켜야 하는 손자의 피 말리는 대결이 시작됐습니다.


손자는 처음으로 화투를 만든 사람을 떠올리며 마음속으로나마 감사를 표했습니다.


할머니 안에 잠들어있던 화투를 향한 열정이 할머니의 몸을 뜨겁게 데웠습니다.





차 한 대가 아파트 앞에서 멈췄습니다.


차 문이 열리자 할머니가 내렸습니다.


할머니는 그대로 바닥을 보며 구토를 했습니다.


할머니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단지 육체의 고통만 있을까.


문득 손자는, 낯선 여성이 자신을 손을 잡고서 걷고 있다고 상상했습니다.


물론 손자가 환장하는 이성의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낯선 사람이 자신을 그의 손녀라는 말했습니다. 


순간 정신이 들면서 쭈글쭈글한 자신의 손을 발견하고, 갓난아기였던 손녀의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니가 손녀가 많이 컸다 밥 잘 먹고 건강하래이 밥이 보약이래"


손자가 아무리 생각해도 할머니의 사정을 알 수 없었습니다.


어느새 손자는 할머니를 기록하고, 할머니를 기억하고, 할머니를 찾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손자만의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할머니의 손주, 자식들도 모두 각기 다른 이야기를 풀어갔습니다.


손자가 할머니를 보고 씩 하고 웃자 할머니도 손자를 보고 씩 하고 웃었습니다.


손자는 더 이상 외롭지 않았습니다.


그는 더 이상 헤매지 않았습니다.


이제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는 끝났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듣고 싶습니다.


할머니들은 건강합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도로시가 떠났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