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끝나기 전 남은 휴가가 모두 소진되고 저의 퇴사는 마무리되었습니다. 처음 직장인이 되었을 때는 오랜 학창 시절의 종착지가 이 책상이란 게 왠지 허무하기도 했습니다. 다들 이 작은 책상 하나를 가지기 위해서 경쟁하고 달려오는 것이 서글프기도 했고요. 좀 시간이 지나서는 재미도 보람도 없이 책상을 오가는 저를 보며 이마저도 다른 간절한 사람의 자리를 빼앗은 것 같아 죄책감도 들었습니다. 하루하루를 버티며 바싹 건조해진 후엔 더 쉬운 일을 하면서 많은 돈을 버는 책상은 없나도 생각했습니다. 화장실에 갈 때면 회사의 똥은 유급이라는 자본주의 교리를 실천할 수 있게 해주는 낯 안 가리는 제 엉덩이에 고마워하면서요. 시간이 저당 잡힌 채 요일의 루프에 갇혀 월화수목금퇼이 반복되는 완연한 직장인이었죠.
한 직장 동료는 저의 퇴사에 대해 거듭 캐물었습니다. 제가 사실은 비밀리에 경쟁사로 이직하려 한다는 의심을 버리지 못했죠. 저는 그분께 이해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훌륭한 개발자의 빈틈없는 이성적 사고로 판단했을 때 저는 합리적이지 못한 답을 뱉고 있을 테니까요.
- 저를 그냥 시스템의 오류(bug)라고 생각해 주세요.
- 그리고 노운 이슈(known issue)로 처리해 주세요. 하하
큰 문제가 없다고 판단되고 우선순위가 낮은 버그의 경우, 인지하고 있지만 해결(fix)을 유보하는 ‘노운 이슈’로 명명합니다. 저는 그렇게 보류되었습니다. 아무 데도 내 책상이 없는 사람, 한동안 요일보다 날짜로 시간을 셈할 사람, 우두커니 서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할 시간이 넘치는 사람. 나를 태우고 질주하는 일상을 멈춰 세운 사람은 비현실적인 기분이 들면서도 쾌감이 있었습니다.
알지만 내버려 두기로 한 버그, 저는 그 정도면 충분했습니다. 되려 그게 마음에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