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란드를 인수하겠다.”라는 트럼프의 발언에 물음표가 여러 개 떠올랐다. 그린란드를 사고팔 수 있나? 누가 주인이길래? 얼마에? 그린란드에 사는 사람들은 미국의 태도에 어떤 생각이 들까, 아니 그린란드에 사람이 살긴 하던가. 그린란드에 대해 아는 게 너무 없었다. 질문을 따라 유튜브에서 국제정치 전문가의 의견도 듣고, 기사와 자료들을 검색하다가 그린란드와 북극권의 생활에 관한 몇 가지 콘텐츠를 접하게 됐다.
절판되어 중고로 구매한 『그린란드에 살고 있습니다』(브릭스, 2019)는 그린란드의 유일한 한국인 김인숙 씨가 쓴 책이다. 그린란드의 수도 누크에서 직장에 다니고, 휴가를 즐기고, 콘서트에 가고, 친구를 만나는 일상을 통해 그린란드에도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 살고 있음을 알려준다. 그들은 평소에 고래, 순록, 바다오리를 먹고, 덴마크의 영향권 아래에서 이누이트의 문화를 간직하려 노력한다. 개 썰매를 타고 설원을 달릴 때, 기대했던 신선한 공기 대신 개들의 방귀와 똥 냄새를 맡아야 했다는 대목에선 깔깔 웃기도 했다.
그린란드는 덴마크에 속한 자치 지역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섬이지만 대부분은 얼음의 땅이다. 인구는 5만 6천여 명이고 거주지는 해안가를 따라 작게 형성돼 있다. 수도 누크의 경우 영하 20도의 겨울에는 오로라를, 영상 15~20도까지 기온이 오르는 여름 몇 개월 동안에는 초록의 들판도 볼 수 있다고 한다. 책을 읽고 작가의 인스타그램을 찾아보니 여전히 그린란드에 살고 있었다.
드라마 『비르기트』(넷플릭스, 2022, Borgen: Power & Glory)도 봤다. 드라마는 야심찬 여성 외무부 장관인 비르기트의 입장을 중심으로, 현실의 쟁점을 잘 보여준다. 그린란드의 석유 개발을 둘러싼 덴마크와 그린란드의 갈등에 더해 중국, 미국과의 정치적 관계가 긴장감 있게 펼쳐진다. 미국은 안보와 지정학적 위치, 천연자원 등의 이유로 그린란드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중국 역시 영향력을 확대하려 한다. 석유개발을 통해 부자가 되고 덴마크로부터 경제적으로 독립을 할 수 있다면, 그린란드는 석유 개발을 해야 할까. 환경과 이누이트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하지 말아야 할까. 미국과 중국 중 어느 쪽의 손을 잡아야 할까. 그건 누가 결정할 일일까. 드라마를 따라 덴마크와 그린란드의 입장을 오가며 생각해 보게 된다.
그린란드 사람들의 독립에 대한 열망, 조상들의 전통과 덴마크 문화 사이에서 청소년 세대가 겪는 정체성의 혼란, 고립된 작은 마을에서 겪는 청년들의 좌절, 알코올 중독과 자살 등 그린란드 내부의 묵직한 이슈들도 엿볼 수 있다.
세계 최초의 다큐 『북극의 나누크』(로버트 J. 플래허티 감독, 1922)는 북극권에서 빙하 살이를 하는 이누이트에 대해 생생하고 즐겁게 알려줬다. 그린란드가 아니라 캐나다 퀘벡주 누나빅 지역에서 촬영된 것이라지만 그린란드 조상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으리라. 부분적으로 연출이 가미됐다지만 세계 최초의 다큐가 문명이 닿지 않는 극한의 추위 속에서 촬영되었다니 놀랍다. 카메라는 이누이트족 나누크 씨 가족의 유목 생활을 따라간다. 그들은 생존을 위해 사냥하고, 먹을 것을 찾아 개썰매로 함께 이동하며, 즉석에서 눈과 얼음으로 이글루를 지어 잠을 잔다. 고된 자급자족의 삶에도 웃음이 있고, 아이들은 귀엽고, 가족의 정이 있다.
그린란드에 가본 적이 없지만 콘텐츠들 덕분에 어느새 친근하게 느껴진다. 기사나 자료를 통해 알게 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한두 번 짧은 방문으로도 많은 것을 알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책과 드라마, 다큐에는 그곳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들의 서사를 통해 사회적 맥락 속에서 이슈를 볼 수 있게 된다. 때론 이렇게 예술 작품이 현실의 이해를 돕는다. 그곳에 뛰어들어 관찰하고 책을 쓰고 드라마를 만들고 다큐를 촬영한 사람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제 그린란드가 좀 더 구체적이고 입체적으로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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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란드에 살고 있습니다』는 ebook이나 중고 서적을 구입해 볼 수 있다.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8부작 드라마 『비르기트』는 2010년 초반에 시즌3까지 나왔던 『여총리 비르기트』의 후속 시즌이다. 『북극의 나누크』는 유튜브에서 무료로 감상할 수 있다.
(2026년 2월 레터에이에 기고한 글)