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요커 100년의 이야기 (2025)

by 상하의 시선

100년 된 식당보다 100년 된 잡지사 찾기가 더 어렵다.

사람들은 모두 매일 무언가를 먹지만, 누구나 매일 읽지는 않으니까.


책, 잡지, 신문 만드는 사람들에 대한 동경과 존경이 있다.

보그 9월호를 만드는 다큐 '셉템버 이슈'도 재미있게 봤지만 '뉴요커 100년의 이야기'는 며칠 사이 두 번 봤다.

필진, 편집자, 표지 담당자, 카피 에디터, 팩트 체커들, 그리고 편집장 데이비드 렘닉..

뉴요커 사람들은 자부심을 가지고 오래 일한다.

명성 있는 직장이지만 업무 강도로 보면 결코 쉽지 않은 곳일 텐데

오피스 매니저는 46년 일했고, 표지 담당자는 30년이 넘었고, 편집장은 27년째고, 필진과 다른 직원들도 장기근속 시니어가 많다.


부러웠다. 뉴요커 사람들도, 뉴요커가 지속될 수 있는 환경도.

그들은 완성보다 완벽을 추구하고, 팩트 체킹에 목숨 건다.

1994년 퓰리처상*을 받은 기자 출신 편집장 데이비드 렘닉은 말한다.


"사람들은 황당한 트윗보다 더 많은 걸 알고 싶어 해요.

무슨 일인지 궁금해하고, 공정성과 팩트체를 원하고 예의를 갖추길 바라죠.

또한 권위에 굴복하지 않는 언론 매체를 원해요."


"이 잡지는 그저 일주일에 한 번 나오는 게 아니에요. 영혼이 담겨있어요. 목적의식이 있고 도덕성과 품위가 있죠. 스스로 의심해야 하고, 경험을 통해 배워야 하며, 생각을 바꿀 수 있어야 해요. 이건 사회적 운동이에요. 더 중요한 것을 위한 대의죠. 고상한 척하는 것 같겠지만 상관없어요."


인구가 3억은 넘어야 유료 구독자 수 백만이 가능하고, 이런 운동이 가능할 걸까.

우리에겐 품격 있는 저널리즘이란 요원한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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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32세의 기자 출신 헤럴드 로스가 아내와 함께

'도시 엘리트를 위한 품격 있는 유머+문학지' 뉴요커를 시작했다.

뉴요커의 상징적 이미지 유스터스 틸리와 글씨체도 만들어졌다.


그는 그만두겠다는 필진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건 사회적 운동입니다. 운동을 그만둘 수는 없어요."

1946년 뉴요커에는 존 허시의 <히로시마>가 실렸고,

아인슈타인이 과학자들에게 주겠다며 1,000부를 주문했다.

뉴 저널리즘(New Journalism)의 탄생이었다.



1952부터 윌리엄 숀이 35년간 2대 편집장을 맡았는데

1962 레이첼 카슨 <침묵의 봄> 연재, 1965년에는 트루먼 카포티의 <인 콜드 블러드> 등

전설적인 글들이 실리며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고 뉴요커는 본격 시사 저널리즘으로 성장했다.

편집장이 필진의 아이디어를 독려하고 지원하며 수년간 기다려준 결과물이다.


트루먼 카포티가 소설의 형식을 빌려 썼다는 논픽션 <인 콜드 블러드>는 사실이 아니라는 논란을 불러왔는데 카포티는 결국 마지막 장면은 만들어 냈다고 고백했고, 뉴요커는 팩트 체크에 더욱 심혈을 기울이게 됐다고.


1985년 뉴하우스 가문의 콘데나스트 그룹이 (보그, GQ, 베니티페어, 와이어드 등을 거느린 미디어 그룹) 뉴요커를 인수했다. 이후 로버트 고틀립(5년)과 티나 브라운(6년)이라는 편집장을 거쳐 1998년부터 5대 편집장 데이비드 렘닉이 27년째 근무 중이다.


이 다큐를 보고 히로시마*를 읽었고, 책 '인 콜드 블러드'를 주문했다.

(오래전부터 책장에 있는 '침묵의 봄'도 다 못 읽었지만)


'매거진'과 '100년' 조합이라니 이런 다큐를 보면 가슴이 뛰고.. 잠시나마 나의 꿈도 커진다.


* 데이비드 렘닉 퓰리처상:

1994년 『레닌의 무덤: 소비에트 제국의 마지막 날들』(Lenin's Tomb: The Last Days of the Soviet Empire)로 퓰리처상 일반 논픽션 부문을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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