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카의 사랑법

by 인디

집 근처 한강 공원에는 느긋한 나무가 있었습니다. 봄이 되어 다른 나무들이 새 잎이며 꽃을 피우느라 분주할 때도 아랑곳하지 않고 깊은 잠을 자곤 했습니다. 다른 나무들이 꽃을 흩날리며 호들갑을 떨고 있을 때쯤 일어나 기지개를 켜고 잎을 피워냈습니다. 저는 그 나무를 볼 때마다 조카들을 떠올렸습니다. 저의 쌍둥이 조카들은 세상에는 서둘러 나왔지만 막상 나와보니 급할 것이 없다는 걸 알았습니다. 키도 몸무게도 말도 다른 아이들에 비해 느렸죠. 하지만 저는 조카들의 속도를 기다려주고 싶었습니다. 조카들은 자신의 시계에 맞춰 한 번도 늦은 적이 없었으니까요.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얼마동안 할머니, 고모랑은 만나지 못할 것이라는 것, 하지만 또 생각보다는 금방 선물을 사가지고 돌아올 거라고 몇 번이고 이야기했습니다. 끝내 조카들은 할머니와 고모의 긴 여행의 이유에 대해서는 납득하지 못했습니다. 그건 어쩌면 조카들뿐 만은 아니었을지 모릅니다. 여느 때처럼 공원에 앉아 있던 어느 낮 영상 통화가 걸려왔습니다. 전화기 속의 조카는 모로 앉아 여전히 뾰로통한 상태였습니다.


- 왜? 조카의 옆모습이 물었습니다.

- 네가 전화했잖아. 저도 부러 무심하게 대답했지요.

- 엄마가 한 거야. 여전히 옆모습이 대꾸했습니다.


자신들이 그린 그림, 방금 접은 따끈한 종이접기 등 대견하지만 하찮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립고 다정한 마음이 넘쳐 사랑해, 고백으로 대화를 마무리했지요. 전화를 끊고 조카는 사랑한다면서 이렇게 안 오는 건 너무 이상하다고 몇 번이나 중얼거렸다고 했습니다. 조카에게 사랑은 곁에 있어주는 것이었을 겁니다. 그렇지만 저에게 사랑은 상대를 자유롭게 해주는 것이었죠. 어쩌면 우리는 각자가 아는 사랑만을 강요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것, 기쁘게 돌아가야 할 이유라고 믿는 것은 모두 같은 사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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